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내밀었지만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달렸다.
달리는 나를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누웠다.
사람들은 누운 나를 밟고 지나갔다.
그래서 나는 울었다.
왜 우니?
카타리나의 목소리가 물었다.
내 옆에 털썩 주저앉는 그녀가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다정한 목소리에도 돌아보지 않았다.
피가 보일 게 분명했으니까.
그녀와의 마지막 날 이후, 카타리나를 떠올리는 매 순간에 피가 나타났다.
붉고 흥건하며 묘한 점도를 가지고 있던 그것을 더 이상 보기 싫었다.
왜 울긴.
나 때문이니까.
물론 소리 내어 답하지는 않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미안해, 제발 그냥 지나가 줘.
속으로 반복해서 되뇌었다.
왜 우냐니까?
목소리가 바짝 다가와 다시 한번 물었다.
내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내 무응답에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처음과 같은, 순수한 어린아이의 때 묻지 않은 호기심 같았다.
그래도 나는 절대 눈을 뜨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툭, 투두둑
그리고 내 얼굴에 어떤 뜨거운 액체가 밸브 덜 잠긴 야외 샤워기의 물처럼 쏟아졌다.
척수로부터 뿜어져 나온 미세한 전류가 온몸의 신경에 흐르면서 근육들이 작은 발작을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모든 몸에 힘이 들어가며 자연스레 잠에서 깼다. 발작적으로 허공에 내지른 발차기가 제법 강력했는지 담요가 공기를 한 아름 품었다가 반 템포 늦게 펄럭여 앉으며 다시 다리를 덮었다. 다리에 감기는 촉감에 현실로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흐트러진 선글라스 사이로 빛나는 햇살이 눈 부셨다. 몸에 딱 붙이고 있던 팔을 들어 햇살을 막았다가 멍청한 짓임을 느끼고 그만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시간이 조금 지난 건지, 해가 원래 이렇게 빨리 기우는 건지, 분명 아까까지는 내 얼굴을 품고 있던 파라솔의 그늘이 지금은 옆으로 비켜서 내 어깨 언저리에 가까스로 걸려있었다. 나의 얼굴을 베일처럼 덮고 있던 낮잠의 몽롱함을 상쾌한 바람이 살랑 불어와 흐트러뜨렸다.
‘왜 우니?’
꿈에서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반향을 남기며 아득히 멀어졌다.
왜 울긴.
선베드 위에서 꼼지락거리며 손으로 몸을 툭툭 털었다.
개꿈이니까 울었지.
그저 몸이 찌뿌둥했다. 답답함에 발을 버둥거리며 신발을 벗어 떨어트렸다. 팔다리를 펴 기지개를 켰다. 10개의 손가락도, 10개의 발가락도 모두 방사형으로 쫙 펴졌다. 두꺼운 담요 밖으로 삐져나온 발가락들이 만세를 했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알프스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었다. 다음으로 한 번에 몸에 힘을 모두 풀었다. 긴장감이 해소된 몸은 오랜 봉인에서 풀려난 램프의 요정처럼 매우 자유로웠다.
누웠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양반다리로 자세를 고쳐 앉은 다음 지하 아케이드에서 가격도 확인하지 않고 구매한 톰 포드 선글라스를 벗어서 사이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맨 얼굴 위에 태양의 따스함과 알프스의 시원함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섞였다. 지금 느끼는 이 감각이 내가 이곳을 요양원에서 가장 좋아하게 만든 이유였다.
그것 외에 다른 작은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것. 나는 눈을 그대로 감은 채 손을 더듬어 사이드 테이블 위의 접시를 찾았다. 이내 손끝에 걸린 감자 칩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왔다.
와그작
먼저 소금의 짭짤함이 침에 녹아 온 혀에 퍼졌다. 그 이후로 치아가 저작 활동을 함에 따라 감자가 풀어내는 탄수화물의 맛이 기름의 풍미와 섞였다. 바삭한 감자 칩은 순식간에 그 형체를 잃고 부드러운 곤죽이 되어 목뒤로 넘어갔다.
먹을 때마다 감탄한다니까.
감자 칩을 몇 개 더 집어 한꺼번에 입에 넣고 손을 털었다. 기름 묻은 소금 입자들이 탈탈 바닥으로 떨어졌다.
“맛있어?”
고급스러운 울림이 가득한 여성의 목소리가 내 만족감을 물어왔다.
“언제부터 있었어요?”
“얼마 안 됐어. 그래도 자기가 누워서 자다가 갑자기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댄스를 추는 것은 놓치지 않았지.”
“엠마 보여주려고 많이 준비한 건데 어땠어요?”
“아주 훌륭했지. 그 누구지… 아! 마치 BTS 같았어.”
아름다운 늙음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우아한 여배우가 씨익 웃으며 손에 들고 있는 칵테일을 한 모금 홀짝였다.
“오늘도 낮부터 술이에요?”
“술이라니! 피나 콜라다라는 그냥 음료지. 분다버그 진저에일처럼 달콤하잖아?”
그녀는 잔을 내려놓고 하얗게 세가는 금발을 손으로 정리했다. 얼핏 푸석해 보이는 머리는 보기와 달리 매끄럽게 그녀의 손가락 사이를 통과했다. 잘 관리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잠깐 잠든 사이에 내 옆 선베드에 입주한 사람이 있었네.
나는 물끄러미 내 이웃 주민을 바라봤다. 그녀의 높은 코에 걸려있는 검정 코코 샤넬 선글라스가 반짝였다. 범인은 안경다리에 박혀 있는 큐빅들이었다.
“오늘은 뭐 할 거예요?”
엠마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어제랑 같겠지.”
“그럼 어제는 뭐 했어요?”
“그 전날과 같은 것을 했지.”
“그럼 혹시 내일은 오늘과 같을까요?”
“영리해. 학습력이 빨라.”
“그렇다면 내일은 이 질문을 안 해도 되겠군요. 아쉽네.”
“그렇지, 답은 정해져 있을 테니. 그런데 뭐가 아쉬워?”
“덕분에 일과 중에 할 것 하나가 사라졌잖아요.”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럼 내일도 한 번 물어봐. 혹시 알아? 내가 다른 대답을 할지?”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감자칩을 다시 한 움큼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내 입 안에서 감자칩이 와작 거리는 소리와 옆에서 엠마가 후루룩 거리는 빨대 소리, 피나 콜라다 속의 얼음이 유리잔을 긁는 소리가 멋진 3중주를 이루었다.
“엠마는 결혼했어요?”
“난 이래서 자기가 좋아.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걸 알면 저한테 더 잘하세요.”
엠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실소했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는 젊은 친구라고? 나이 90을 먹은 우리 엄마도 50년 된 소파에 누워서 휴대폰을 종일 붙잡고 사는 세상인데.”
“누구에게나 사정이란 것이 있잖아요?”
“무슨 사정인지 참 궁금하네. 아니 도대체 자기는 여기 숙박비용은 어떻게 지불하는 거야? 휴대폰도 없는데 정말 여기 묵을 돈이 있긴 해?”
나는 내 쪽으로 몸을 바짝 기울여 물어오는 그녀의 대답을 애써 회피했다. 꿈에서 카타리나가 지금 그녀와 비슷하게 다가왔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몸을 조금 피했다. 그리고 사실 나도 나의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산속에서 수양하는 티베트의 한 스님과 같은 삶을 살고 싶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조금 속세랑 멀어지고 싶어서 이곳에 왔거든요.”
내 대답에서 무성의함을 읽은 그녀는 다시 자세를 바로 하며 툴툴거렸다.
“그래, 수양하는 장소가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등산을 3일 밤낮으로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외딴 산사가 아니라 꿀과 젖이 흐르는 초호화 요양시설이란 것을 빼면 말이지.”
“혹시 종교영화도 찍으셨어요? ‘이집트의 왕자’에 나올 것 같은 말이네요.”
“어머, 어떻게 알았어? 내 데뷔작이 그런 종교적인 역사 영화였어. ‘벤허’와 ‘원초적 본능’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작품이었지만.”
당최 그 두 영화를 어떻게 섞어 놓았는지 궁금해지기는 했지만 이제 자리에서 그만 일어나야 할 때였다. 해가 기울면서 파라솔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려 태양의 열기에 가열된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몸을 일으켜 앉으며 담요를 정리했다.
“뭐야, 벌써 가는 거야?”
“네, 슬슬 추운 것 같아서요. 햇볕은 충분히 받은 것 같고, 너무 오래 나와 있었나 봐요.”
자리를 떠나는 나를 보고 직원이 내가 머문 선베드를 정리하기 위해 다가왔다. 그를 지나치며 간단한 미소와 목례를 나눴다. 복도로 통하는 문을 지날 때, 등 뒤로 내 자리를 정리하는 직원에게 칵테일을 추가 주문하는 엠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체크인 이후로 3주가 훌쩍 지났다. 적응의 명수인 내가 부르기뇽 요양원에 완전히 적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보면 어느 집단이든 내 적응력이 작용하지 않는 곳은 없었다. 다른 손님들과의 교류가 많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안면을 트고 친해진 손님들도 있었다.
요양원은 자칭 품격 있는 시설임을 강조하는 만큼 그들을 찾아주는 손님들도 특별한 계층의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기를 바랐다. 스페셜한 사람들을 위한 스페셜 하지만 그만큼 폐쇄적인 소셜 클럽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종 클럽 라운지나 야외 행사장에서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내게는 대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과 강원도나 부산의 바다로 놀러 가면 숙소로 사용했던 호스텔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곳에도 밤마다 사교모임이 열렸었다. 그곳처럼 매일 밤 삼겹살 파티가 열린 것은 아니지만, 요양원을 찾는 분들의 ‘품격’에 맞는 이벤트들이 종종 열리곤 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재즈 콰르텟이 초빙되어 공연이 있기도 했고, 한 번은 미국 나파 밸리의 와인 셀렉션과 텍사스 브리스킷이 곁들여진 BBQ 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엠마를 만난 곳이 바로 그 BBQ 파티였다. 지난주에 체크인 한 엠마가 요양원에 들어오는 당일이 마침 파티날이었다. 행사에 조금 늦게 참석한 그녀였지만 그녀는 입장과 동시에 참가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참가인원 중에는 모델 같은 어린 여자를 끼고 온 러시아 부자도 있었지만, 그의 빛나는 트로피 걸도 엠마가 가진 오랜 시간 축적된 고혹보다는 밝지 않았다.
행사에 참석한 것은 끽해야 스무 명 정도밖에 없었지만 그녀 주변에는 이곳이 마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마 지금 이곳에 머무는 사람 중에 유일한 유명인인 것 같았다. 화로 앞에서 고기를 썰어내는 직원도 그녀를 흘깃흘깃 확인했다.
그곳에서 까맣게 탄 텍사스 브리스킷만큼의 관심도 받지 못하던 내가 그녀와 친해진 것은 고기를 더 받으러 화로 옆에 서 있던 내게, 역시나 고기를 더 받으러 온 그녀가 나를 직원으로 오인하고 고기를 더 달라고 한 소소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오해에 내 옆에 서 있던 진짜 고기 담당 직원이 당황해서 얼어 있는 사이에, 차별당하는 느낌에 기분이 상한 나는 오히려 그녀의 접시에 남아 있던 음식을 집어 그 자리에서 먹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녀는 정중히 사과했고 나는 그녀의 접시에 내 고기를 덜어주는 것으로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요양원의 단골손님이었다. 프랑스의 잔뼈 굵은 중견 여배우인 그녀는 지인의 추천으로 이 요양원의 게스트가 되었다고 했다. 슬슬 이곳에서의 반복되는 일과에 변화를 주고 싶었던 나는 그녀에게 요양원 생활의 팁들을 물어봤지만 그녀는 이곳에서 하는 것이 정말로 없었다. 어쩌면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진정한 휴양일지도 몰랐다. 물론 여기서도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완전히 벗을 수 없었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자칭 품격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신경을 덜 쓸 수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나는 그녀에게 좋은 친구였다. 내게 그녀는 그저 중년 프랑스 여성일 뿐이었으니까.
수영장 물은 조금 차가웠다. 살짝 담갔던 엄지발가락을 얼른 빼서 탈탈 털었다. 물방울이 발의 움직임에 맞춰 같이 앞뒤로 튀었다. 실내 수영장의 기온이 너무 따뜻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이 원인일까. 벽의 모니터에 따르면 수온은 24~25도를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내 피부의 냉점은 차갑다는 신호를 뇌로 보냈다.
하, 이번 기회에 수영을 익히긴 해야 하는데.
수영은 옛날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이는 하바나에서 살았던 사람 치고는 희귀한 특성이었다. 그들은 자유시간이 생기면 어김없이 바다로 다이빙했다. 나는 그들을 따라 물에 뛰어드는 대신 그들을 배경 삼아 휴양을 즐기는 것을 선택했다. 물론 이 선택이 내 하얀 피부를 유지할 수 있던 비결이기도 했다.
수영과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내가 8살일 적. 형과 나는 동네에 새로 생긴 수영센터에 어린이를 위한 수영강습을 받으러 보내졌다. 당시 우리의 담당 강사는 건장한 체격의 누나였는데(성인이 된 지금 와서 생각하자면 건장하다는 표현이 옳은지 모르겠지만, 당시 8살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건장하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괄괄한 성격이 아주 일품이었다.
수영장이 처음인 나는 물을 조금 무서워했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그녀는 물과 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번쩍 집어 들어 물로 던져 넣었다. 내가 겨우 물에서 빠져나오면 그녀는 재차 나를 던져 넣었다. 타고난 한량이던 나에게 그런 종류의 강압은 그녀와 수영에 대한 반감만 불러왔다. 그날이 나와 수영의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렇게 20년이 넘게 흘러 지금 다시 요양원의 실내 수영장에 와서 수영과의 재회를 시도하고 있다. 이 오래된 인연의 재회가 성공적 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나는 잠깐의 감상에서 돌아와 다시 선베드로 향했다. 직원이 깔아주었던 수건 위에 몸을 다시 뉘었다. 수영장에는 오묘한 음악이 작게 깔리고 있었다. 보컬도 일정한 비트도 없는 명상음악에 가까운 것이었다. 조금만 쉬다가 스트레칭을 다시 하고 물에 들어가 보기로 결정했다.
지루해지려는 나의 요양원 생활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들어줄 해답은 바로 수영을 익히는 것이었다. 요양원에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엠마에게 질문해도 찾을 수 없었던 해답을 어느 날 화장실 변기 물을 내리다가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생산해 낸 변기 물 위의 이물은 소용돌이치는 물을 매끄럽게 유영하다 배관 너머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수영이라는 아이디어를 착안할 수 있었다.
이 수영이 매우 탁월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기 계발의 일환으로 내가 할 수 없었던 수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점, 그리고 내가 잔뜩 가지고 있는 것이 시간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내가 머무는 곳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훌륭한 시설의 수영장이 있다는 점으로 이보다 더 나은 생각은 당장에 떠올릴 수가 없었다.
아, 슬슬 움직여서 제대로 수영해야 하는데.
내 몸과 머리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첫날부터 제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다그치고 있었지만 몸은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머리의 요청을 매몰차게 무시한 몸이 조금 더 편하게 눕기 위해 여분의 수건을 돌돌 말아 베개 삼고 선베드에 지긋이 눌어붙어 있었다. 그때 빨간 옷의 안전요원으로 보이는 직원이 다가왔다. 지금까지 가만히 지켜본 결과, 그들이 수영장의 안전요원과 잡다한 서비스를 동시에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혹시 음식을 원하시면 메뉴를 드릴까요?”
나는 그의 제안을 냉큼 받아들였다.
호오, 음식도 시킬 수가 있구나?
명령을 듣지 않는 몸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머리도 어느 순간 한량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메뉴를 탐독했다. 수영장만의 스페셜 메뉴가 있는가 찾아보았는데 메뉴는 룸서비스 메뉴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 오늘은 수영강습 오리엔테이션 날이라고 생각하자!
오늘은 이곳 공간에 적응하는 날로 삼기로 했다. 편안한 침대, 깨끗한 아름다움의 인테리어, 적당한 온도, 넉넉한 공간, 거기다 내 수발을 들어주는 직원과 무한정(안젤리카의 재력으로) 제공되는 식음료들. 거기다 이 오묘한 음악도 뮤직 테라피 효과를 일으키는지 테라스와 다른 방식으로 내 기분을 풀어주고 있었다.
“클럽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 한 잔 주세요!”
그날부로 수영장은 요양원에서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