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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고양이 Oct 22. 2023

 우산장수 아저씨 살아계신가요

에필로그

어렸을 때 나는 삶의 본질적인 정서가 '슬픔'이라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슬프지 않은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어릴 때의 슬픔은 소소한 것들이었다. 놀이터에서 행복하게 놀다가 집에 가야할 때, 일요일이 끝나고 월요일 아침을 맞이할 때의 아쉬움 같은. 인간이 가장 슬픈 순간은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릴 때라고 했던가. 죽음은 생각보다 삶과 가까이 있듯이, 슬픔과 행복도 동전의 앞뒷면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유년 시절, 나의 슬픔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은 아파트 단지에서 만나는 우산장수 아저씨였다. 낡아서 바스라질 것 같은 리어카에 그보다 낡고 초라한 우산을 몇개 싣고 다니던 아저씨. 그 우산은 끝끝내 아무도 사지 않았으므로 우산을 수리하는 일을 주로 하셨다. 하지만 우산을 맡기는 이도 별로 없었다. 아저씨는 내가 그때까지 만난 사람 중 가장 삶이 힘들어보이는 사람이었다. 아저씨와 마주친 날이면 하루종일 속상했다. 마치 집이라고는 없는 사람처럼 남루한 행색에 핏발 선 눈, 세상 다 산 것 같은 무표정으로 정처없이 끌고가는 리어카. 대형 신축 아파트 단지의 푸르른 조경 속 아저씨의 모습은 대단히 이질적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사람들이 우산을 써야 하니까 우산 수리를 못하고. 비가 안오는 날은 아무도 우산을 안들고 다니니까 수리할 우산을 못 맡기고. 그럼 아저씨는 어떻게 해요?"


하도 걱정이 되었던 나는 부모님께 이렇게 물었다. 부모님도 딱히 답을 찾을 수 없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나라도 아저씨를 꼭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맑은 날씨에 '우산이요'를 외치며 돌아다니는 이 대책없는 아저씨와 마주치는 것이 너무 슬퍼서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었다. 나는 나름의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수리할 우산을 미리 아파트 화단 언저리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아저씨를 만난 다음 11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산을 가지러 다녀오면 늦는다. 아저씨는 가버릴테니까.


"우산이요 우산. 우산 고쳐요 우산."


약 일주일쯤 후에 마침내 우산 아저씨가 등장했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나는 가방을 내동댕이 친 채, 쏜살같이 화단으로 달려가 우산을 챙긴 후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아저씨는 말없이 내 우산을 리어카에 실은 후 느릿느릿 걸어갔다. 당시에는 수리비 지불이 후불제였다. 미리 금액을 물어봤던 나는 수리비가 천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저금통에서 무려 5천원이라는 거금을 뺐다. 이제 아저씨가 나타나 그 거금을 드리고나면 나의 과업은 종료된다. 아저씨, 얼른 오셔서 이 돈을 가져가세요. 우산을 맡길 때 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어느 늦은 오후, 저 멀리 리어카가 보였다. 난 후다닥 뛰어가서 리어카에서 내가 맡긴 우산을 찾아 살펴보는 척 한 다음, 5천원 짜리 한장을 내밀었다. 너무나 신이 났다.


"돈이 남는데."


아저씨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순식간에 천원짜리 네 장을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나에게 돌려주었다. '나머지는 가지셔요' 라고 말할 생각도 못했던 당시의 어린 나는 그 돈을 받기 싫어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3천원 아니에요? 이거 완전히 망가져서 고치기 힘든 우산을 고쳐주신 건데.“


3천원이라고 한번 우겨봤지만 아저씨는 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내게 4천원을 돌려주었다. 난 울상이 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뒤돌아서 집에 와버렸다. 그날 저녁 퇴근한 아빠를 붙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우산장수 아저씨 있잖아. 맨날 비도 안오는데 우산 팔러 다니시잖아. 비오는 날에는 비 맞고 다니시고. 이렇게 추운 날 옷도 이상한 거 입으셨어. 그래서 내가 돈 많이 드리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천원만 받으셨어. 나머지는 거슬러주셨어."


아빠는 울음 섞인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건 걱정하지마. 아빠도 한달에 한번 정도 그 아저씨 마주치거든. 그때마다 맛있는 거 사드시라고 조금씩 돈을 드리고 있어. 아빠가 하고 있으니 너는 안해도 되."


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몇번이고 정말이냐고 물었다. 얼마를 드리냐고도 물었다. 조금 안도감이 밀려왔다. 아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아저씨가 조금 아프시다고 했고, 그래서 아빠도 우산 아저씨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아빠와 나는 그날 아저씨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이후로도 우산장수 아저씨는 오랜 기간 나의 화두가 되었다. 놀이터 정글짐에 거꾸로 매달려있다가도 그 아저씨가 지나갈 때면 내려와서 아저씨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곤 했다. 우산장수 아저씨가 행복해지지 않으면 나도 행복하지 못할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은 이 사회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던 걸까. 그래서 나만 행복해서는 완전히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막연하게 깨달은 걸까. 좀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때부터였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하필 나는 행복이 아닌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집에서도 많이 울었고 유치원에서도 많이 울었다. 유치원이 집 앞이라 가끔 혼자 등원을 했는데, 평소보다 좀 일찍 도착한 날이었다. 아무리 벨을 눌러도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6살 어린이가 갈 곳이 없다니, 너무나 서럽고 슬펐다. 나는 굳게 닫힌 유치원 문 앞에서 데시벨 최대치로 울기 시작했다. 10층에 사는 내 친구 엄마가 울음소리를 듣고 내려오셔서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나를 돌봐주셨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부모님까지 참여하는 유치원 행사에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러 오신단다. 나도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 대단히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이 한명씩 나가 선물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초긴장 상태로 나가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산타가 들고 있는 선물을 바라보았다. 다른 친구들에겐 별 말 없이 선물을 나눠주던 산타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올해 너무 많이 울었어. 내년엔 울면 안돼."


'울면 안돼'라는 곡의 실사판을 경험한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산타가 어떻게 알았나 싶어 쑥스러운 마음에 선물을 빼앗다시피해서 꼭 끌어안았다. 그러나 산타와 약속한 후에도 울 일은 많았다.


어느 한겨울 아침에는 비둘기 한 마리가 베란다에 떨어져있었다. 동물을 좋아했던 나는 즉시 상자를 줏어와 폭신한 천을 두르고 비둘기를 넣어 돌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비둘기를 기르는 것이 위생상의 문제가 있을 법도 했지만, 당시엔 동물병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비둘기들에게 하얀콩, 검정콩, 쌀, 조, 완두콩을 골고루 먹여본 경험이 있던 나는 비둘기들이 하얀콩을 제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쌀 가게에 가서 하얀콩을 오백원어치 사와서 먹였다. 비둘기는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비둘기는 몇일 후 상자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세상에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지면, 행복과 더불어 슬픔도 두배 세배로 찾아오기 마련인가보다. 마음이 괴로웠지만 비둘기를 돌봐주지 말걸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랬으면 더 괴로웠을 것이다. 비둘기가 마지막 순간에 온기를 느끼고 떠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삶에서 슬픔은 기쁨보다 훨씬 자주 맞이하게 되는 감정이다.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좌절할 때,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경험할 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슬픔은 수시로 찾아온다. 이 슬픔을 극복하고 싶다면, 나만의 유쾌한 방식을 시도해볼 것을 추천한다. 슬픔에 잠식 당하는 대신, 가장 나다운 방법으로 슬픔이 빠져나갈 출구를 기꺼이 만들어주자. 그 틈으로 나를 둘러싼 이들의 행복이 가득 차오를 거라고 믿어보면 어떨까.


우리들의 하루는 매 순간이 슬프지만, 언제나 출구가 있다고 믿을 때 마법같은 일상이 찾아오기를.

너무나 슬픈 오늘 하루 보낸 당신, 내일은 사랑하는 이들과 그만큼 더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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