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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Mar 15. 2024

화(花 )양연화를 누릴 자격

Epilog

싱그럽고 아름다운 꽃은 행복한 마음을 전해주지만 헤어짐을 마음먹은 뒤에는 안쓰러운 모습으로 변해 마음이 아파요. 당당하고 도도하게 얼굴을 들고 있던 꽃잎은 자꾸만 땅을 바라보며 축축 처져가는데 안타깝게도 제가 해줄 수 있는 별로 없어요. 다른 꽃에 기대어 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개를 떨궈서 아쉬운 마음에 구강청결제나 락스, 설탕 등을 매일 번갈아가며 화병에 넣어 보지만 생의 골든타임을 넘겼는지  소용이 없네요. 본디 이렇게 연약하고 가녀린 존재면서 그동안 어쩜 그리도 화사하고 생글생글하게 웃었는지 그 에너지의 원천이 궁금했어요. 영양소가 풍부한 흙 속에 뿌리가 박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물과 빛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 건데 말이죠. 손만 대도 꽃잎이 후드득 떨어지고 위치를 바꾸려 꽃대들을 들어 옮기다 줄기가 휙휙 꺾일 때도 있지만 꽤나 의연한 자태로 품위를 잃지 않는 모습이 참 기특해요.



저는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반짝이는 순간이 자주 왔으면 좋겠어요. 인간도 정말 나약하잖아요. 상처받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미워하기도 하면서 내 안의 검은 마음들을 통제하기 힘들어 괴로워하는 날도 많죠. 저 또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울고 속상해하는 날도 많았어요. 하지만 마냥 안주해 있을 수는 없잖아요. 더 나을 미래를 상상하며 매년 버킷리스트를 수정하고 계획을 하고 실천하면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제 화양연화(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를 만드는 일이 삶에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요. 저의 화양연화는 '저에게 주는 선물'을 뜻해요.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을 사랑으로 꾹꾹 채워 나가는 일이요. 부러지는 강인함이 아니라 유연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멘털을 유지하는 일이요. 건강이라는 에너지도 꾸준히 적립해야 해요.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계속 사랑해 주는 거였어요. 그래야 생기 있고 밝은 모습으로 상대방에게도 건강한 사랑을 나눠줄 수 있더라고요.


저는 30대 후반부터 종종 병원 신세를 지곤 했어요. 입원해 있다 보면 병원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퇴원일이 되어 하나, 둘 가족들과 함께 짐을 챙겨 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저는 언제 나갈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을 부여잡았답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평범하고 뻔한 날들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는 행운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어요. 그래서 평범한 매일이 저에겐 너무나 소중했고 하루하루를 가벼이 보지 않게 되었어요. 병원 밖에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건강하다는 증거이기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어요. 그러면서 든 생각은 단순히 앞만 보며 열심히 사는 게 아니고 제 인생을 잘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제 안을 깊이 있는 사랑과 감사함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어요. 낙천적이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를 더 인정하고 많은 칭찬을 해줬어요. 햇살 같은 따스함으힘껏 토닥여줬어요. 평온하고 충만한 기분이 차오르니 소소한 일에서도 화양연화를 이룰 수 있었어요. 짜릿한 기분은 아니어도 온전한 기분으로  삶의 밸런스들이 자리를 맞춰 갔지요. '고마운 마음 쉽사리 망각하고  당연한 것이 되었을까' 계속 고민하다 보면 떠오르는 생각은 주변에 고맙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였답니다.


예전에 방영된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 편'에서 배우 박보검은 미래의 보검이에게 전하는 영상편지에서 '늘 감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여행 내내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 모습이 참 인상 깊었어요. 어떻게 매사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지? 힘들고 고된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것까지도 고맙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하는 의아함이 들었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어요. 아프고 힘든 가정사를 감내하던 지난날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겠, 그 시간들이 본인을 단단하게 만들어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그의 화양연화는 '시련'을 '감사하다'는 말로 대체한, 그 순간부터 시작된 거예요. 역시 화양연화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려 있었.


tvN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




어느덧 10화로 브런치 연재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 브런치 북을 만들 때의 솔직한 목표는 꽃이라는 식물에 대해 많은 정보들을 공부하고 글로 적어보고 싶었어요. 배달받은 다양한 꽃들을 사진으로 찍어 꽃의 종류와 꽃말, 특징들을 자세하고 재미있게 설명해 많은 분들이 꽃을 더 좋아 주시기를 바랐거든요. 그런데 회차를 거듭해갈수록 꽃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그에 얽힌 저의 이야기들이 너무나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추억을 더듬더듬 짚어 나가니 휴대폰 속에서 사진으로 덩그러니 남아있던 기록들이 글을 통해 실타래 풀리듯 술술 나오게 되었어요. 이미 몇 년은 지난 일들인데도 뿌듯한 기억, 고마운 기억, 애틋하고 미안한 기억들 글을 쓰는 순간 눈앞에 생생히 그려졌답니다.



브런치 연재를 통해 다양한 추억들을 소환할 수 있었 10주가  소중했습니다. 저의 연재는 여기서 끝이 나지만 꽃은 영원히 사랑스럽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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