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터널 속에서 뒤죽박죽으로 기록된 일상들
22. 07. 11
나의 하늘은 단 보름 만에 무너져 내렸고 나의 가슴은 날카롭디 날카로운 비수에 난자당했다. 일분일초가 지나고 시간 시간이 지나가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나의 상처와 아픔은 더욱 커져간다.
세상 무엇과도 비교조차 될 수 없는 나의 모든 것이었던 나의 자랑 나의 슬비가 나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는 사실이 조금씩 조금씩 현실로 다가온다. 2005년 11월 16일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나의 시계는 17년도 채우지 못하고 2022년 7월 7일 새벽 4시 16분에 영원히 멈추어 버렸다. 우리 슬비가 떠난 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버렸고 우리 슬비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내 인생 모든 것을 담은 꿈이 되어버렸다.
이 세상에 나란 존재가 지워져 버렸고 나의 존재를 증명해 주던 나의 분신의 존재가 지워져 버렸다. 슬픔이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고 견디지 못할 고통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못할 빈자리를 보며 우리 슬비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 슬비가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면 숨쉬기 힘들 만큼 아픔이 밀려온다. 우리 슬비가 새벽에 떠나서 그런 걸까? 새벽에 잠이 깨면 아무런 준비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우리 슬비가 써내려 온 블로그를 찾았다. 마지막 블로그를 포스팅하지 못한 채 우리 슬비는 떠났다. 독한 마음을 먹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아이돌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 한 단락이 눈에 띄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아침에 정신력으로 등교했고 너무 아파 헛구역질까지 했다고 한다. 왜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왜 참았을까? 이제와 후회한들 무엇할까? 이제와 아쉬워한들 무엇할까?
불쌍한 내 새끼, 귀가하는 주 금요일에 통화하면서 토요일에 병원을 가자고 했다. 당연히 알았다고 했고 토요일 아침에 병원 가자고 깨웠다. 이제 안 아프다고 안 가도 된다고 해서 그냥 재웠다. 알고 보니 그날에도 새벽까지 머리가 아팠다고 한다.
내가 부모로서 자격이 있는 걸까? 지 새끼 아픈 것 하나 돌봐주지 못하고 신경 쓰지 못한 내가 아빠라고 불릴 자격이 있었던 걸까? 내가 아빠로서 자격이 없었기에 우리 슬비를 저렇게 데려간 걸까?
내게 남은 거라곤 우리 슬비의 흔적들과 사진밖에 없다. 이제 슬비의 육신은 불태워져 뼛가루만 남았고 나의 슬비는 영원히 볼 수 없음인데 눈물을 흘릴 자격이 내게는 있는 걸까? 나 스스로가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과연 우리 슬비를 뒤로한 채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있을까? 우리 슬비가 없는 일상이 과연 나에게 돌아갈 의미가 있을까? 그 의미 없는 일상을 살아갈 의미도 자신도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건 우리 집사람에게 너무도 가혹하니까 그래서 그냥 살아가야 한다. 이 아무런 의미 없는 세상을 아무런 의미 없이 아무런 희망 없이 무미건조하게 이 세상을 유지하는 부품하나로 살아가면서 우리 슬비에게 더 주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뉘우치며 그렇게 마음에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슬비야 아빠는 이렇게 남은 일생을 후회와 뉘우침으로 살아가면서 우리 슬비의 명복을 빌께. 거기에 있는 근심과 걱정, 아픔과 고통, 슬픔과 애환은 모두 아빠에게 보내렴. 그리고 우리 슬비는 그곳에서 오로지 사랑과 행복, 기쁨과 환희 같이 좋은 것들만 누리며 살길 바랄게. 언젠가 아빠에게 물었지. 다시 태어나도 엄마랑 결혼할 거냐고. 아빠는 당연하다고 말했었지.
그래야 우리 슬비를 또 만날 수 있으니까
아빠는 다음 생에도 엄마를 만날게. 그때 다시 만나자. 그때는 오래도록 아빠 딸로 있어줘.
슬비야 아빠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슬비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