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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Feb 16. 2024

새벽에 뭐하지?

  새벽에 일어나면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 준비를 하기까지 2, 3시간 정도의 여유 시간이 생긴다. 이 시간은 물 흘러가듯 금방 사라져 버리는 아쉽고 귀한 시간이기도 하다. 겨울 새벽은 캄캄해서 더 자야 할 것만 같은 마음으로 겨우 일어나지만, 뭔가를 하다 보면 겨울 새벽은 쏜살같이 달아나버리고 만다. 4시부터 7시까지, 고요한 내 시간을 보낸 덕분에 배터리가 가득 충전된다. 아이들을 기분 좋게 깨우고, 조금 더 너그럽게 일상을 시작한다.



  새벽기상을 하면서 루틴이 몇 번씩 바뀌었다. 전에는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욕심을 부렸다. 조그마한 새벽 보따리 속에 하면 좋을 것들을 마구 쑤셔 넣었다. 명상, 긍정확언, 감사일기, 스트레칭, 영어회화 강의 듣기, 필사, 독서, 블로그 포스팅, 글쓰기까지. 새벽 4시에 일어나면서도 시간이 늘 부족했고, 나를 탓하게 됐다. 못한 것들이 많은 날이면 더 속상해졌다.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려던 게 오히려 실망스럽고 언짢은 기분이 들게 했다. 어느 날 책을 읽다가 목표가 너무 많다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다 하고 싶고, 해내면 좋을 것들이지만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가장 하고 싶은 것들을 남기고 나머지는 덜어내기로 했다.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요즘 나의 루틴은 짧은 스트레칭과 독서 그리고 글쓰기이다. 알람이 울리면 아이들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나온다. (수면 분리를 하려고 아이들 침대를 사주었는데, 지금은 아이들은 침대에서, 나는 아이들 방 한 쪽에 이불을 펴고 잠을 잔다.) 일어나면 그동안 해 왔던 대로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거실에 가서 휴대폰 시간을 캡처한다. 일어난 시간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위해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본다. 얼굴이 조금 부어 있고 머리는 부스스하다. 아주 조금, 실은 조금 많이 내 모습에 놀라며 하이파이브를 한다. 억지로 한번 씨익 웃어도 본다. 예전에는 그래도 귀염상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진짜 말 그대로 40대 아줌마다. 흰머리도 여러 가닥 눈에 띈다. (머리숱이 소중해서 함부로 뽑아버리지도 못했다.) 거실에 나와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한잔 마신다. 밥솥에 밥이 없으면 쌀을 씻어 불려둔다. 유튜브를 보면서 스트레칭을 10분 정도 한 후 몸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거실 책상 앞에 와서 스케줄러에 체크를 하고 책을 편다.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면 노트북을 켜서 옮기고 메모를 남긴다. 책 읽기가 끝나면 글쓰기를 하고 밴드와 블로그에 들어가 기상 인증 글을 남긴다.




  새벽이면 핀 조명을 받은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와 역할들을 해내며 바쁘게 보냈지만 왠지 마음이 텅 비어 있거나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에 답을 못하고 멍해질 때가 있다. 새벽이면 잡념이 사라지고 책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읽어 내려가다 어떤 문장에 탁 걸려 생각에 생각이 이어질 때도 있고, 인생 선배의 조언에 무릎을 탁 치기도 한다. 어떤 책이든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므로 그 시간들을 통해 충전이 되고 힘을 얻는다. 새벽이면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설레기 시작한다.



  글쓰기 역시 나를 깨워주는 방법이다. 사소한 것에 마음이 쓰이고 불편해질 때가 있다. 별 것 아니라고 나를 설득해 보지만 계속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글로 풀어가다 보면 내 마음이 어땠었는지, 왜 신경이 쓰였는지를 알게 된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렵고 힘들지만, 다 쓰고 난 후의 후련함과 뿌듯함이 좋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아주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새 아침이다. 새벽 시간은 왜 이렇게 짧은 건지 아쉽기만 하다. 그럼에도 나를 위한 시간을 꺼내어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설 연휴를 지나고 여행을 왔다는 핑계로 새벽을 누리지 못한 날이 많아졌다. 글을 쓰다 보니 새벽 시간이 간절해진다. 내일부터 다시 새벽을 시작해야겠다. 새벽의 평화롭고 따스한 품 속으로 얼른 들어가야겠다.




  덧 하나.

  새벽에 일어나서 하루 계획을 세우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마음속으로 그려보면 여유가 생긴다. 평소처럼 무심코 스마트폰을 들었다면 바로 내려놓기를 권한다. 작은 기계 속 세상에 빠져들다 보면 재미는 있지만 그 시간이 끝난 후에야 새벽이 주는 여유와 기쁨을 놓쳐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벽에 일어났어도 무심코 든 휴대폰을 보느라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 아쉬울 때가 많았다.) 새벽이든 낮이든 밤이든 휴대폰을 들면 시간이 금방 사라진다. 왜 자꾸 휴대폰을 들고 보게 되는 건지. 아이에게 휴대폰을 그만 보라고 하기 전에 나부터 반성할 일이다.


  덧 둘.

  나와 당신의 새벽을, 우리의 하루를 응원한다. 새벽 기상이 쉽지 않고 자꾸 유혹에 빠지게 되더라도 놓지 않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잘하고 있다고, 나에게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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