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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 가보면 시뻘건 얼굴만 동동 떠있는 것 같은 사람이 꼭 한 명은 있다. 그런 사람 중에 으뜸가는 사람이을 꼽으라고 하면 바로 나라고 이야기하겠다. 어떤 술이 든 간에 종류에 상관없이 한 잔만 들이켜면 그 길로 목부터 얼굴, 손, 발 할 것 없이 곧 터질 것처럼 온몸이 붉어진다. 알코올을 해독하지 못하는 체질 탓에 그런 거라 술은 입에도 대면 안된다고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아직은 딱히 그럴 생각이 없다. 일단 자영업자의 삶은 무척이나 고단하다.
자영업이라고 해도 과자가게 사장은 비교적 달콤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솔직히 만들어내는 제품들의 비주얼에 비해 일이 너무 고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과자점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이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며 환상을 가지지 말고 지원해 달라고 읍소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대표적으로 과자 만드는 사람에게는 필연적으로 얻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화상 흉터이다. 200도가 넘는 오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열었다 닫았다 하다 보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순식간에 데어 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신없이 바쁘게 일할 때 특히 그런 일이 많다 보니 데인 후에도 바로 처치하지 못하고 몇 시간이나 방치해 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면 뒤늦게 찬물을 부어보고 약을 발라봐도 흉이 지는 건 막을 수 없게 된다.
나도 손목에 바코드처럼 생긴 화상흉터가 있다. 가게를 시작하기도 전, 샌드위치 가게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파니니가 유명한 곳이어서 치즈를 끼운 빵을 와플 팬처럼 생긴 그릴에 눌러 진득하게 녹인 메뉴가 인기였다. 주문이 한꺼번에 밀려온 어느 날, 무슨 정신이었는지 그릴에서 빵을 미처 빼기도 전에 팬 뚜껑을 내려버렸고 그 덕에 내 손목에는 선명한 그릴 자국이 생겼다. 그게 언뜻 보면 바코드 같이 생겼다. 십 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흉터가 어렴풋하게나마 남아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오븐과 함께 일했기 때문에 내 손과 팔에는 앞, 뒤, 옆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화상 흉터들이 잔뜩 생겼다.
아무리 크고 깊었던 흉터라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기 때문에 평소에는 내가 얼마나 많은 화상흉터를 갖고 있는지 잊어버린다. 그렇게 하나 둘 사라졌던 흉터들이 한꺼번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술을 마셨을 때다. 벌게진 피부보다 더 진하고 붉은색으로 뚜렷하게 모양을 보이면 고군분투했던 그간의 세월들이 고스란히 몸에 남아있는 듯하다.
화상을 입었을 때의 기억은 당황과 물집이 찢어졌을 때의 쓰림, 딱지가 지고 벗겨지길 반복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대견한 마음이 있다고 하면 너무 변태적으로 느껴지려나. 용사의 영웅담을 뒷받침해줄 칼자국 같은 것과 비슷하다고 말해도 되나. 뭐 대의를 위해서 일하다 생긴 흉터도 아니고, 그냥 밥 벌어먹고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거지만 그래도 내가 꽤 열정적으로 일했다는 증거가 남은 것 같아 그렇다. 얼마나 많은 매출을 만들었느니, 손님이 얼마나 줄을 섰느니, 얼마나 많은 과자들을 구웠는지 같은 것들보다 내가 얼마나 땀 흘려가며 열심히 일했는지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같은… 막상 누군가 알아보고 왜 이런 거냐 물으면 별거 아닌 척 대답하겠지. 하하.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내 손의 화상 흉터들을 꽤 뿌듯해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꼰대 같다고 할 수도, 우습다 말할 수도 있다. 특히 요즘엔 땀 흘려 번 돈의 가치가 많이 낮아진 세상이니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어른이라면, 으레 가지게 되는 직업병 같은 것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투덜거리는 듯 조금은 자랑스러운 마음이 담기는 것을. 그래, 너도 열심히 살았구나. 열정을 다했구나. 우리는 앞으로도 고단해하며 술을 마시자. 각자의 흉터들을 자랑스러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