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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달리기만 하면 꼴찌였다

by 철봉조사 이상은 Feb 07. 2025

 어렸을 때부터 나는 달리기만 하면 꼴찌였다. 그렇게 몸이 약한 것도 신체적으로 불리한 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유독 못했다. 아직도 그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반짝반짝 눈부신 햇살, "우와아"하는 아이들의 함성에 섞인 터질 듯한 나의 숨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결국 모두의 함성이 잦아들 때쯤 나는 맨 뒤에 있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비참했다. 갓 성인이 되었을 때도 어쩌다 가끔씩 그 시절의 꿈을 꾸었다. 악몽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유쾌하지 않았던 경험이 반복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시작한 달리기에 집착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는 신기하게도 그 어릴 때 꿈을 꾸지 않았다. 오히려 달리기는 매우 즐거운 기억으로 남는 꿈으로 바뀌었다. 꼭 이것이 달리기를 지속한 이유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만큼 나의 불편한 기억을 메워주던 달리기였다.


 달리기를 시작한 계기는 20대 사회 초년생일 때 직장 동료들과의 소통을 위함이 이유였다. 그 시기는 정말 업무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다. 그나마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고 푸념을 하는 것이 낙이었는데, 이게 모자라다고 느껴서 주말에도 이어졌다.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고민들을 해소할 생각이었지만, 이게 확장되어 운동까지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큰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아서 종목은 '달리기'로 정하였다. 뭔가 잘 맞았는지 정말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사실, 이런 건전한 운동을 지속한 진짜 이유는
 '맛있는 술자리'를 갖기 위한 것이었다.

 음주 전에 운동을 하면 그렇게 맛이 좋더라... 운동과 음주 사이클이 아주 충실이 이어져갔다. 그렇게 계속해 나가다가 어느 순간 멤버 중 한 명이 충동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다 같이 마라톤 대회를 나가보자!"

"그까짓 거 그래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2012년 대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처럼 달리기 붐이 아니었을 때 아디**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 10km를 나갔다. 그런데 너무 좋더라! 대회장의 분위기, 풍성한 기념품, 나는 뭔가 특별한 것을 한다는 우월감까지, 대회날은 다 뛰고도 그다지 힘들지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 후로 일주일 기어 다녔다...) 그렇게 계속 달리기 대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다른 내가 좋았다.


2012년 아디** 한강마라톤 완주(사진에 다 나와 있네...)


 성인이 되어 고정적인 운동이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체력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나를 표현하는 개성으로서의 운동은 자존감을 향상해 주었다. 계속해 나가다 보니, 나는 이런 달리기에 푹 빠져서 살았다. 전혀 달리지 않는 일반 성인들은 200미터도 숨차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2킬로, 아니 20킬로도 거뜬히 달렸으니, 마치 내가 초능력자가 된 듯한 착각까지도 들었다.

그렇게 나는 '마라토너'가 되었다.


 도서 <2025 트렌드 노트>에서는 2024년 가장 부상한 여가 활동인 러닝에 대해서 소개한다.

"러닝의 진화에는 '측정되는 성장'이라는 속성이 있다."

"지금의 (러닝) 키워드는 '훈련', '성장', '어제보다 나은 나'다."


 코로나 이후로 같이 뛰는 친목의 달리기가 유행했다면, 최근의 러닝 열풍은 성장의 측면이 더 강조되고 있다. 정말이지 그 매력에 한 번 빠진 사람은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다. 특히 웨어러블 기기의 발전으로 기록이 숫자로서 계속 구현이 되니 그 중독성이 더해간다. 달리기를 쉬운 운동이라고 우습게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체계적인 훈련법과 기록관리를 아는 사람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사람이란 어렸을 때 많은 꿈을 꾸게 된다. 나는 정말이지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알았다. 현실은 구렸지만, 비록 망상에 가까웠을지라도 꿈을 꾸는 시도를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현실에 벽에 부딪히면서 자신감을 잃게 된다. 나는 정말 평범하다는 것을, 아니 평범한 수준만 가도 다행이라는 것을... 그런 상황에서 달리면서나마 잠시라도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달리기와 같이 '매번 꼴찌만 했다고 느낀' 나의 어린 시절의 아이가

 이제야 커나가 남들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는 우월감이 나를 계속 달리게 했다.


우리 아들의 어린이집 운동회 날. 많은 꿈을 오랫동안 꿈꾸며 지내길.


 반짝반짝 눈부신 햇살, "우와아"하는 사람들의 함성에 섞인 터질듯한 나의 숨소리의 감각이 계속 떠오른다.


 하지만 어린 날의 불편한 기억이 아닌, 어른되고 나서 마라톤 대회 속에서의 기억이다. 맨 뒤에서 마무리하는 결승선의 주자가 아닌, 아니 몇 등인지 따위는 관심조차 생기지 않는 '완주했을 때의 그 쾌감'이 나를 떨리게 한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꼴찌'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이 사실을 알게 해 준 것은 바로 '어른이 되고 나서의 달리기'였다. 


2022년 JTBC 마라톤 결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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