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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가장 빨리 돈 쓰는 법

가방이 가벼우면 의심해야 한다

by 가을밤

독일에서 물건을 사지 않고 돈을 가장 빠르게 많이 쓰는 방법은?

이 질문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다면 독일 혹은 유럽생활에 상당히 적응하신 분이다. 힌트는 집이다.




독일에서는 외출 시 현관문을 닫기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게 있다. 가스불도, 전등도 아닌 바로 '가방이나 주머니에 열쇠가 들어있는지'이다. 주머니가 가볍다면 일단 현관문 사이에 발 한쪽을 끼우고 열쇠를 찾아야 한다. 열쇠 없이 문을 닫는 순간 당신은 '100유로 이상의 목돈 지출'에 당첨이다.


그렇다. 많은 분들이 아시듯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여전히 묵직하고 투박한 열쇠를 쓴다.


아파트 출입문, 현관문, 창고, 주차장 입구 등 모든 게 열쇠방식이다.


"열쇠가 없어도 손잡이를 돌리면 되잖아요?" 그렇지 않다. 손잡이는 기능에 충실하게 '손에 잡는' 용으로만 붙어있지, 돌아가지 않는다. 심지어 집 안의 방문도 한국처럼 똑하고 누르면 잠기는 게 아니라 방마다 열쇠가 끼워져 있다. 이 무슨 구시대적 시스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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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통용되는 열쇠. 손잡이는 잡이의 역할만 한다. 독일도 열쇠 천국이다.


만약 열쇠를 깜빡하고 집 안에 놓고 문을 닫았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스스로 따던지, 열쇠공(Schlüsseldienst)을 부르는 것이다. 열쇠공을 부르면 정말 복잡한 시스템이 아닌 이상 2분 안에 딴다. 영화에서 도둑이 남의 집 들어갈 때 문을 따던, 영락없는 그 모습이다. 이전에 열쇠공을 불렀더니 철사 한 개를 가져와서 30초만에 따버렸다. 문을 여는 비용은 최소 120유로(17만 원), 저녁이나 주말엔 할증이 붙어 200유로(28만 원) 이상으로 올라간다. 분당 60유로라니 이보다 빠르게 많은 돈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열쇠를 사수한다. 구축 아파트는 출입문, 현관, 지하실, 주차장, 우편함 열쇠가 모두 따로이기 때문에 열쇠만 모아도 무게가 꽤 묵직하다. 여기에 두툼하고 긴 목걸이를 걸어 가방에 넣으면 잃어버리기 쉽지 않다.


신축 아파트는 최신기술을 적용하여 열쇠 한 개로 모든 것을 열 수 있다. 신기하게 공동공간은 열리면서 우리 집 문은 내 열쇠로만 딸 수 있게 되어있다. 열쇠역사가 길어서 그런지 기술도 좋다. 아무튼 열쇠가 한 개면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주먹만 한 큰 열쇠고리를 다는 게 좋다.




여전히 도어록을 달지 않고 이렇게 구식에 답답한 시스템이 통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디지털에 대한 불신이 깊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집과 같이 지극히 사적이고 중요한 물건이 있는 공간을 디지털 숫자조합 하나로 보호 한다는 게 독일인들의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열쇠보다 위험하다. 혹시 누가 볼 수도 있고, 지문이 남을 수도 있으며, 해킹될 여지도 있다. 게다가 디지털 도어록은 상당히 비싸다. 입증되지 않은 보안 시스템에 큰 비용까지 투자할 의사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디 흔한 아파트 출입 자동문도 독일서는 보기 드물다. 컨시어지가 있는 고층형 아파트나 입주민들이 다 같이 원할 경우 설치가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열쇠를 따고 들어오는 형태이다.


이러한 이유로 독일에서는 열쇠 분실이 우려되거나 장기간 휴가를 떠날 때 이웃 혹은 가족에게 열쇠를 맡기는 일이 매우 흔하다.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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