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휴먼
인생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불과 1년 전만 했어도 내가 마라톤을 뛰게 될 줄은 몰랐었다.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기는 했지만 마라톤은 내 인생과 전혀 관련이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던 내가 10킬로 마라톤 완주를 두 번이나 하고 하프 마라톤까지 도전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블로거 Y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Y는 달리기에 진심인 이웃이었다. 그가 처음에 함께 달리자는 말을 꺼냈을 때는 농담인 줄 알았었다. 함께 하자는 이웃이 하나 둘 모이게 되고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러닝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단순히 모여서 뛰는 것이 아닌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자는 말이 나오자마자 바로 대회 예약을 했다. 마라톤 대회는 5킬로, 10킬로, 하프마라톤, 풀코스 마라톤으로 나뉜다. 풀 코스와 하프 코스는 시간도 길고 통제도 어려워서 코스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보통은 5킬로와 10킬로가 기본이었다. 제대로 뛰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5킬로에 신청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Y는 10킬로를 권유했다. 이놈의 팔랑귀가 팔랑거리면서 10킬로를 신청하고 말았다. 10킬로를 1시간 안에 들어와야 완주 메달을 준다는 소문에 열심히 뛰었다. 결과는 57분의 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했다. 막상 완주에 성공하니 너무도 기분이 좋은 것이다. 왜 사람들이 러닝에 열광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작년에는 10킬로를 두 번 완주했다. 올해는 하프 마라톤으로 시작했다. 하프 마라톤은 풀 코스의 절반인 21.5킬로를 뛰어야 한다. 시간은 2시간이 좀 넘는다. 두 시간을 뛰는 체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지금까지 1시간 이상은 뛰어본 일이 없었기에 걱정이 되었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면서 연습을 시작했다. 첫 하프 성공의 기록은 2시간 12분이었다. 2시간 내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아직은 체력이 부족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함께 뛰는 동료들이 있기에 조금씩 기록을 줄여나갈 생각이다.
뛰면 뛸수록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완벽한 것보다는 완주가 중요한 것이 인생이다. 완벽을 바라게 되면 아예 시작도 못할 수 있다.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일단 출발을 해야 한다. 힘들 때는 먼 앞을 봐서는 안된다. 한걸음 한걸음 내 발끝을 응시하며 뛰다 보면 어느새 결승점에 도착 하는 것이 마라톤이다. 인생도 힘들 때면 눈앞을 봐야 한다.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혼자 뛰는 것도 가능하지만 함께 뛰는 동료가 있으면 힘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인생도 홀로 해결하려고 하다 보면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를 응원해 주는 가족과 지인들, 친구들이 있다면 힘이 날 것이다. 끝까지 완주할 기운이 날 것이다.
마라톤 풀코스는 44.195km이다. 44킬로를 아무리 잘 뛰어도 마지막 195m를 제대로 뛰지 못하면 결승점에 도착할 수 없다. 인생도 마라톤도 마무리가 중요하다. 마라톤의 재미를 알려준 Y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다. 앞으로 평생 할 수 있는 취미가 하나 더 늘은 셈이니까. 앞으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달릴 생각이다. 비록 달릴 때는 힘들지만 결승점에 도착했을 때의 쾌감을 잊을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인생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달리다 보면 행복을 맞보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