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택배시스템
"독일택배에 대해 말해봅시다"고 하면 두 손 두 발 들고 자진해서 밤새워 얘기할 분들이 많을거다.
그만큼 독일의 택배는 가히 악랄하다.
내가 시킨 물건을 택배 회사에서 갖다줄 뿐인데, 뭐가 악랄할까. 나도 너도 우리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택배강국, 로켓배송의 나라 한국에서 왔으니까.
독일에서는 좀 오바해서 '택배가 정상적으로 온다는 것' 자체가 당신이 행운아라는 의미다.
독일의 대표적인 택배사는 5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DHL을 비롯하여 DPD, GLS, UPS, Hermes(명품아님) 까지.
택배사를 차치하고 가장 많은 문제의 시발점은 택배기사와 연락 자체가 불가해서다. 택배기사의 이름도 알 수 없으며 연락처는 더욱이 알 수 없다. 모두 택배기사의 '개인정보'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Datenschutz(개인정보)의 나라다.
'기사 이름 몰라도 물건만 잘 오면 되지' - 문제는 이게 안 된다.
고객과 기사가 연락할 방도가 없으니, 기사가 택배를 안 주고 가도 항의할 곳이 없다. 기사가 귀찮아서 고객이 집에 있음에도 벨을 안 누르거나, 그냥 가버리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DPD와 UPS가 단골이다). 그야말로 지나친 개인정보 보호의 폐해다. 배달하지 않은 택배는 근처 픽업스테이션으로 갖다주거나, 그마저 귀찮으면 그냥 물건을 반송 처리해버린다. 픽업스테이션이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곳이고, 자가용이 없다면 정말 난감하다.
분통 터지는 고객은 택배사에 항의하지만, 분노가 반영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작년, 이베이에서 시킨 물건이 DHL을 통해 배송됐고 분명 배송완료라고 뜨는데 나는 물건을 못받았다. 수취인도 내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말이 안되는 상황에 DHL고객센터에 항의했으나 내가 말하는 도중 전화를 끊어버렸다. 두어차례 다시 항의 했으나 "판매자한테 얘기하라"는 게 고객센터의 최종 답변이었다.
일주일 가량 지났을 때,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내 택배를 잘못 받았는데 뜯어봤다고,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알고보니 DHL이 잘못된 주소로 배송을 하고 -> 수신인은 남의 물건인 줄 알면서도 뜯었으며 -> 별 것 아닌 걸 확인하고 돌려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 무슨 코미디인가.
고객들의 이런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게 바로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자체배송을 하고 문제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추적을 해주며 물건 보상까지 한큐에 해주니 안 쓸 수가 없다.
부피가 크거나 무거운 물건은 '집 안'까지 배송하는 비용을 별도 지불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세탁기, 냉장고, 건조기, 식세기, 침대 같은 가구나 가전인데 옵션추가 없이 기본택배로 주문하면 어느 날 당신 집 건물 앞에 엄청난 상자들이 쌓여있을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 산다면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날은 이삿날 못지 않은 중노동 예약이다.
그래서 가전이나 가구를 시킬 땐 건물 앞까지 배송 할건지, 집 안까지 놓을 건지, 집 안에 설치까지 할건지 정해서 추가비를 지불해야 한다. 배송비만 수 십~백 유로 이상이니 소형 트랜스포터를 빌려서라도 어떻게든 직접 픽업 해오려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결론, 한국 택배 시스템과 기사님들께 참 감사하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