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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Mar 21. 2024

이혼의 불편함은 안팎으로 있다.

가정 안에서는 안에서 대로, 밖에서는 밖에서대로 낯선 것이 이혼.



"위염 증상이 있으세요. 혹시 소화가 불편하시진 않으신가요?"


"몇 주 전에 소화불량으로 너무 힘들어서 수액 맞긴 했습니다."


"심한 건 아닌데, 불편하시면 약을 처방해 드릴 수는 있으니 말씀해 주시면 될 거 같아요."


처음이었다. 건강 보험 공단에서 2년에 한 번 받으라는 건강 검진 위 내시경에서 조금이라도 이상 소견을 듣게 된 건 말이다. 두 건의 소송으로 내가 얻은 건 스트레스와 상처, 그리고 위염끼와 소화불량이었다.


직접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게 남일이다.

각자 다른 형태의 삶을 사는 몇 천 명의 사람들 속에서 나는 남들이 잘 가려하지 않는 길을 선택한 건지도 모른다.








병원을 나오는데 썩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심각하거나 우려 되는 상황은 없지만 그래도 이상 없다는 말만 들어 오다가 처음 들은 아주 사소한 이상 소견에 마음이 불편했다.


며칠 있다가 건강 검진 결과 통보서가 집으로 날아 왔다.


생전 처음 위염 끼가 있다고 쓰여 있고, 낮은 HD 콜레스테롤이란 생소한 단어에 표시도 돼 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 했다.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만 안 좋은 게 아니란 걸 생전 처음 알았다.

운동도 필요하단다.


처음이다. 위염 같은 거 겪어 본 적 없고, 소화불량도 생전 겪어 본 적 없이 살아 왔다.

나이에 비해 체력도 좋은 편이라고 동네 엄마들이 "언니는 우리 중에 나이는 젤 많은 편이면서 체력이랑 건강은 젤 좋아." 웃으며 얘기하는 편이었다.

심뇌혈관 나이도 지금까지도 나이 보다는 어리게 나온다.


건강을 지켜야 하는데 경제력을 차단 시켜 버린 남의 편으로 인해 갑자기 안정적 일자리를 찾는 일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자격증도 변변이 없고, 나이는 많고, 글만 써 온 내게 일거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남의 편이 내 명의로 쓴 돈까지 갚느라 아이는 어떻게든 먹이고 있지만 나는 남동생이 갖다 준 즉석밥과 김치로 한 끼를 때우고 있다.

카드 값 결제 날만 되면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쓰리다.


민사 소송으로 위자료 청구 소송에 이혼 소송을 진행하면서 받는 고통과 스트레스가 이렇게 영향을 준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간통죄를 정치인들이 없앤 바람에 민사 소송비는 소송비 대로 들고, 소송 과정도 금새 끝나는 게 아니라서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게 이혼 가정 피해자의 현실임을 알게 됐다.

가해자 보다 상처 받은 피해자이자 원고인 배우자와 사건 본인인 아이가 더 힘든 게 민사 소송 과정이다. 더구나 간통죄가 없어서 상간녀, 상간남들이 뻔뻔해진 지금의 시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요즘 세상에 이혼이 흉이냐고들 하지만, 학기 초라 학교 총회에 참석할 때도 내가 평소 보다 이상하게 보이거나 초라해 보일까봐 더욱 신경을 쓰고 학교에 갔다.

표정 관리 잘 해야지, 스스로를 다독이고 애쓰며 학교 총회에 참석하고 왔다.

혹시라도 담임이 아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이상한 눈치를 감지하고 아이에 대한 남다른 의견과 시선을 가질까봐 내심 초조하기도 했다.


"아이들 하나 하나 의견을 들어 주고 보듬어 주고, 공부에 대한 필요성과 목적 의식을 심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정에서도 부모님들이 그런 교육을 이어 주시길 바라고요. 제가 가정에 대해, 부모님이 사이가 좋으신지 안 좋으신지까지 파악하고 아이들을 케어하지 못하는게 안타깝긴 한데..."


라는 말씀 하나에도 혹시 뭘 알고 계신가? 내 얘긴가? 싶은 게 지금의 위축된 심정이다. 그런 심정을 겪는 내 모습에 내 스스로가 놀라고 있다.

항상 당당하고 남의 시선 보다 내 상황과 이념에 대해 더 신경 썼던 나인데, 이제 혼자가 아니라 나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내 아이가 있는 엄마란 게 이런거구나 싶다.






"항상 그 잔 하나로 찔끔찔금 버티네, 우리 동생은?"


자주 모이는 학부모 모임의 형부가 장난스레 웃으며 던지는 조크다.


나는 평소 술을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지만, 힘들다고 마셔 대는 성향도 아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엄마는 사랑이다."라고 생각하는 아이의 버팀목이 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편견을 갖거나 아이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남다른 시선을 보낼까봐 불편한 게 이혼이다. 본인들 보다 주변의 말과 시선과 평소와 다른 행동 때문에 더 상처 받을 수 있는 게 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란 걸 깨달아 간다.


잘못한 게 없는 나와 아이는 당당히 살아 가고 싶다. 그리고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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