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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의 돼지들에게

[ 동물농장, 조지 오웰, 북로드 ]


[ 동물농장, 조지 오웰, 북로드 ]


지도자의 가면, 지배자의 정체.


 얼마 전, 한 정치인의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현재 국민에게 비판적 평가를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들 역시 '선한 의지'로 국민들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다,는 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었고, 대선주자인 그의 지지도는 놀라울 만큼 하락했다. 

 그 정치인은 '반어법'이었다는 해명을 내놓았지만, 분노한 민심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국민들의 이러한 반응은 설령 어떤 이가 처음에는 선한 의지를 지녔다 치더라도, '권력'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지난 몇 개월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공동체를 위해 부여한 모두의 권력을 / 소수만을 위해 남용한다면, 그 자는 지도자인 것일까, 아니면 지배자인 것일까.

 [ 동물농장 ]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출판된 '조지 오웰'의 작품으로, 당시의 세계는 명백한 혼돈chaos 속에 빠져있었다.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스탈린 독재 하에 놓여있었고,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를 혐오했던 오웰은 이를 '풍자'하기 위해 [ 동물농장 ]이라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비교적 짧은 분량의 이 소설은 '매너 농장'이라는 가상의 시골을 배경으로 한다. 어느 날, 이곳의 가축들은 현명한 수퇘지 '메이저'의 설득으로 자신들을 부리던 인간들에게 다 같이 힘을 합쳐 반기를 든다. 동물들은 인간으로부터 착취만 당하는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협력해서 함께 싸웠고, 결국 인간들을 농장에서 쫓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 후 영리한 가축 종이었던 '돼지'들의 지도로 매너 농장은 '동물농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7가지 규칙을 세우며 노동량과 식량을 모두 공평하게 나눈다. 동물들은 크게 늘어난 삶의 질에 만족했고, 동물농장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동물들을 이끌던 돼지들 사이에서 갈등이 점점 생겨났다. '스노볼'이라는 돼지는 기술을 발전시켜 모두가 더 편하게 일하자는 주장을 했지만, '나폴레옹'이라는 돼지는 다른 농장을 공격해 해방시키는 것이 제일 우선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둘의 갈등은 다른 동물들까지 끌어들였고, 결국 매주 열리는 '동물회의'에서 나폴레옹은 자신이 몰래 키우던 사냥개들을 동원해 스노볼을 농장에서 쫓아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다음날, 동물농장에는 스노볼이 사실 인간과 편을 먹고 - 동물들을 배신하려 했다는 사실이 공표된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스노볼을 막기 위해 온몸을 던진 '영웅'이었음이 동물들에게 알려지고, 그를 위해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라는 새 규칙이 추가된다. 그 후 나폴레옹의 지휘 아래 농장은 운영되지만, 리더 격인 돼지들만 점점 부유해질 뿐 나머지 동물들은 먹이조차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불만을 품은 자들은 스노볼과 함께 인간의 편에 선 '배신자'로 낙인찍혀 살해되고, 동물들은 서서히 저항하는 것을 포기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돼지들은 적이었던 인간과의 거래를 갑자기 또 제멋대로 선포하고 농장엔 다시 인간들이 돌아온다. 


 그리고 돼지들은 그 거래를 통해 번 돈으로 술을 마시고, 침대에서 자며 점점 인간과 똑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소설의 말미에 동물들은 이제 심지어 '두 다리'로 걸어 다니려는 돼지들을 바라보며, 더 이상 돼지와 인간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조지 오웰은 젊은 시절, 영국의 식민지에서 경찰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곳에서 그는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인간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에 심한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오웰의 이 감정과 생각은, [ 동물농장 ]이라는 시대의 명작으로 재탄생했다.


 이 소설은 실제 과거에 활약했던 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캐릭터의 모델로 삼고 있다. 수퇘지 메이저는 공산주의를 탄생시킨 '칼 마르크스', 나폴레옹은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 스노볼은 스탈린에 저항하다 결국 외국으로 망명한 '트로츠키'를 대변하고 있다. 

 또한 이외에도 무조건적으로 돼지들의 결정에 따르는 양들은 의심할 줄 모르는 '맹목적 지지자'들을, 나폴레옹의 수족으로서 동물들을 위협하는 개들은 국민을 억압하는 '군대'를 의미하고 있다. 조지 오웰은 이렇게 정말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실렸었던 인물들을 동물에 비유함으로써 - 전 세계에 전체주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체제'임을 이해하기 쉽게, 또 파격적으로 알렸다.


 오늘날 소련은 끝내 수십 개의 국가로 붕괴되었고, 북한은 사실상 '독재국가'가 된 것을 생각한다면 다음과 같은 추측이 가능해진다. 개인에게 어떤 숭고한 대의가 있었더라도, 또 처음에 얼마나 강력한 '선한 의지'를 지녔었더라도 / 단 한 명이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면. 그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조지 오웰은 [ 동물농장 ]을 통하여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바로 극심한 '공포'였다. 소설 속에서 같은 동물이 동물을 억압한다는 것, 그리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타락하는 과정을 보며 - 이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있다는 점에 나는 계속해서 소름이 끼쳤다. 


 특히 가장 두려웠던 장면은 돼지들이 인간과 똑같이 걷기 위하여 두 발로 뒤뚱대는 장면이었다. 한때 자신들 역시 '지배당하는 자'였음에도 권력을 가지게 되자, 스스로 '지배하려는 자'의 모습이 되려는 돼지들의 행동은 내게 진정한 혐오를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지도자의 탈을 쓴 지배자들이, 현대에도 결국엔 그 이름만 바꿔 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것에 짙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다. 그리고 이런 우리가 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사회는 개인의 합의 아래 탄생하였고, 선출된 엘리트들이 국가 권력을 부여받아 공동체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러한 엘리트들이 이 거룩한 힘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고, 또 동시에 약하고 힘없는 자들을 착취하는 모습을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자주 볼 수 있다. 

 분명 이들 중 몇몇은 처음에는 정말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은 그런 '초심初心'을 손쉽게 더럽혔고, 그 끝은 언제나 참담했다. 이 악순환 속에서, [ 동물농장 ]은 이제 21세기에 이른 우리에게 묻고 있다. 내가 떨리는 손으로 이 책을 덮었을 때의 그 질문, 조금은 냉혹하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물음을.


 '나는 지금, 당신은 지금 어떤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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