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2)
이라크 파병에 찬성했던 정부는 임기 내에 별다른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한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그랬다. 뉴욕 타임즈는 사설에서 미국 정부의 재건 사업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전쟁 직후의 이라크는 경제가 극도로 피폐해져 있어서 복구사업 재원 마련도 어려웠다. 미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한지 1년이 훌쩍 넘어간 시점에도 전기나 수도공급이 잘 되지 않아 이라크인들의 불만은 고조되었다. 그 즈음인 2004년 우리나라는 뭘 하고 있었냐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었다. 국내 정세 자체가 전쟁이었다. 수렁에 빠지고 있는 이라크전 실익을 깊이 들여다 볼 마음의 여유 따위는 없었다.
2008년 정권이 바뀌었다. 새 정부는 자원개발 중요성을 강조하며 쿠르드 자치정부와 MOU를 체결하고 광구 탐사권(원유가 있는지 확인하는 권리같은 것)을 받았다. 그래. 비록 정권은 바뀌었지만 뭐 어떠랴. 어느 정권이든 '국익'을 창출해서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다면야 상관없지 않은가. 그런데 광구탐사권의 대가로 SOC 건설을 해줘야 한다는 조건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나라가 어떤 광구를 받든지 관계없이(그것이 속이 빈 깡통 광구라도) 의무적으로 사회인프라를 지어줘야 한다는 의미였다. '천억 달러'에 달한다는 이라크 전후복구 프로젝트에 참여하자고 부르짖지 않았던가. 최대 200억 달러 수주가 가능하다는 썰도 있었다. 그토록 목놓아 부른 전후복구사업을 공짜로 해주기로 하다니. 물론 운이 좋아서 우리가 받은 광구에 원유가 콸콸 흘러넘치면 되긴 한다. 그럼 그걸 가지고 SOC 비용을 마련하면 되니까. 그래서, 우리는 어떤 광구를 받았을까. 석유가 꽉꽉 들어찬 놈으로다가 물건을 잘 받았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국회에서 이라크 전쟁 찬반 투표를 지켜보았던 나는 공교롭게도 이라크 광구를 심의하는 현장에도 있었다. 심의과정에서의 발언이나 분위기를 여기 적을 수는 없다. 그러니 기사와 감사원 보고서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결말을 대신한다. 우리나라의 대표 석유기업인 석유공사는 쿠르드 측으로부터 얻은 광구 탐사사업에 대부분 실패하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초대형 광구로 기대를 모았던 이라크 바지안 광구는 2007년부터 탐사를 했지만 2014년에 사업을 접었다. 이라크의 상가우사우스 광구는 2016년에 철수했다. 2011년 감사원 감사 시점까지 상업적 가치가 있는 원유가 발견되지 않았고, 이라크 쿠시타파와 하울러 광구는 유망구조가 발견되지 않는 광구라는 초기 정보를 숨긴 것이 밝혀졌다.
원래 석유탐사사업은 시일도 오래 걸리고 성공률도 높지 않다. 하지만 위의 사업들은 이라크전 파병의 연장선상에 놓여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심지어 2010년에 석유공사가 SOC 건설의무를 이행하지 않자 쿠르드 측이 항의를 해왔다. 석유공사는 하는 수 없이 쿠르드에 현금으로 약 12억 달러를 송금했다. 실체없는 국익을 좇아 대통령은 외로운 결정을 했고, 국민들끼리 미친듯이 싸웠지만 '깡통 광구'를 받아왔으며 손에 남은 건 청구서 뿐이었다.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지나, 지금은 이라크에 진출하는 기업들 사정이 좀 나아졌을 것이다. 두 나라간 이런저런 교류와 협력도 이어졌다. 그러나 전쟁 직후 숨가쁘게 돌아가던 그 시기, '이라크 파병'의 대가로 받은 것은 없었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내가 모르는 어떤 선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국 국민들조차 모르는 어떤 선물을 받으려고 당시 그렇게 무리하게 파병을 했다면 더 큰 문제 아닌가. 이라크 전쟁이 너무 길어져서 파병에 따른 과실이 맺어지기 어려웠던 것일 수도 있다. 하긴 미국 조차 2011년에야 이라크전이 끝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럼 대체 이 전쟁은 한국 사회에 무엇을 남긴 걸까. 이라크 전쟁에서 이익을 본 건 누구였을까.
모두가 홀린 듯한 시간이었고,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미국의 심장부가 타격을 받은 직후에는 미국 내 용감한 지식인들 조차 대테러 전쟁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 힘든 분위기였다. 9.11 테러 직후 미국 공항의 입국심사장은 가관이었다. 유색인종은 따로 불러내어 줄을 세우고 미국 들어와서 어디서 뭐할건지 따져 물었으며, 노골적인 신체 검색까지 했다. 대학에서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대테러 전쟁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어디에 어떻게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뿌리를 선제적으로 파괴할 수 있을지 집중 토론했다.
2006년,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전의 실패를 인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대한 빨리 이라크인에게 통치권을 이양하겠다고 했다. 이라크 전역의 현지 요원들이 미국이 이제라도 빠져나가지 않으면 진퇴양난이 되어 더 폭망할거라는 극비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한 것이다. 미 행정부의 강경파들은 그동안 왜곡된 정보로 전쟁을 밀어붙였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이라크전 발발 10주년이 되자 미 언론들은 '실패한 전쟁'이었다는 평가를 앞다투어 내보냈다.
하지만 그들의 '실패한 전쟁'이라는 반성만으로는 충분한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의 아귀다툼 속에서 미국 부통령 말고 또 누구의 배를 불린건지 알고 싶었다. 한국 전쟁을 겪은지 반백년 밖에 안된 한국 사회를 또다시 반으로 찢어놓은 이 전쟁이 대체 누구에게 돈다발을 안겨주었는가 말이다. 대학에서 연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을 때 이 주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의외로 석유전쟁이 누구에게 수익을 안겨주었는가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는 많지 않았다. 데이터를 돌려보자 중동의 석유전쟁에 참여한 국가에 속한 석유기업의 수익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것이 나타났다. 참전국 기업 중에서도 특히 미국 기업의 수익이 더 높게 나타났다. SCI 저널에 이 내용을 실었고 내 안에 십여년 동안 뭉쳐있던 무언가가 조금이나마 풀려나간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다시는 전쟁을 겪지 않으면 좋겠다. 남의 나라 전쟁에도 휩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군다나 '실패한 전쟁'으로 평가받는 전쟁에 참가하느라, 우리끼리 피터지게 싸우는 일은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전쟁에 찬성하거나 반대하기 위해서는 그 전쟁의 속성과 내밀한 의도까지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어떤 역할을 하고 싶어도 때로는 힘이 부족하거나 경쟁에 밀려 의도한 바를 얻지 못하기도 한다. 당시 '엄혹한 국제 정세'를 감안해 파병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파병을 했음에도 '냉혹한 현실의 벽'에 부딪쳐 장미빛 환상이 그저 환상에 그쳐버렸다. 이라크전의 경제적 실익을 따져야 한다는 이들조차도 실제로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나중엔 석유 이권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세계질서 재편에 대응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때, 아니 지금이라도 우리나라는 에너지 세계질서 재편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가. 이라크 전쟁의 아픈 기억을 교훈으로 삼아, 에너지 패권 경쟁에 발빠르게 편승하여 미래의 에너지 메이저가 될 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