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전의 너를 기억해. 좋아하는 가수에 열정적이다 못해 헌신적인 모습의 네가 멋져 보였어. 나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광팬이라서 네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지.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안경을 낀 너는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네가 하고자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거침없이 하는 아이였지. 똑 부러지게 의사표현을하면서도 쾌활하고 밝은 네 모습이 좋았는지 쉬는 시간이었나, 같이 짝이었을 땐가 너랑 나누는 대화들이 난 참 즐겁고 재밌었어. 과연 그때의 내 모습은 어땠는지 나도 살짝 물어보고 싶다, 친구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우리는 운명처럼 만나게 돼. 혹시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면 서로를 알아봤을까? 어색해서 그냥 지나쳤을까?어떻게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없던 우리가 슬초브런치 2기라는 모임에서 같은 기수로, 동기로 마주칠 수가 있는 건지. 이건 하늘이 맺어준 사랑도 아니고 무슨 우연이 이렇게 극적일 수가 있는데? 올초 어느 따스한 봄날, 무슨 이유에선지 동기들 소모임에서 네 명이함께 보게 되어 모임 장소로 나갔지. 그동안 단체 채팅방에서만 몇 마디 나눈 사이일 뿐 오프라인에선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잖아. 첫 만남이라 긴장도 됐고 네가 하도 우리 동기들 사이에서 마스코트 같은 존재라 참 많이 궁금하기도 했어. 넌 내 옆에 앉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얼핏 얼핏 보이는 너의 옆모습에 난 슬슬 네가 어디서 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낯이 익는다고 해야 하나, 근데 잘 모르겠는 거야. 닮은 사람은 어디에나 많으니까, 또 누군가와 혼동을 할 수도 있으니 그런가 보다 했지.
식사를 하느라 자리를 옮겼고 그때 넌 내 앞에 앉게 되었어. 엇, 그때 순간 뭐랄까, 올 것이 온 듯한 느낌이 훅 들었어. 넌 확실히 내가 아는 사람이맞았던 거야.내가 나름 눈썰미가 좋거든(흐흐). 갑자기 네 목소리가 들어본 목소리였고 네 웃음이 본 적 있는 웃음인거지. 조심스레 네 과거 모습을 상기시키며 혹시 우리 같은 고등학교 나온 것 아니냐고 물으니 신기하게도 네가 학교 이름을 말해주는데 오마갓 맞는 거야 내가 나온 그 고등학교 말이야. 혹시 이름이... 하면서 서로 이름을 확인하고 우린 잠시 말이 없었어. 반갑다고 소리 지르며 포옹이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손깍지 끼고 폴짝폴짝 뛰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왜 잠시 얼어붙었던 걸까? 지금 같았음 반갑다고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진짜 지금 생각해도 그때 우리의 행동 너무 재밌었어.
서로 놀란 거야. 설마 우리가 다시 만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한 거지.나도 그랬으니까. 잠시 '여긴 어디? 난 누구?' 하며 어리둥절하더라니까. 타임머신을 타고 급하게 29년을 거슬러 올라가려니 우리의 머릿속이얼마나 체할 것 같았겠어. 30년이면 강산이 3번이나 바뀔 만큼의 긴 시간인데 그동안 우리에게 오죽 많은 일들이 있었겠니. 그 오랜 시간을 겪어낸 우리가 '글쓰기'라는 한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서로에게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잖아. 근데 지금 생각하니미안하다. 그냥 내가 먼저 일어나 널 덥석 안아줄걸 그랬어. 어쩌면 그때의 난 너와의 기억을 찬찬히 되짚는데 두뇌를 풀가동하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지 몰라. 그런데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오. 너는 내 고등학교 동창인 건 변함없는 일이고, 다시 만난 세상에서의 우리는 이제 '글쓰기 동지'로 뭉치게 되었다는 것도 바뀔 수 없는 현실이잖아.
앞으로 너랑 나누게 될 이야기들이 아주 많을 것 같아벌써부터 흥미진진한걸. 29년 전 그때의 우리처럼깔깔깔 유쾌한 사이로 재밌게 지내보자. 내 앞에 다시 나타나줘서 정말 고마워.반갑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