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월셋집 구하기
독일에서 일반 월셋집(학생기숙사, 사설기숙사 아닌 일반 아파트나 주택)을 구해야 한다면 당신은 독일생활을 괴롭게 만드는 주범 중 하나를 맞닥뜨린 것이다.
국적불문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하다. 좋은 집은 너도나도 다 들어가고 싶어 한다.
소위 대도시(특히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뮌헨, 함부르크, 쾰른 등)로 꼽히는 동네 시내 중심에서 집을 찾는다면 경쟁률은 최소 100:1 이다.
게다가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집주인의 지인이 마침 집을 구하고 있다면 당신의 경쟁과 노력은 물거품이 될 확률이 높다. 그들의 와츠앱(카톡) 한 줄로 이미 다음 세입자가 결정되었을 테니까.
독일에 집을 가진 그런 오아시스 같은 지인이 없는 우리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느리더라도 뒤탈 없이, 안전하게 통하는 게 곧 정공법이다. 다음의 정공법과 치트키를 사용하면 느리더라도 '제대로 된' 월셋집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 진실된 자기소개를 하라
마음에 드는 월셋집이 있으면 '집 좀 보여달라고' 주인 혹은 부동산에 컨택을 한다. 보통은 메일이나 웹사이트에 있는 컨택페이지에 짧은 메시지를 쓰게 되어있는데, 이거 대충 쓰면 안 된다. 그 사람들은 매일 수 백통의 문의를 받기 때문에 첫 컨택에서 눈에 들지 않으면 광탈이다. 여기엔 나의 신상과 특징을 압축해서 담아야 한다. 직업, 이사하려는 이유, 거주인원, 흡연여부, 반려동물여부, 예상거주기간을 알려주는 게 좋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 집에 '서류지원' 할 자격이 주어지며, 연락한 인원의 반 이상이 걸러진다.
# 모든 서류를 한 번에 보내라
집주인이 서류를 보내라고 했다면 집의 30%는 손에 들어온 것이다. 이 과정이 정말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월셋집 지원에 요구되는 서류+알파까지 보내야 선정될 확률이 올라간다. 무슨 구직활동도 아니고 참으로 웃프지만, 실제로 독일 월셋집 구하는 건 구직만큼이나 치열하다. 월셋집 구할 때 제출하는 지원서류를 Bewerbungsunterlagen이라고 하는데, 구직 제출서류를 지칭하는 단어와 같다. 내야 할 서류는 다음과 같다. 이 중 '수입증명서'가 가장 중요하다.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월세가 안 들어 올 상황'을 가장 경계하기 때문이다.
- Mieterselbstauskunft: 신상정보 (이름, 현거주지, 직업, 흡연여부, 반려동물 등 거주 관련 정보)
- Einkommensnachweis/Bürgschaft: 수입증명서 또는 보증인 편지. 직장인은 최근 3개월치 월급명세서를 내야 한다. 신입이라면 근로계약서를 내야 하며, 학생이면 독일 내에 거주하는 보증인의 편지를 가져와야 한다. (독일학생들은 부모가 보증을 서준다. 외국인 학생이 일반 월셋집을 구하기 어려운 결정적 이유다. 대사관에서 발급한 재정보증서는 잘 안 받아준다)
여기까지 기본 지원서류이고, 아래 서류는 '알파'에 해당하여 제출 시 선정확률이 눈에 띄게 올라간다.
- Schufa-Auskunft: 신용등급점수표 (온라인 또는 우편으로 신청가능하며 약 30유로의 수수료 발생)
- Mietschuldenfreiheitsbescheinigung: 과거 임대료채무가 없다는 증명서 (이전 월셋집 주인이나 관리회사한테 받을 수 있다).
- Bewerbungsanschreiben: 동기를 어필하는 짤막한 편지
위 다섯 가지 서류를 한데 모아서 'Bewerbungsmappe(지원서류철)'을 제출하면 된다. 여러 매물에 한꺼번에 지원해야 할 수 있으니, 여러 개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다가 집 보러 갔을 때 이 집이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제출해도 된다. 나는 이렇게 해서 50명의 경쟁자를 제친 적이 있다.
# 집은 직접 봐야 한다
집주인들 중 '내 집에 들어올 사람은 무조건 직접 만나보고 고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 유선전화나 온라인 컨택을 백 날 해봐야 한 번 가서 얼굴 비추는 것보다 못하다. 집이 컨디션에 비해 저렴하고 사기가 아닌 매물 중 꽤 있다. 보수적인 주인들은 돈 받는 것 이상으로 사람도 가린다. 따라서 집을 정말 받고 싶다면 직장에 휴가를 내서라도 가서 보는 게 좋다. 나는 9시간 떨어진 곳에 월셋집을 구할 때 휴가 내고 비행기 타고 가서 2박 3일로 집을 봤었다. 그런데 돌아와서 더 괜찮은 매물을 찾은 것이다. 휴가를 낼 수 없어서 서류를 완벽하게 보낸 후, 고려해 달라고 수 없이 사정했으나 결국 떨어졌다. 이유는 '직접 오지 않아서'였다.
까다롭고 유난스럽게 들릴지 모르나, 실제로 집을 굉장히 엉망으로 쓰는 세입자들이 있다. 월세는 꼬박꼬박 내는데, 방 문에 마구잡이로 구멍을 뚫는다거나 타일을 부수고 주방 기기를 망가뜨리는 등 상상도 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힌 후 보증금을 다 돌려주지 않으면 집을 안 보여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현 세입자 허락 없이 집주인 마음대로 집을 보여줄 수 없다). 이러한 사례를 고려하면 보수적인 주인의 태도가 이해된다.
# 나머지는 운에 맡긴다
여기까지 왔다면 나머지는 운이다. 지원자들 중 나보다 월급이 높거나, 직장이 안정적이거나, 반려동물이 없거나, 혹은 그냥 집주인 마음에 더 드는 지원자가 있다면 집은 그 사람에게 간다. 말 그대로 최종합격을 기다리는 구직자와 완전히 똑같은 상황. 기다리는 시간은 긴장의 연속이다. 넋 놓고 기다리자니 떨어질 것 같고, 다른 집을 계속 보자니 괜히 개인정보만 여기저기 뿌리는 것 같아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모든 지원자들의 마음은 같다. 그러므로 그냥 마음 편히 기다리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한 번은 정말 마음에 드는 집이 있었다. 집을 직접 봤고, 집주인도 우리에게 호의적이었고 서류에도 문제가 없어서 우리는 그 집이 우리에게 올 거란 걸 전혀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떨어졌다. 집주인에게 '다음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며 집요하게 이유를 물었다. "다른 지원자가 더 매력적이었어요"라는 답변이 왔다.
그 경쟁자는 규모 있는 기업이었으며, 10년 치 계약을 한 번에 했다고 한다. 개인지원자가 기업을 어떻게 상대할까. 그저 우리가 지지리도 운이 없던 거다.
제목 사진출처: Photo by Vincent Wachowia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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