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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이다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


결혼은, 미친 짓이다. 


 당신이라는 퍼즐은 어떤 모양일까. 수천 가지 다양한 퍼즐들이 있지만, 우리는 가장 우리에게 친숙한 퍼즐 조각의 모양을 생각해 보자. 그래, 어린 시절 고사리 같은 손들로 집었던 그 뭉툭한 퍼즐 조각들 말이다. 

 사각형의 기본 틀 속에서 당신의 퍼즐은 옆구리가 파였을 수도, 둥그런 뿔이 솟아난 모양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괴상한 모양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서로에게 맞춰나가질 때, 그들은 어느새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되어 간다.


 그렇다면 단 두 조각으로 이루어진, 아주 간단한 퍼즐이 여기 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의 이름은 '당신'과 '당신의 연인'이며, 모두 옆구리에 차가운 빈 공간이 있다. 이 두 개의 불완전한 퍼즐로, 당신은 결혼이라는 찬란하게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알랭 드 보통의 20여 년 만의 소설,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은 우리에게 더 이상 사랑이라는 낭만의 '늪'에 빠져들지 말라고 경고한다. 애초에 완전하고 완벽한 사랑이란 없으며, 결국 당신의 퍼즐은 완성되지 못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그는 이 책에서 말한다. 


 어떤 퍼즐도 한 개의 퍼즐 조각이 옆구리가 들어간 모양이라면, 다른 한 개의 조각은 그만큼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야 서로 들어맞는다. 그러나 어떻게 둘 다 옆구리가 공허한 퍼즐들로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겠는가? 

 알랭 드 보통은 이 소설에서 낭만적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옆구리가 빈, 남이 자신을 채워주기만을 바라는 두 인물 '라비'와 '커스틴'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들이 너무나도 낭만적인 연애에 혹해, '결혼'이라는 영원히 후회할 선택을 한 후의 일상을 그려낸다.


 라비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만난 커스틴에게 더 없는 특별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같이 어린 시절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그녀만이, 자신의 공허한 삶을 빛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커스틴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시작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것을 '유지'해나가는 것에 곤란을 겪는다. 그들은 같이 쓸 컵을 고르며 '이케아'에서 처음으로 다투기 시작한다. 라비에겐 쓸데없이 복잡하게 생긴 컵이, 커스틴에게는 너무나 세련된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의 안목에 대해 불평하며,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 동시에 그들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이런 사람이랑 어떻게 평생을 살아가지?'

 그럼에도 그들은 결혼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지켜나가려 노력한다. 싸움을 피하기 위해 대화보다는 반강제적인 인내력을 발휘하고, 서로에게의 서운함은 끝없이 쌓여간다. 그 와중에 그들은 딸과 아들을 낳아 부모가 된다. 하지만 자식들은 커갈수록 부모에게 고마워하긴커녕 말썽만 부리기에 바쁘고, 라비와 커스틴은 서로의 교육방식까지 탓하게 된다. 


 그렇게 폭발하기 직전인 결혼 생활에서, 라비는 출장 중에 처음 만난 여성과 충동적으로 잠자리를 갖는다. 그 시점부터 라비는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커스틴의 '냉담함'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오히려 그녀를 비난한다. 심지어 바람을 피운 것은 그였음에도, 커스틴이 먼저 바람을 피운 것 같다며 피해 망상에까지 시달리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할 때, 그들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부부 문제 상담사'를 찾아간다. 그들은 이러한 상담이 '비정상적'인 사람들만 받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처음엔 꺼려 했지만, 상담사는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서로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아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은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한때 가장 사랑했던 이의 입에서 듣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의 사랑의 형태가 서서히 바뀌어감을 느낀다. 그들은 진정으로 서로에게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있을까?

 만약 삶을 낭만적으로만 살 수 있다면, 세상에 '갈등'이란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위기에 처한 모든 부부들에게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이 감정이 아닌, '기술'이라 말한다. 연인이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닌, 나를 연인에게 맞추어가는 기술이 필요하고 애초에 나에게 완벽한 사람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절대적인 진리를 우리가 인정하고, 내가 아닌 연인에게 중점을 둘 때 '조금씩 완전해지는 사랑'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만의 강점은 소설과 에세이를 맛나게 섞어놓은 듯한 독특한 '문체'이다. 우리가 소설의 이야기에 매혹되어가는 것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듯 중간마다 나타나는 '독백'은 라비의 독백일 수도, 알랭 드 보통 본인의 독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중얼거림은 몰입을 방해한다기보다, 이야기의 궁극적인 '주제'를 우리에게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언뜻 보아선 이해하기 어렵지만, 두세 번 읽을수록 우러나오는 깊은 사랑에 대한 고찰은 알랭 드 보통 스타일에 우리가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인 듯하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은, 알랭 드 보통 자신도 에세이적인 면과 소설적인 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실패했다는 것이다. 라비와 커스틴의 갈등은 아주 섬세한 지도를 보듯 그려놓았지만, 그 갈등이 어떤 식으로 풀려나가는지에 대해서는 너무 간략하게 서술되어 독자로서 강한 당혹감을 느꼈다. 갈등이 해소되어 가는 것을 보며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작가는 갈등 자체에만 주목했기에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여하튼, 알랭 드 보통은 두 조각의 불완전한 퍼즐로는 그림을 완성할 수 없음을 그만 인정하라고 말한다. '결혼'이라는 퍼즐 틀안에서 두 조각의 옆구리 빈 퍼즐들을 붙여놓아봤자 가운데에는 공허한 여백이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퍼즐 스스로 상대방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상대방도 자신과 같이 공허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어쩌면 그 여백이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은 불완전하다는 점 하나로 평가될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니까. 


 만일 당신이 완벽한 사랑을 믿는 낭만적인 사람이라면,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에 빠져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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