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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Nov 08. 2024

너를 기억하고 지금을 생각해

소중한 인연

29년 전의 너를 기억해. 좋아하는 가수에 열정적이다 못해 헌신적인 모습의 네가 멋져 보였어. 나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광팬이라서 네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지.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안경을 낀 너는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네가 하고자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거침없이 하는 아이였지. 똑 부러지게 의사표현을 하면서도 쾌활하고 밝은 네 모습이 좋았는지 쉬는 시간이었나, 같이 짝이었을 땐가 너랑 나누는 대화들이 난 참 즐겁고 재밌었어. 과연 그때의 내 모습은 어땠는지 나도 살짝 물어보고 싶다, 친구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우리는 운명처럼 만나게 돼. 혹시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면 서로를 알아봤을까? 어색해서 그냥 지나쳤을까? 어떻게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번도 본 적 던 우리가 슬초브런치 2기라는 모임에서 같은 기수로, 동기로 마주칠 수가 있는 건지. 이건 하늘이 맺어준 사랑도 아니고 무슨 우연이 이렇게 극적일 수가 있는데? 올초 어느 따스한 봄날, 무슨 이유에선지 동기들 소모임에서 네 명이 함께 보게 되어 모임 장소로 나갔지. 그동안 단체 채팅방에서만 몇 마디 나눈 사이일 뿐 오프라인에선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잖아. 첫 만남이라 긴장도 됐고 네가 하도 우리 동기들 사이에서 마스코트 같은 존재라 참 많이 궁금하기도 했어. 넌 내 옆에 앉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얼핏 얼핏 보이는 너의 옆모습에 난 슬슬 네가 어디서 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낯이 익는다고 해야 하나, 근데 잘 모르겠는 거야. 닮은 사람은 어디에나 많으니까, 또 누군가와 혼동을 할 수도 있으니 그런가 보다 했지.


식사를 하느라 자리를 옮겼고 그때 넌 내 앞에 앉게 되었어. 엇, 그때 순간 뭐랄까, 올 것이 온 듯한 느낌이 훅 들었어. 넌 확실히 내가 아는 사람이 맞았던 거야. 내가 나름 눈썰미가 좋거든(흐흐). 갑자기 네 목소리가 들어본 목소리였고 네 웃음이 본 적 있는 웃음인거지. 조심스레 네 과거 모습을 상기시키며 혹시 우리 같은 고등학교 나온 것 아니냐고 물으니 신기하게도 네가 학교 이름을 말해주는데 오마갓 맞는 거야 내가 나온 그 고등학교 말이야. 혹시 이름이... 하면서 서로 이름을 확인하고 우린 잠시 말이 없었어. 반갑다고 소리 지르며 포옹이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손깍지 끼고 폴짝폴짝 뛰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왜 잠시 얼어붙었던 걸까? 지금 같았음 반갑다고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진짜 지금 생각해도 그때 우리의 행동 너무 재밌었어.


서로 놀란 거야. 설마 우리가 다시 만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한 거지. 나도 그랬으니까. 잠시 '여긴 어디? 난 누구?' 하며 어리둥절하더라니까. 타임머신을 타고 급하게 29년을 거슬러 올라가려니 우리의 머릿속이 얼마나 체할 것 같았겠어. 30년이면 강산이 3번이나 바뀔 만큼의 긴 시간인데 그동안 우리에게 오죽 많은 일들이 있었겠니. 그 오랜 시간을 겪어낸 우리가 '글쓰기'라는 한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서로에게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잖아. 근데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다. 그냥 내가 먼저 일어나 널 덥석 안아줄걸 그랬어. 어쩌면 그때의 난 너와의 기억을 찬찬히 되짚는데 뇌를 풀가동하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지 몰라. 그런데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오. 너는 내 고등학교 동창인 건 변함없는 일이고, 다시 만난 세상에서의 우리는 이제 '글쓰기 동지'로 뭉치게 되었다는 것도 바뀔 수 없는 현실이잖아. 


앞으로 너랑 나누게 될 이야기들이 아주 많을 것 같아 벌써부터 흥미진진한걸. 29년 전 그때의 우리처럼 깔깔깔 유쾌한 사이로 재밌게 지내보자. 내 앞에 다시 나타나줘서 정말 고마워. 반갑다, 친구야!!!



친구 Lou가 벨라 Lee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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