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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한 스컹크 Feb 17. 2024

품고 있는 날개

오리엔테이션

홈스테이 호스트 J는 나랑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싱글로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다운타운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였다. J는 일본에서 영어선생님을 한 경험이 있어서 내 더듬더듬 영어를 잘 들어주었다. 그리고 아시아 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집에서의 주의사항들을 알려주었다.

첫째, 본인의 출근시간인 아침 7:30-8:00 시간대에는 화장실 사용을 자제할 것.

둘째, 거실에 있는 옷 건조기는 아침에 사용하지 말 것. 밤에는 시끄러워도 잠을 잘 잘 수 있지만 아침에는 건조기 소리가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셋째, 휴지와 세제는 본인이 사다놓긴 하지만 아껴서 사용해 달라는 것.


나머지 주의사항들은 살면서 그때그때 알려줬다.


학교가 시작하기 전에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이다.

집 뒷문으로 나와서 하우스들 사이에 좁은 골목을 따라서 내려가면 바로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여기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를 가면 Georgian College(조지안 컬리지)가 나왔다.

버스는 현금을 내고 타거나 버스정류장이나 학교 내 서점에서 Monthly Pass, Weekly Pass, 5 Ride, 10 Ride 등 카드처럼 생긴 종이를 구매해서 버스를 탔다. 먼슬리나 위클리 패스에는 Month나 사용할 수 있는 Week이 도장으로 찍혀있거나 프린트가 되어있어서 해당하는 달이나 그 주에만 사용할 수 있었고 항상 학생증과 같이 버스기사에게 보여줘야 했다. 5 Ride나 10 Ride는 운전기사님께 보여주면 탈 때마다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러면 종이게 작은 구멍이 생겼다. 이 구멍이 5개나 10개의 공간에 다 모이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버스카드를 당연하게 사용하다가 이런 캐나다 시스템을 오래간만에 보니 이게 선진국이 맞나 싶으면서 시골에 온 듯한 느낌도 들면서 기분이 묘했다. 하긴, 토론토에 있을 때에도 토큰을 사용하긴 했지.

토론토에서도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에는 버스카드로 기계에 찍는 개념이 아닌 직원에게 카드를 보여주거나 기계에 긁는 시스템이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토큰도 내 유학시절에는 사용했었는데 이 토큰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렸을 적에 길거리에 뭔가 떨어져 있어서 주웠더니 동전같이 생겼는데 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려있는 동전을 주운적이 있다. 신기해서 엄마에게 가져가서 보여줬더니 엄마는 버스를 한 번 공짜로 탈 수 있게 되었다며 굉장히 기뻐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100원과 바꿔주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가운데가 뻥 뚫린 동전이 보이면 주워서 엄마를 가져다주면 100원과 바꿔주겠다고 했다. 나는 바꾼 100원을 들고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먹고 싶었던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혹시 또 길거리에 떨어진 토큰이 없나 열심히 찾아다녔다.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기 위해 모이라고 한 장소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있었다. 어디에 앉을까 하다가 흑인 여자애가 혼자 앉아있는 곳으로 가서 당당하게 물어봤다.

"여기 자리 비었니? 내가 앉아도 돼?"

"그럼"

여자애는 쿨하게 앉으라고 해줬고 나는 옆에 앉았다.

나는 보건계열 학 오리엔테이션이니 다른 친구들도 이쪽 계통이겠지 하고 옆에 앉은 친구에게 내 이름과 이제 안경을 공부할 것이라고 나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이름은 무엇인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무슨 과를 지원했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자메이카에서 온 친구로 간호사 과정을 듣고 싶어서 그전에 필수코스인 Prehealth를 일 년 듣고 과정을 패스하면 간호사 공부를 할 것이라고 했다.

간호사는 공부도 어렵지만 외국학생들에게 높은 영어점수를 요구하기에 들어가기도 어려운 과이다. IELTS가 아카데믹으로 Overall7.0 이상의 높은 점수를 요구하는 이 어려운 과를 선택했다니. 정말 대단한 친구였고 영어도 굉장히 잘했다. 나처럼 더듬더듬 영어가 아닌 미드에서나 보던 흘러가는 영어 내 귀에는 웅얼웅얼 대는 영어를 구사해서 뭐라고 하는지 캐치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단어를 겨우 건져들을 정도였다. 이게 실제 영어생활이구나. 땀이 갑자기 주르륵 흘렀다.

내 주위로 다른 친구들도 앉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온 친구는 약사공부를 마치고 캐나다에 와서 다시 약사보조학과에 지원했고, 영국에서 온 친구는 물리치료사 학과에 지원했다고 했다. IELTS공부를 할 때 많이 들었던 영국억양이다! 실제로 들으니 정말 어렵다. 뭔가 매력적이다.


보건계열 학과의 학생들을 위해서 실습은 주로 어느 건물에서 하는지, Gym과 Cafeteria 등 학교의 전반적인 설명과 위치 그리고 궁금한 사항은 학교 내에 있는 International Student Centre국제학생을 위한 센터에 오면 무엇이든 도와주고 그 나라 담당자도 만날 수 있으니 편하게 오라고 했다.

이제 각 과별로 흩어졌다.

이 강당을 나와서 다른 강당으로 가는데 한 인도 남자애가 문을 잡아줬다.

나는 고맙다고 하고 열심히 다른 사람들을 쫓아갔다.


이번에는 안경학과에 지원한 학생들만 모여서 받는 오리엔테이션이다. 내가 앉아있는 의자 옆으로 한 여자애가 오더니 중국말로 뭐라고 물어봤다.

"아.. 나는 중국인 아니야."

그랬더니 그 친구는 영어로 여기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앉으라고 했다.

이 친구는 베이징에서 온 M이라는 친구였는데 정말 예쁘게 생겼다. 피부가 어쩜 이렇게 도자기 같지? 어려서 그런지 보조개가 들어가게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쁜 친구였다.

어색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교수님들이 들어오셨다.

각자의 이름과 무슨 수업을 가르치는지 교수실은 어디인지 등 설명해 주었다.

내가 티비나 미드에서만 보던 캠퍼스에서 외국인들과 외국교수와 함께 공부를 하다니. 이런 상황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정말 꿈만 같은 하루하루가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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