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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자살(人格自殺)

첫 번째 수기

by 추설


나는 시기와 질투, 이 두 가지를 단 한순간도 잊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

태연한 척 상대를 칭찬할 때마다 속이 뒤틀려, 스스로가 역겨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 사람이 미워 견딜 수 없었지만, 입술은 그를 치켜세웠다.

대인배처럼 보이려는 얄팍한 허영. 속으로는 도랑에라도 밀어버리고 싶었는데,

주위에서는 나를 두고 착하다 말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 말을 토로했으나,

간호사는 듣는 체만 했다.

“그런가요? 그럼 좀 착하게 사시지 그랬어요. 이제 누우시고 주무세요.”

차가운 말 한마디, 불이 꺼지고 문이 닫혔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불빛이 천장에 번졌다.

아아, 이 얼마나 부질없는가.

말로를 이렇게 가련하게 보낼 줄 알았다면, 차라리 더 나쁘게 살 걸 그랬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미 충분히 나빴던 것일까.

억울하고, 우울했다.

이따위가 내 인생의 결말이라니.

차라리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았더라면, 조금은 덜 초라했을까.

그런데도 이상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공포보다 더 큰 것은 피로였다.

오래 억눌러온 감정의 무게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 눌러앉은 듯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

기억은 언제나 가장 불순한 지점부터 시작된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모든 일에 쉽게 싫증을 냈다.

또래들이 장난감 하나에 열을 올릴 때,

나는 한쪽 구석에서 시큰둥하게 바라봤다.

우리 집은 전후의 혼란 속에서도 비교적 잘사는 편이었다.

아버지는 관청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언제나 단정한 옷차림으로 나를 돌봤다.

그 덕에 나는 어린 나이부터 여러 학원을 전전했다.

도장에도 다녔고, 동네 미술 교실에도 갔다.

심지어 공회당 2층에서 열리던 피아노 교실에도 나갔다.

그 시절엔 그런 데를 다닐 수 있는 아이가 흔치 않았다.

아버지의 월급 덕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금세 흥미를 잃었다.

건반을 눌러도 마음은 따라가지 않았고,

붓을 들어도 종이 위의 선이 금세 끊어졌다.

무언가를 시작해도 오래 붙잡지 못했다.

그 어떤 것도 내 안을 채우지 못했다.

그런데 단 하나, 나를 붙잡은 것이 있었다.

괴롭힘이었다.

어린 손으로 누군가를 밀치고,

소중한 물건을 훔쳐 구석에 던졌다.

그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광경은 내게 쾌락이었다.

그 울음에는 나도 모르게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 행동이 계속되자 아이들은 곧 나를 멀리했다.

나는 따돌림을 당했고, 복도 끝 자리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더 세게 누르면 그들은 다시 내게 고개를 숙였다.

눈치를 보며 웃고, 억지로 말을 걸었다.

그들은 감정을 숨겼다.

그때 나는 알았다.

타인을 짓눌러 얻는 소속감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대가로 내 안의 빈자리가 채워진다는 것을.

인정받는 순간, 어딘가가 조용히 죽어간다는 사실도.


열두 살 즈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이 있었다.

물리적인 힘에서 나오는 주먹은 나의 권력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학급 친구와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

나는 주먹 한 방도 날리지 못했고,

결국 얼굴에 멍만 남았다.

그날 이후로 주위의 시선은 서서히 달라졌다.

신임은 흩어지고, 웃음은 줄었다.

나는 권력은 힘에서 비롯된다고 믿었기에, 그 무력함이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았다.

불쌍한 척했다.

눈물을 흘리고, 상처를 과장하며, 타인의 동정을 샀다.

약해 보이는 얼굴로 얻는 보호와 동조는,

때로 주먹보다 더 확실한 통제였다.

그날 이후 나는 새로운 가면을 썼다.

그리고 그 가면은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시간이 흘러, 나는 물리적인 힘마저 길렀다.

복수는 아주 치밀하게 이루어졌다.

그 학급 친구가,

한때 나를 때렸던 그 아이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게 맞았을 때의 표정.

그 서러움과 무력함,

그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

나는 미쳐버릴 듯 기뻤다.

그 얼굴은 내가 주먹으로 얻은 쾌감보다도 깊은 만족을 주었다.

수치와 서러움이 뒤섞인 그 표정을 나는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물론 주변의 시선이 있었기에

나는 친구를 때린 것이 마음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은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날의 석양, 운동장 위의 먼지,

그리고 그 아이가 울던 그 순간의 공기.

그건 내 인생의 첫 번째 승리였고,

아마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시작이었다.





표지.jpg 작가 '추설'의 첫 출간도서 『세상에 없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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