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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한진 Oct 04. 2024

챕터 17. 초면


    17. 초면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지만 분명 내 방의 천장이나 수영장의 천장은 아니었다. 몸을 일으켜 앉았다. 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침대의 철제 난간이 보였다. 난간은 침대의 사면에 모두 달려있었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는 전형적인 병원의 환자용 침대였다. 머리를 누이는 곳 옆에는 바이털 모니터가 있기는 했지만 나와 연결된 프로브가 하나도 없었고 장비는 꺼져 있었다. ‘어머나! 선생님! 환자가 깨어났어요!’ 같은 대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나를 간호하고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고로 나 혼자 병실에서 깨어난 것이다.

    내가 왜 여기 있지? 

    가장 가까운 기억은 입안에 피 맛이 가득했던 기억. 혀로 입 내부를 한번 훑었다. 피 맛은 나지 않았다. 실제로 피를 머금었던가? 남아있는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후각을 구강내부로 집중시켰다. 피 냄새는 나지 않았다. 대신 입을 벌리고 자고 있었던지 대신에 구린내는 살짝 났다.

    여긴 요양원의 의무실인가?

    호화 요양원의 병실이라기엔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작았다. 칸막이 역할을 하는 하늘색 커튼을 열었다. 내가 누워있는 것을 포함하여 총 네 개의 침대가 있었다. 본격적인 병실이라기보다는 응급실에 해당하는 공간인 것 같았다.



    그때 인기척이 들렸다. 두 사람의 대화 소리였다. 순간 다시 누워서 자는 척을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들려온 목소리 중의 하나는 아는 목소리였기에 그대로 그들을 기다렸다.


    "여기 숙소는 머물 만한가요?"


    부르기뇽 요양원의 전담의 닥터 쿠퍼의 목소리였다. 분명히 나를 진찰할 때는 무관심하고 일과 관련된 말만 하는 그였지만, 지금은 목소리에 한결 느끼함이 가미되어 있었다. 그런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목소리는 어떤 여성의 것.


    "네, 저야 뭐 처음이 아니니까요. 지낼 만해요. 어릴 적에 방학 때마다 찾아가던, 어라? 일어났어요!"


    그들은 침대 머리에 기대어 앉아있는 나를 발견했다. 여자를 본 순간 나는 귀신이라도 나타난 것처럼 혼비백산하여 뒤로 물러났다. 이미 내 뒤로는 벽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해 그녀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다.

    금발의 카타리나.

    물러설 곳 없는 곳에서 뒷걸음질 치려다 아예 침대에서 일어나 벽에 등을 바짝 붙인 나를 보고 그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은 걸까요, 선생님?"

    "어떻게 그쪽이 보기엔 괜찮아 보이시나요?'


    그걸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네가 물으면 어떻게 해 이 돌팔아!

    금발의 카타리나도 나와 같은 눈으로 닥터 쿠퍼를 바라봤다. 대화가 잠깐 멈춘 덕분에 나는 그녀를 관찰할 잠깐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녀는 카타리나가 아니었다. 체형과 얼굴형, 이목구비. 즉, 전체적인 겉모습이 카타리나와 매우 흡사했다. 그러나 당장에 인종부터가 달랐다. 그녀는 하얀 피부에 금발 벽안의 전형적인 유럽 백인이었다. 그녀에게서 카타리나가 가졌던 라틴 느낌을 찾으라면 완벽한 곡선을 가진 육감적인 몸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조금 더 익숙해지니 이목구비도 카타리나와 조금씩 구분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카타리나를 라틴 아만다 사이프리드로 불렀었다면 이쪽은 그냥 아만다 사이프리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여자가 카타리나가 아닌 것임을 확인하자 다음으로 머리를 때려오는 의문은 ‘내가 왜 여기에서 눈을 떴는가’였다. 기억의 마지막에 남아있는 피. 그것은 아마도 환각이었다. 건강한 내가 왜 환각을 본 거지? 내가 모르게 환각을 일으키는 약물을 주입되고 있었나? 어떻게? 음식에? 어쩌면 오래전에 감기약으로 위장해 약을 복용시켜 온 것일지도 몰랐다.

    

    "내, 내 몸으로 뭘 한 거야!"


    온통 혼란스러운 내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들의 표정이 온통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기세를 몰아 그들을 추궁했다.


    "무슨 인체 실험 같은 걸 했나? 그게 이 요양원의 존재 목적이었던 거야! 여기서 결국 범죄와 모략의 구렁텅이였던 거야! 내가 모를 줄 알았지? 프란시스 어딨어! 내 뒤에 누가 있는 줄 알아? 내가 무슨 짓을 당한 것을 그녀가 알게 되면 너희들 뼈도 못 추릴걸?"


    연거푸 쏟아지는 내 외침에도 그들은 내 호령을 따라 프란시스를 불러오기는커녕 다시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이 분 정말 괜찮을까요?"

    "환자가 많이 놀란 것 같습니다. 일단 진정을 좀 시켜야 할 거 같아요."

    "여기 정신과 전문의도 있나요?"

    "제가 정신과 상담도 맡고 있습니다. 대단하죠?"


    극도의 흥분상태에 돌입했던 나는 우습게도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는 의사의 모습에 진정이 되었다. 덕분에 온전히 논리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나는 한결 침착한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나는 침대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침대 옆에 원래 있던 의자 하나에 닥터 쿠퍼가, 옆 칸에서 하나를 더 가져온 의자에 유럽 카타리나가 나란히 앉았다.


    "그러니까 저를 이분이 구해주셨군요?"

    "네, 정말 다행이었죠. 자리에 조금만 늦게 복귀했으면 제가 없는 상태에서 정신을 잃고 물에 빠지셨을 거예요. 그렇다면 구조가 늦어져 큰일이 났을 수도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그쪽을 봤기 때문에 제가 정신을 잃은 거긴 한데…

    물론 굳이 그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생명을 구했다는 보람과 신념이 가득 차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비슷한 것이 된 느낌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불편한 현실로 차마 그녀의 감흥을 깰 자신도, 필요도 없었다.


    "감사해요, 정진입니다."

    "멀쩡히 일어나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알렉시스입니다."

    "또 뵙네요, 닥터 쿠퍼입니다."


    그쪽은 소개 안 해도 되거든요?

    의사가 틈을 놓치지 않고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래도 나는 미소와 함께 그의 인사를 받았다.


    "또 뵙네요, 정진입니다. 그나저나 선생님, 저 뒤통수가 아까부터 얼얼한데 한번 봐주실 수 있나요? 혹시 뇌출혈이라던가 하는…"


    닥터 쿠퍼는 대충 내 뒤통수에 손을 가져다 대보고는 말했다.


    "아, 멍이 든 것 같습니다."

    "그게 단가요?"

    "앗, 멍이라면? 아마 제가 물 밖으로 끌어올리다가…"


    불현듯 무언가 기억이 났는지 그녀가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올리다가?"

    "수영장 벽 모서리에 그만…"

    "하하, 그랬군요. 괜찮아요, 그냥 멍든 거라고 하니까요."


    옆에서 또 닥터 쿠퍼가 끼어들었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라고 아십니까? 결국은 구조 중에 발생한 것이고 사람을 구했다는 것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어요, 우린."

    "네?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기엔 여기서 제 직책이 라이프가드이긴 한데…"


    호시탐탐 그녀에게 잘 보이려는 기회를 노리고 있는 닥터도 더 보기 싫었고, 이만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어진 내가 그들을 말을 끊어 들어갔다.


    "그러니까 저 이제 괜찮은 거죠?"

    "네, 병동으로 후송되었을 때 바이털도 특이한 점은 없었고, 의식도 찾았으니 이제 돌아가셔도 됩니다. 다만 처음 의식을 잃은 원인이 뭐였냐는 건 아직 문제로 남아있는데요. 혹시 평소에도 이렇게 종종 블랙아웃이 발생했었나요?"

    "아뇨,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렇다면 혹시 이번에는 어떤 것이 원인이 되었는지 기억이 나거나 추측하실 수 있나요?"


    나는 무심결에 알렉시스를 쳐다봤다. 내 시선이 자신에게 가자 그녀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닥터 쿠퍼라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알렉시스의 대단한 미모에 혼을 잃었다고 능청스럽게 말하겠지.


    "어, 그러니까…"


    이제 와서 그녀가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잘 생각해 봐, 정진.

    기억에 가장 선명한 것은 '피'였다.


    "최근에 제가 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어요. 정신을 잃은 것은 처음이에요."

    "수영장에서? 피요?"


    그녀가 올린 눈썹을 내리지 않고 물었다. 그녀의 내려가지 않는 눈썹을 보자 요양원의 이상한 노인네가 생각났다. 그러나 지금은 딴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이익, 뭐라고 말하지? 수영장에서 피 트라우마가 도질 일이 뭐가 있을까?


    "네, 그러니까 제가… 피 트라우마가 있는데…"

    

    좋은 답변이 떠오르지 않는데 내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코 앞에서 초집중 상태로 있는 것은 상당히 초조한 일이었다. 그것도 두 명씩이나. 내 입술이 움직여 제대로 된 답을 말하는 것을 보려는 네 개의 눈은 교도소의 감시카메라 같았다. 나는 적당히 얼버무리기로 했다. 내가 기절을 했다 일어났다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이게 참 트라우마가 강하게 와서 그런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마지막에 기억나는 것은 수영장 물이 피로 바뀌어 있는 것이었어요."

    "수영장과 피라… 환각증상으로 이어졌군요. 수영장은 자주 방문하십니까?"

    "네, 이번에 수영을 좀 배워보려고 지난주부터 거의 매일 가고 있어요."

    "그렇다면 언제고 다시 오늘 같은 일이 재발할지 모릅니다. 이번엔 운 좋게 무사히 마무리되었지만, 다음에는 딱딱한 바닥이나 선베드 모서리에 머리를 찧을 수 있고, 구조의 손길을 바로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의사로서 수영장 방문을 금지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돼요! 제 장기 투숙의 유일한 낙이 수영이었는데!"


    겨우 찾은 내 일상의 비타민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나는 생각보다 절박하게 소리쳤다. 도움의 손길은 이번에도 알렉시스에게서 찾아왔다.


    "네, 선생님. 수영장은 이제 제가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환자분이 방문하실 때에는 제가 전담으로 붙어서 한눈도 떼지 않을 게요."


    그녀는 열렬한 변호를 마치고 나를 바라봤다.


    "수영장에 오면 저부터 찾으세요. 그럼 제가 계속 상시대기하고 있을 거예요. 알았죠?"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닥터 쿠퍼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팔짱을 끼고 고민을 하더니 결국 그녀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수영장에서 피 트라우마가 도졌다고 하니, 앞으로는 언제 어디서든 다시 블랙아웃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생활하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트라우마에 관한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상담도 받아볼게요."


    이번 일로 나도 적지 않은 경각심을 느꼈기에 그의 상담 제안을 받아들였다. 후유증이 이상하게 남아 평생을 블랙아웃의 두려움에 떨며 살 수는 없었다. 앞으로 어디를 가더라도 카타리나와 비슷한 실루엣의 여성을 보게 되는 순간 픽픽 쓰러지는 여생을 살기 싫었다.


    "그럼 예약은 원하실 때 잡아주시면 됩니다. 객실 전화로도 예약 가능하고 나가실 때 의무실 카운터에서도 가능합니다."

    "생각 다시 해보고 전화로 예약하는 것으로 할게요."

    "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로 하고 이만 저는 돌아가보겠습니다. 할 일이 남아서요."


    닥터 쿠퍼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저도 자리로 돌아가 봐야 해요. 방금 사고로 잠시 수영장을 폐쇄하고 왔거든요. 돌아가서 다른 손님들이 이용할 수 있게 개장해야 해요."

    "그럼 같이 돌아갈까요?"

    "네? 수영장에 다시 가시게요?"


    나는 걱정이 앞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을 진정시켰다.


    "네, 거기에 제 짐도 있고, 이제는 괜찮아졌거든요. 제 몸은 제가 잘 알아요. 느낌이 와요, 괜찮다는 느낌."


    제 몸은 제가 잘 안다는 놈이 수영장 한복판에서 갑자기 기절해버릴까 싶었지만 그녀는 일단 수긍하는 것 같았다. 아마 자신이 함께 있으니까 언제든지 케어가 가능하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아니면 남일이니 별 관심이 없는 것일 수도.



    요양원의 1층에 위치한 의무실에서 나와 수영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와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흥미로운 만남이었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처음 수영장에서 그녀를 발견하고 느꼈던 것처럼 또래 여성과 대화할 기회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러니까 이번 달부터 수영장에서 근무하시는 거네요?"

    "네, 원래는 방학 때만 잠깐 왔었는데, 이번에는 제가 졸업을 해서 잠깐 시간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11월부터 시작하는 거죠."

    "졸업 축하해요! 그런데 뭘 졸업하신 거죠? 고등학교는 아닐 테고…?"

    "하하, 대학교예요."

    "죄송해요, 서양인들은 아직 나이 가늠이 잘 안 되더라고요."

    "이해해요. 저도 동양인들을 봐도 나이를 한 번에 못 맞추겠어요."

    "그럼 제가 몇 살일까요?"


    내 갑작스러운 퀴즈에 그녀는 아주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관찰했다. 아랫입술을 약간 깨물며 고민하는 얼굴은 귀엽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풀어진 머리를 배배 꼬기 시작한 그녀는 결국 항복 선언을 했다.


    "음… 쉽지 않은데요."

    "맞추면 상품 있습니다."


    상품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그녀가 반짝이며 외쳤다.


    "스물다섯?"

    "땡! 아쉽지만 틀렸어요."

    "아쉬워라! 그래도 근접했죠?"

    "관대하게 보면 근접했다고 볼 수 있죠. 30살이에요."

    "맙소사! 저랑 비슷할 줄 알았어요. 제가 스물다섯이거든요."

    "스물다섯이나 서른이나 비슷하긴 하죠."

    "그렇죠,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면 그렇기는 해요."

    “너그러우시네요.”


    안타깝게도 수영장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짧았다. 감질맛 나는 대화였지만 감칠맛 나는 대화이기도 했다. 수영장에 도착한 우리는 각자 하기로 한 일을 했다. 그녀는 수영장을 다시 열었으며, 나는 락커에서 간단히 샤워를 했다. 몸이 개운해지니 정신이 더욱 또렷해졌다. 머리를 대충 말리고 수영장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자신의 위치에 앉아 그사이 수영장을 찾은 어르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빨간색이 어울리네요."


    나는 유니폼을 입은 그녀를 칭찬했다. 아까 혼절을 하고 응급실까지 가버린 나 때문인지 그녀는 언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고객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 집중 상태가 얼마나 유지되려나? 나라면 10분이 한계일 거야.


    "고마워요. 이제 돌아가시나요?"

    "네, 배도 좀 고프고, 사실 아까 많이 놀라기도 해서요. 물론 놀란 건 그쪽도 마찬가지겠지만."

    "전 괜찮아요! 제 할 일을 한 거니까요. 그럼 푹 쉬세요."

    "고마워요, 그럼 내일 봐요."

    "내일도 오시는 거예요?"

    "네, 수영을 좀 잘하고 싶어서요. 혹시 수영 잘해요?"

    "저요? 당연히 잘하죠! 이 자리를 그냥 외모로만 얻은 게 아니랍니다."


    그녀는 내 황당한 질문에 실소했고, 나는 그녀의 뻔뻔하고 귀여운 답변이 마음에 들었다. 서로 한 차례 주고받은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 내 눈이 흔들렸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내 진짜 목적을 말했다.


    "혹시 내일 다른 손님들이 없으면 저한테 수영 코칭 좀 해줄 수 있어요?"


    그녀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깐의 고민.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좋아요!"

    "감사합니다. 그럼 앞으로 선생님이라고 부를까요?"

    "호랑이 선생님 스타일로 가르칠 거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오도록 해요."

    "마음가짐, 중요하죠. 네, 알겠습니다."

    "하하,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사실 처음 봤을 때에는 제가 아는 사람이랑 너무 닮아서 구면인가 했었거든요."

    "세상에 저 닮은 사람이 또 있다고요? 저만큼 아름다운가요?"

    "뭐라고요? 하하하."

    

    스스로 던진 자신감 넘치는 농담이 뒤늦게 민망했던지 그녀도 나를 따라 크게 웃었다(“헤헤, 농담인 거 알죠?”그녀가 수줍게 후술 했다.) 밝은 여자였다. 늘 활짝 웃는 카타리나의 모습을 보고 싶었었다. 카타리나에게서 보지 못한 카타리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서 본다. 알렉시스 덕분에 시원하게 웃었지만 한바탕 웃음의 마지막에는 눈에 눈물이 찔끔 맺혔다. 아마 너무 웃어서 나온 눈물로 보이겠지?


    "덕분에 앞으로도 많이 웃을 거 같아요. 이제 진짜 저는 가볼게요. 그럼 남은 근무 시간도 파이팅입니다."

    "에고, 너무 즐겁게 떠들어서 저도 모르게 한눈팔고 있었네요. 그럼 내일 봐요!"


    다시 매의 눈으로 돌아가 수영장을 감시하는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수영장을 나섰다. 방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까 기절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스텝이었다. 어쩌면 요양원 생활이 즐거워질 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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