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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Oct 16. 2024

새 봄

#6



‘날 때부터 당연하다는 듯 주어진 고유명사’. 나는 이름이라는 것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여기서 포인트는 ‘주어진’이라는 데서 온다. 아무도 날 때부터 ‘응애 제 이름은 땡땡이예요’라고 말하면서 태어나지 않는다. 엄마가, 할아버지가, 혹은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그저 유명하다는 작명가가. 한 사람이 한평생 불릴 이름을 누군가 대신 정해준다.


죽는 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계속해서 불릴 단어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게 오늘은 갑자기 억울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이름이라는 건 그 사람을 자체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사람을 직접 보지 않았는데도 이름만 보고 이미지를 떠올리곤 하지 않던가. 꼭 사람 이름뿐만 아니라 모든 ‘이름’이라는 것이 그렇다. 내가 운영하는 과자점의 이름인 ‘겨울과 봄사이’도 손님들은 상호명을 듣자마자 우리 가게의 분위기를 알아차린다.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왜 가게이름을 겨울과 봄사이라고 지으셨어요?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듣는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냥 제 생일이 겨울이고 이름이 봄이라서 그렇게 지었어요’라고 얼버무리곤 했는데 이 이름은 사실 다른 사람이 지어주었다. (이 얘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해도 되냐고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나중에 얘기해 보자.) 겨울은 그렇다 치고 봄은 내 이름에서 따온 것이 맞다. 내 이름에는 ‘봄’이라는 계절이 들어간다. 한자가 아니고 한글로 새봄. 한 해의 네 철 가운데 첫째 철, 겨울과 여름 사이이며, 달로는 3~5월, 절기(節氣)로는 입춘부터 입하 전까지를 이르는 말이다. 선옥이 직접 지어줬다는데 12월 첫날에 태어난 내가 새로 올 봄을 위해 겨울을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했다.






자 여기서 이제 내가 억울한 마음이 든 이유를 본격적으로 말해보고 싶다. 선옥은 왜 딸의 이름을 봄으로 지어서 이렇게 나약한 인간으로 자라게 했을까. 본디 봄이라는 것은 추운 계절 얼은 땅을 뚫고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자라기 시작하는 찬란한 계절이 아닌가. 그런데 찬란한 만큼 찰나 같아서 겨울과 여름이라는 두꺼운 책 가운데에 얇게 끼워져 있는 시집 같기도 하다. 게다가 새 봄이라니. 얇은 시집 중에서도 앞표지 한 장 정도의 순간처럼 느껴지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계획은 세상 어떤 일이든 모두 해낼 수 있는 사람처럼 세워두곤 금세 김이 빠져버린 사이다처럼 급격하게 흥미가 식어버리는 성격은 아무래도 내 이름 탓이다. 이름이 가을이었으면 어땠을까.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는 황금빛의 벼가 가득한 논에서 그간의 결실을 한가득 얻는 사람일 것만 같다.






혼자서 일하는, 작디작은 디저트가게이지만 작은 집에도 꼭 필요한 것들이 있는 것처럼 큰 가게만큼이나 우리 가게에도 촘촘한 계획과 체력 분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10월쯤부터 추석으로 시작해서 핼러윈, 빼빼로데이, 수능, 크리스마스, 연말, 입춘, 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까지 빽빽하게 기념일들이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만 생기는 욕심에 추석 시즌을 요란하게 보내고 말아버렸다. 준비된 의지와 체력은 한정적인데 마지막 시즌인 것 마냥 쏟아내버리고 나자빠져있는 모양새라니. 의지와 체력을 모두 소진해버리고 나니 흥미 또한 식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래, 사실은 알고 있다. 이름 때문이 아니라는 걸. 시즌이 시작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기깔나게 세워둔 계획에 벌써 하나 둘 빵꾸가 (이건 구멍도 아니다. 빵꾸다 진짜.) 하나 둘 생기는 것을 보곤 어디에다라도 탓하고 싶은 마음에 되도 않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은 것뿐이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을 때 이름 탓이라도 하라고 이름은 남이 지어주는 것인가보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 이름을 꽤 좋아한다. 남이 정해준 이름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도 35년 넘게 같은 이름으로 살고 있는 것이, 가게 이름을 겨울과 봄사이로 지은것도 그 증거다. 속상한 마음에 이름 탓을 한참 하긴 했지만 난장판 사이에 앉아있던 나를 이렇게 글 하나로 후루룩 툭탁 털어버리곤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지 뭐, 어그러지면 또다시, 다시, 하고 새로 온 계절처럼 씩씩하게 일어나게 되는 것도 분명 내 이름 탓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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