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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Oct 19. 2023

2023년 10월 18일 식도락 음식 일기

오감을 깨우는 가울 풋고추와 영양 쌈장!

시골로 들어와 살면서 야채를 키우는 재미가 솔솔 했다.

딸, 아들의 등굣길에 손에 손잡고 도로를 건너서 

노란색 스쿨버스에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는 

늘 밭에 들러 '나 이만큼 컸다니까요'라며 봐 달라는

야채들에게 '잘했어, 벌레한테 당하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라는

격려를 해 주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수확할 때쯤이면 

땅 위에서 자라는 채소들은 벌레에게 도적질 당해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있던지, 조금 남아있다면 노루가 순싹 해버리고

뿌리를 먹는 채소들은 두더지나 꿩이,

나무에 열리는 열매들은 새가 다 쪼아 성한 것이 별로 없다.

그럴 때면 농사지은 사람으로서는 허탈하다.


그래도

푸성귀들을 소쿠리에 담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넉넉하고 뿌듯하고 행복하다.


스무 번의 가을을 시골에서 맞이하고 있다.


지난봄에 늦장을 부리다가 고추모종을 늦게 사러 갔더니

350원짜리 고추모종이 다 팔려 버렸다.

하는 수 없이 500원짜리 고추모종을 차에 실었다.

살짝 아쉬웠지만 뭔가 특별한 고추를 기대하면서

서운한 마음을 달랬다.


40 포기를 심었는데 붉게 익은 고추를 따서 말렸더니 

10근(6kg) 정도 되었다. 

생애 최고의 수확량이다.

2근은 곱게 빻아 고추장을 만들고,

8근은 김장과 평소 양념으로 넉넉하게 쓸 수 있는 양이다.

대충 한 해 소비할 홍고추를 확보한 후로는 고추밭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또 신기하게 9월이 시작되면 

고추가 잘 익지 않는다. 신기할 따름이다.


어제


고추가 제법 익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고추밭에 가서 붉게 익은 고추를 따다가 실수로 

풋고추도 몇 개 땄다. 

고추의 크기도 크지만 반들반들 윤기가 났다.

저녁 반찬으로 고추를 씻어 식탁에 올리고

직접 만든 쌈장을 내놓았다.

찍어 먹어보았다.

이럴 수가!! 

두툼한 살에

아삭아삭 달짝지근 간간하기까지,

싱그러운 과일을 먹는

기분이다.

내 평생 이렇게 완벽하게 맛있는 풋고추맛은 처음이라 

찍고(쌈장) 먹고(풋고추) 또 찍고 먹고를 하다 보니 

눈앞에 있던 한 그릇의 밥이 사라지고 말았다.

같이 먹던 딸도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잘도 먹고 있었다.


직접 농사지은 풋고추가 이렇게 맛있다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맛을 보여주고 싶다.

시골에는 집집마다 고추를 심기에 

나누어 줄 곳도 마땅하게 없고

또 된서리를 한 번 맞으면 먹지도 못한다.

주렁주렁 열린 저 고추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나누어 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수요조사를 해서 한 바퀴 돌아야 하나?

 시장에 내다 팔아야겠다며 웃었다.


오늘

이른 아침에 큰 소쿠리를 들고 밭으로 행차했다.

주렁주렁 달려있는 커다란 풋고추

빛깔도 입맛 다시게 하는 초록초록이다.

금세 한 소쿠리가 넘쳐 고추가 땅으로 떨어질 정도로

따서 담았다.

따 온 고추는 쌈장에 찍어 먹고,

절반은 무 동치미에 넣기 위해

소금물에 절여 두고

나머지는 새콤달콤 샐러드에 넣을 

고추 피클을 만들었다.

맛있는 고추를 찍어먹기 위해서는

쌈장을 더 넉넉하게 만들어 두어야겠다.

< 영양 쌈장 만들기>

* 재료: 햇된장 300g, 고추장 45g, 

          고구마 가루 50g,

          깐 마늘 10알( 30g 찧어서 사용), 

          올리고당 30g, 고춧가루 15g, 

          양파청 190g, 통깨 2T, 후춧가루 약간.

* 된장의 짠맛을 희석시키기 위해서는 

  고구마가루를 넉넉하게  넣어 염도를 

  낮추어 주고, 깊은 단맛을 내게 한다.

* 고구마가루는 수분을 흡수하면서 식감이 좋아지기에 

   만들 때는 양파청을 넉넉하게 넣어 약간 묽게 해도

   시간이 지나면 찍어 먹기 좋은 쌈장이 된다.

* 큰 용기에 재료들을 담아서 섞어준다.

* 여유가 된다면 만들어 냉장고에서 3일 정도

  숙성을 시키면 맛들이 어우러지면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 된장과 고추장의 염도는 가정마다 다르기에 입맛에 맞게

   양파청 또는 올리고당을 가감하여 준다.

  

** 엄마와 꼬부라진 풋고추

여름날 엄마는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면

된장 독에서 황금빛 된장 몇 숟가락을 퍼 오시고

방금 따온 꼬부라진 풋고추를 밥상에 올리셨다.

쭉쭉 뻗은 고추는 붉게 익혀서 

말려서 양념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드리지 않으셨다.

밭으로 심부름을 시키실 때도

잊지 않고 꼬부라진 고추를 따오라고 하셨다.

쭉쭉 뻗은,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풋고추를

드시면 좋을 텐데 흔한 고추 하나라도 좋은 것은

자식들을 위해 남겨 두셨다.


꼬부라진 풋고추를 볼 때면,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 위해 마당에 뿌려진 물과

습기를 머금어 반짝거리는 따가운 햇빛

그리고 마루에 밥상을 차리기 위해

작업복 바지(일명 몸빼바지)에 머리에는 수건을 두르시고

부엌을 들락대시는 엄마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 오른다.

 

엄마가 살아계시다면

이 맛있는 풋고추를

어떻게 알뜰살뜰 활용하실까?


밭에서 대기하고 있는 

풋고추를 활용해서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을 

브런치스토리에 남겨

내가 음식을 대할 때 친정엄마를 

떠올리듯이 

딸도 나의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들며

나를 떠올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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