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nner courage Sep 14. 2023
주말 새벽 완벽한 고요를 깨며 전화벨이 울렸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전화를 받자 응급실의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67세 B환자 췌장암 4기로 항암치료 중인데 어제 저녁부터 토혈과 혈변이 계속되서 응급실 오셨습니다. 오셔서도 토혈 1L이상 했고 혈압은 아직 괜찮은데 심박수 빠르고 곧 혈압 떨어질 것 같습니다. 기록에 보니 내시경적 지혈술은 더이상 어렵다고 되어 있는데 어뗳게 할까요?"
B환자는 췌장암 다발성 간전이 환자로 2년전부터 항암치료 중이다. 최근에는 암이 진행되면서 주변에 있는 십이지장과 위를 침투했고 출혈이 반복되어 수차례 지혈제투여와 내시경시술을 받았다. 두달 전 출혈 때는 내시경적 지혈술이 어려워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말씀드렸으나 기적적으로 출혈이 멈췄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이 결국 터진 것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4시 50분, 전화하기엔 좋지 못한 시간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소화기내과 당직의사에게 전화를 했다. "B 환자, 이전에 김선생님이 내시경해주셨는데 시술 어렵다고 했습니다. 오늘 다시 출혈이 생겼는데 내시경 시도할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이전 내시경사진보고요." 불편하고 무거운 침묵이 흐른 후 한숨소리가 들렸다. "안될 거 같습니다. 아시잖아요? 지금 들어가도 아무것도 못해요. 내시경하다가 돌아가실 수 있겠는데요. 색전술은요?" "색전술은 위치상 어렵다고 합니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꼭 필요하시면 다시 연락 주세요."
이제 보내드려야 할 때가 왔지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야 할 주치의가 감정에 휘둘리면 안되지만 오랜 환자를 보내는 일은 항상 어렵다.
아무 옷이나 급하게 주워 입고 병원으로 갔다. 처치실에 들어서자 피냄새가 진동했고 통증때문에 새우처럼 몸을 말고 모로 누운 B가 보였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이름을 부르자 B가 힘겹게 눈을 떴다. 잠시 촛점을 맞추는 듯 눈을 깜빡거리다 나를 알아보자 피묻은 입으로 싱긋 웃으며 "왔는교?" 했다. 그 미소에 나도 웃을 수 밖에 없었고 우리는 웃으며 마지막 대화를 시작했다. "내시경 해볼까요? 사실 어려울 가능성이 많지만 그래도 시도해 볼 수 있어요." 말하기도 힘든 B는 남은 힘을 모두 짜내어 대답했다. "이제 그만 하입시다." 그 후 가족들이 마지막 인사를 드렸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그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눈도 뜨지 못했다.
그가 가고 몇 주가 지난 후 아내와 딸이 찾아왔다. 큰키에 서글서글한 인상, 맑고 큰 눈, 시원한 미소까지 B를 빼닮은 그의 딸이 두눈 가득 눈물을 담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우리 아버지, 마지막에 웃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가슴이 먹먹해 한동안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서로 바라보았다. "아버님은 정말 좋은 분이셨어요.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용감하셨어요. 마음 속 깊이 존경합니다. "
B는 갔지만 그의 미소는 나에게 영원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