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목적과 의미가 과거에 갇혀버렸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
슬비가 결국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것을 도저히 실감할 수가 없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사실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슬비를 위해 많이 울어주지도 못했다. 돌이켜보면 가장 미안하고 가장 후회되는 것이 슬비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안아주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도 매일 후회를 하고 있다.
슬비는 언제나 내 옆자리에 있었다. 지금은 슬비가 떠난 지 1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아직도 슬비는 언제나 내 옆자리에 있다. 슬비를 생각할 때면 항상 흐뭇한 마음으로 시작해 눈물과 함께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고 숨쉬기가 힘들어질 때쯤 상상에서 깨어나곤 한다.
슬비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 슬퍼할 새도 없이 할 일이 많았다. 매정하고 냉정하게도 슬비를 집중치료실에서 데려 나오는데도 다양한 절차가 필요했다. 새벽 4시에 병원비 1천7백만 원을 수납해야 데려올 수 있었다. 신용카드 한도를 훌쩍 넘는 금액이었고 그만한 현금도 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기에 슬비엄마를 기다려야 했다. 차갑게 식어가는 내 새끼를 집중치료실에 혼자 방치를 해야 하는 그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슬비를 어둡고 침침한 영안실로 데려가야 했고, 포항 장례식장으로 데려와야 했다. 내 손으로 내 목숨보다 소중한 내 새끼를 옮겼다. 지금도 그 장면들이 매일 떠오른다.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각인되어 내 숨이 멎는 날 함께 지워지리라.
슬비의 마지막을 3일도 지나지 않아 끝내야 했다. 너무나 허망한 시간들이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시간들이다. 절대로 겪어서는 안 되고 이해하려 해서도 안 되는 그런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했고 마음껏 울어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계속 흘렀다.
13년 전 슬비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외할머니 자리까지 마련해 뒀었는데... 그 자리가 우리 슬비의 것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참으로 야속하다.
슬비를 외할아버지 옆자리에 데려다 놓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제야 슬픔이 몰려온다. 이젠 내 삶도 그렇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이 과거가 되어버렸다. 슬비의 일거수일투족이 과거에 갇혀버렸고 내 삶의 목적과 의미가 과거에 갇혀버렸다. 숨 쉬는 것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렸고, 몸짓 하나, 손짓 하나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삶이 되어버렸다. 비현실적이던 순간들이 현실로 다가와 매시간 나를 괴롭혔고,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슬비의 흔적들이 나를 괴롭혔다. 눈을 감으면 스스로의 무능함을 책망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고, 세상과 단절하겠다는 절망의 목소리가 귓속을 누비고 다녔다.
우리는 도저히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고, 말 한마디 제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유일하게 기댈 곳은 술이었다. 눈을 뜨고 있을 때면 항상 술을 마셨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쓰러질 때까지 마셔지진 않더라... 그냥 마시다 잠들고 깨어나면 다시 술을 마셨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3개월을 누워만 있었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숨 쉬는 것에도 의미를 느낄 수 없었기에 우리에게 남은 삶은 검은 똥덩어리보다 못한 것들이었다.
우린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둡고 긴 터널에 갇힌 것이었다. 전후좌우 방향도 알 수 없고 입구도 출구도 찾을 수 없는 그런 터널이다. 우리 슬비가 쓰러져 이런 터널에 갇힌 게 아닐까 생각해 보면 또 눈시울이 붉어진다.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길을 걸었을지 가슴이 미어진다. 언제나 행복하다고 생각했었기에 가슴이 아프다거나 가슴이 미어진다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던 것인지를 나는 항상 감사하며 지냈다. 슬비가 밝고 건강하게 너무나 잘 자라는 것을 감사했고, 항상 헌신적으로 가사와 육아를 하는 슬비엄마에게 감사했으며, 모나지 않고 둥글게 살아감을 감사하면서 살았다. 오만하지도 않았고 자만하지도 않았다.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가장 큰 형벌을 받을 만한 죄를 짓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뉘우치게 만드는 형벌을 받고야 말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불속에서 술을 찾았고 술을 마시다 그대로 누워 기절하듯 잠을 잤다. 악몽에 시달리듯 깨어나 다시 술을 마셨고 또 잠이 들었다...
그렇게 3개월을 죽지 못해 살았다...
(다음화부터 어둠 속에 갇혀서 써내려간 3개월간의 기록들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