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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Apr 16. 2024

엄마가 집을 나갔다.

아빠는 주동자

"오빠, 애들 보기 힘들 것 같으니까 퍼즐이라도 하나 시킬까? 보드게임?"

"아니!! 아무것도 시키지 마. 다 생각이 있으니까."

"생각? 오빠가 계획을 한다고?"

"계획까진 아니고~ 아무튼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알아서? 생각을 한다고?? 그게 가당키나 한 거였니? 신경을 쓰지 말라는 말이 오히려 더욱 신경 쓰이는 건 왜일까. 남편은 평상시와 하나도 바뀐 게 없이 태평하게 소파에 누워 과자를 먹으며 핸드폰을 보는데 말 한마디에 나는 왜 불안해져서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피며 걱정을 하고 있는 걸까? 차라리 아무 말을 하지 말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어느 미스터리보다 무섭다.



 

 "기차표 예매 끝! 오전 10시 반 기차야. 나 기차역까지 데려다줄 거지?"

미리 예매해 둔 기차표를 마치 지금 예약한 것처럼 연기를 펼치며 그의 꿍꿍이를 알아보기로 했다.

"10시 반? 그러면 여기서 9시 반에는 나가야겠네? 그러면... 어디 보자...

 9시 반에 나가서 자기 내려주면 10시 좀 넘을 거고, 다시 집에 오면 11시 되겠다.

 그럼 애들 보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가 내려오라고 해서 점심을 먹이고.. 아~! 그냥 시켜 먹으면 되겠구나?"

혼자 중얼중얼 시간계산을 하며 크리스마스 이븟날 잠들기 직전의 아이처럼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며 아이들보다 기대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남편의 꿍꿍이가 예삿일이 아님을 짐작케 하는 빼박증거다.

"11시부터 점심을 먹는다고? 아침을 8시 정도에 먹을 건데?"

"응. 중간에 끊기면 재미없어. 차라리 다 하고 먹던지, 대충 먹지 뭐."

"배달시킬 거면서 뭐..."

"그러니까 반찬 여러 개 있는 거 말고 간단히 먹는단 얘기야."

"애들이랑 뭘 하려고 대체 그러는 거야?"

내 질문에 순간 조커처럼 입만 웃는 무서운 남편이 말했다.

"내가 만발의 준비를 했지. 자기 조이스틱이 뭔지 알아?"

"조이스틱? 오빠가 저번에 게임한다고 만든 거?"

"응. 그건데 내거는 내가 만들어서 허접하고.. 진짜 좋은 거 2개를 빌려놨지."

K.O.만 봐도 무슨게임을 할지 알 것 같다 .

"왜?"

"왜긴 왜야, 애들이랑 게임하려고 그러지.

 엄마가 없는 날이니까 게임 원 없이 하게 해 주려고. 이런 날도 있어야지."

"무슨 의돈지는 알겠는데... 뒷수습 어떻게 하려고 그래?"

"뒷수습할게 뭐 있어? 어지럽히는 게 없는데..."

답답한 사람 같으니라고!! 차라리 집안이 쓰레기장이 되는 게 낫지, 애들이 게임의 재미에 빠져 집중력이 떨어지고, 공부습관 힘들게 잡아놓은 거 다 무너지면 책임질 거냐고!! 이 사람이 그동안 나의 노고를 몰라주는 것 같아 순간 서운함과 화가 동시에 올라온다. 아이들이 하교 후에 책을 읽으며 간식을 먹는 일, 놀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마치는 것들이 당신의 눈에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렇게 만들기까지 나는 수년이 걸렸다고 이 사람아!!!! 그동안 있었던 아이와의 전쟁설을 풀고 싶었지만 "하아~"하는 깊은 한숨으로 모든 걸 대신해 본다.




 외출을 하면 1시간마다 오던 연락이 6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한편이 답답해지는 건 기분 탓일겠지? 365일 중에 단 하루라는 말에 쿨하게 OK 해 주었지만, 쿨하지 못한 마음은 내심 몇 시간이나 게임을 하고 있을런지, 제 때에 밥은 챙겨 먹고 하는 건지 궁금반 걱정반이다. 평소에는 연락 오면 오랜만에 나왔는데 자꾸 흐름 깨지고,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민폐니까 급한 것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고 큰소리쳤기에, 새삼스럽게 집이 잘 있는지 궁금해서 연락했다고 속 보이는 행동을 할 수는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정용 CCTV를 설치해 놓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잠시 스치듯 해본다.

뒷모습에서 초집중한 너희얼굴이 보인다.

5시가 되자, 드디어 카톡이 온다.

저녁을 먹고 있는 사진인데 역시나 식사 또한 TV를 바라보며 앉아있다. 이 세 사람 오늘 서로의 얼굴을 몇 분이나 바라보았을까. 전화하듯 대화만 하고 있었겠지?  1인 1 메뉴에 사이드 메뉴까지... 보아하니 점심은 대충 먹었는지 상위에 펼쳐진 음식들이 빈 곳 없이 가득이다. 그래.. 내가 밥을 안 해놓은 탓이니 실컷 먹으렴.

'내 탓이다 내 탓이다. 이런 날도 있어야 한다. 풀어주는 날도 있어야 스트레스도 풀지.. '

혼자 오락가락 자신을 탓하고 이해시키며 감정을 추스르며 그동안의 육아 스트레스를 맥주와 수다로 나 또한 풀어본다. 맥주의 청량함이 스트레스와 함께 걱정도 가져간다. 긴장하던 몸이 풀리고 정신없던 머릿속이 멍해진다. 그래 이까짓 거. 해봤자 3~4시간일 텐데 너무 숨 막히게 이러지 말자. 나는 놀면서 애들한테 공부하라는 건 반칙이지~ 이렇게 사는 인생도 나쁘지 않으니... 가끔은 이런 시간을 좀 더 가져야겠다. 이제야 숨을 쉬고 살아있는 기분이다.


아, 이젠 다 모르겠다.
나부터 숨 좀 쉬자.



채움보다 중요한 것은 비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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