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들 모임에 다녀왔다. 한참 수다를 떨다 하숙집 아줌마가 된 내 얘기가 나왔다. 한 친구가 물었다. 하숙생의 가장 큰 특징이 뭐냐고. 여러 가지 머리에 떠오르는 건 많은데 요약정리가 잘 안 되길래 '일단 말을 안 듣는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친구는 초등 저학년 자신의 딸도 말을 너무 안 듣는다고 했다. 하지만 난 고개를 강하게 흔들며 말했다.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레벨이라고.
바 오는 아침 하숙생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가겠다고 한다. 보슬비도 아니고 빗줄기가 제범 있는데도 고집을 부렸다. 다른 날보다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러는 하숙생의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말에 어이가 없었다. 비 오는 걸 모르나,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 건가. 그러나 하숙집 아줌마로서 하숙생의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자전거를 타려면 우산을 쓰지 못하니 아침부터 비 맞고 가는 건 아니라며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다음 말이 더 가관이다. 한 손으로 우산을 쓰고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하는데 입이 떡 벌어지며 할 말이 없었다. 자세를 가다듬고, 길도 미끄러울 텐데 말도 안 된다며 강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더 우기려다가 내 기세에 눌려 자전거를 포기하는 것 같더니 이번에는 그럼 그냥 가겠단다. 비가 안 온다나. 이렇게 비 오는 게 뻔히 보이는데 안 온다고. 아침부터 눈에 힘이 들어가고 뒷 골이 조여왔다. 더 이상 옥신각신 하기도 싫어 마음대로 하랬더니 정말 그냥 아파트 계단을 내려간다. 정말 그냥 간다고? 와~ 재 뭐냐? 그냥 놔둘까를 3초 정도 고민하다 결국 내가 졌다. 우산을 들고 따라가 소리를 질렀다.
"학생, 빨리 와서 우산 가져가."
아줌마의 화를 더 이상 돋우면 안 되겠는지 느릿느릿 한 층 내려간 계단을 다시 반쯤 올라와서는 하는 말이 우산을 자가한테 던지란다. 마음 같아서는 확 던져버리고 싶었으나 난 원래 그런 사람 아니라는 쓸데없는 자존심과 체면을 유지하고 싶었다. 또 혹시라도 잘못 던져 다치기라도 하면 나만 고생이라는 생각에 정말이지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아 입에 수백 톤의 자물쇠를 채우고 계단을 내려가 우산을 건네주었다. 말없이 우산을 받아 든 하숙생은 학교로 사라졌다. 집에 들어와 지금 벌어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한참을 씩씩거렸다.
하숙생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건가, 내가 하숙생 말을 못 알아듣는 건가. 아무리 불통시대라지만 어려운 말을 주고받는 것도 아닌데 왜 내 말이 전달이 안 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리 오라면 저리 가고, 앉으라면 서고, 하지 말라고 하면 보란 듯이 하고 있고, 청개구리도 이런 청개구리가 없다. 이런 행동들이 나에 대한 불신, 무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한층 더 속에서 천불이 났다. 하숙집 아줌마를 뭘로 보고. 아직 어린놈이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갑자기 더워진다. 아직 집 안은 더울 날씨가 아닌데 또 체온 조절 장치가 고장이 났는지 난리다. 내 몸이 이러는 데에는 분명 하숙생 지분도 상당할 거라는 생각에 나중에 하숙생한테 '불안정 심신상태 보상비용'이라도 청구를 해야 할 것 같다.
하숙생이 지나간 흔적들을 대충 치우고는 꽉 막힌 속을 주방 개수대 앞 물 떨어지는 소리와 그릇 부딪히는 소리로 조금씩 씻어내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본다.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진다. 머리도 시원해진다. 사실 하숙생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아니다. 나도 하숙생 말을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 비속어, 은어는 그렇다 치고 주어 댕강, 목적어, 보어 댕강댕강 잘라먹고 서술어만 얘기를 하는 때가 많다. 아무리 한국말이 서술어가 중요하다지만 이건 뭐 알아서 들으라는 식이다. 어느 때는 자기가 무슨 작가 이상이라도 되는지 의식의 흐름기법을 쓴다. 문법파괴에 의미도 난해하다. 분명 한국말인데 못 알아먹겠다. 외국말도 아닌데 몇 번씩 물어봐야 한다. 물어본다고 고운 말, 바른말로 예쁘고 아름답게 설명해 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퉁명스럽거나 반대로 대수롭지 않게 아니라며 다시 입속으로 집어넣거나 그나마 마음이 너그러울 때는 다음에 해준다고 하면 얼버무린다. 물론 다음은 없다. 최대치로 올라 간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하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이건 마치 한참 재미있을 때 잘라 놓고 다음 편 예고 없이 끝난 잘 나가는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우리 집에 한국 사람의 탈을 쓴 외국인인지 외계인인지 모를 하숙생이 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 말인지 알아야 외국어 공부라도 할 게 아닌가.
하숙집 아줌마로서 더 구차한 것은 궁금증 해소를 위해 눈치까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닌데.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모를 의무감과 책임감은 어쩔 수가 없다. 기분 좋을 때를 잘 노렸다가 한두 마디 말을 걸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든 후 하나씩 물어보기 한다. 잘못 혀를 놀리거나 표정관리, 어조관리 못하면 내가 원하는 걸 못 얻기에 변덕스러운 하숙생 기분 맞춰가며 비위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아무도 모른다. 물론 그러지 못해서 틀어진 적도 부지기수다. '치고 빠지기'도 잘해야 한다. 너무 깊이 물어보면 안 된다. 좀 아쉽다 싶을 때 쿨한 척 빠져야 뒤탈이 없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상황을 참고 견뎌야 하는지 좀 억울하기도 하다. 아마도 전생에 좋은 일 하고 살지는 않았나 보다.
말이 통해야 하는데 불통상태로 속앓이를 할 때마다 수명이 하루씩 단축되는 것 같다. 그래서 보통 하숙생들이 방문 닫고 안 나오는 것인가 보다.
우리 집 하숙생은 아직 완전히 방문을 닫은 상태는 아닌데. 하숙생 들이려면 통역사가 필요했던 거였구나. 지금 당장 통역사를 어디서 구한담? 이런 언어를 통역해 주는 통역사가 많지도 않을 것 같고. 하숙생 들인 다른 집들 보면 통역사 구했다는 소리는 못 들은 것 같은데. 하루 해가 이리 짧은데 이제 하숙생 언어까지 공부해야 하나. 그러기엔 하숙생이 제대로 된 말을 별로 안 하니 언어랄 것도 없더구먼. 하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내가 공부하는 수밖에.
결론은 항상 나만 손해 보는 장사다. 영어공부도 한다 한다 하면서 미루기를 몇 년 째인지 모르겠는데 나중에 어디 가서 써먹지도 못하는 하숙생의 언어 공부만큼은 뒤로 미룰 수 없는 상황에 기가 찬다. 이 나이에도 배워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잠시 머물다 갔으면 좋겠을 하숙생의 언어를 공부해야 한단 말인가. 정말 웃픈 현실이다.
오늘도 하숙생 언어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로 신경을 썼더니 뇌가 당이 떨어졌다는 신호를 보낸다. 일단 심신을 편안한 상태로 유지해야 하므로 밀가루가 어떻고 다이어트가 어쩌고 간에 하숙생 먹으라고 사다 놓은 식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로 한다.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샌드위치 재료가 아무것도 없다. 달걀 프라이라도 할까 하다가 귀찮아서 패스한다. 먹다 남은 바질페스토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딸기잼을 꺼낸다. 혹시나 치즈가 남았나 보니 두 장 남아있다. 왜 죄다 조금씩 남아 있는 건지, 그래 내가 싹 다 청소해 주마.
식빵 한쪽 면에 바질페스토와 잼을 처덕처덕 발라 재고 정리를 한 후, 두 장 남은 치즈를 다 넣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 하나만 올리고 다른 식빵 하나로 꾹 누른다. 볼품없는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으며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진짜 배가 고픈 건지, 어느 별나라 언어 공부할 생각에 심란해서 그런 건지, 무의식적으로 턱을 계속 움직여 몸속으로 음식을 밀어 넣고 있는데 마음은 왠지 모르게 헛헛했다.
맛은 있네.
서로 한국말을 하는데 못 알아듣는다고?
그래서 내가 먼저 하숙생이 쓰는 언어를 공부하겠다는 거지.
그러면 하숙생은 그대로 자기 말 계속 쓰게 두고?
잘못하면 아예 방문 닫고 안 나올 수도 있으니까.
'별에서 온 그대' 맞네. 당 충전하고 힘내서 공부해라. 파이팅!
어디서 누군가가 나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야무지게 마지막 한입까지 열심히 씹는다.
......... 통역까지 해서 알아들어야 하다니...... 아, 오늘은 그냥 하숙생이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