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사이에서 돌고 도는 감기...
효둘이가 해준 프렌치토스트로 아침을 먹고 마트에 장을 보러 다녀왔다. 쨍쨍한 날씨였지만 바다를 보니 수영하는 사람이 아무도, 정말 아무도 없었다. '수영을 할 수 없는 바다인가?', '수영을 하기 위해선 수영이 허용된 구역으로 가야 하는 건가?' 우리끼리 한참 토론을 했다. 당연히 답은 나오지 않았고, 우리는 진짜 답을 찾기 위해 호스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호스트는 언제나처럼 신속하게 답변을 남겼다. 해수온도가 15도니 스스로 판단해 보라고, 현지인들은 5월에 수영을 시작하고, 자신은 5월 말에나 시작한다고 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해석해 보라며 눈을 질끈 감고 환하게 웃고 있는의 이모지를 더해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메시지는 강하게 만류의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우리는 잠깐 고민을 했다. 하지만 효자매는 (특히 효일과 효둘은) 어쩔 수 없는 물 속성 인간이었기에 결국, 수영 가방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갔다. 스플리트의 맑고 청량한 바다를 보고 수영을 참기란 재채기를 참는 것만큼 어려웠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스플리트였기에, 우리는 춥지만 이겨내 보기로 한 것이다.
우리 중 가장 따뜻(?)한 긴 팔, 긴 바지 수영복을 입은 효삼이는 발을 슬쩍 담가보고는 너무 춥다며 진저리를 쳤다. 그러더니 챙겨 온 돗자리를 양지바른 곳에 펼치곤, 햇빛을 쬐며 짐을 지키고 있겠다고 했다. 효일이와 효둘이는 씩씩하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너무 추워서 이가 덜덜 떨렸지만, 물속에 있다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생존을 위한 뇌의 속임일까? 하지만 그것도 3분 정도였다. 효일과 효둘은 3분 정도 수영하고 30분 햇볕을 쬐었다. 뭍으로 나와 먹는 감자칩과 맥주는 꿀맛이었다. 그리고 몸이 좀 녹았다 싶어지면 다시 3분 동안 열심히 물장구를 쳤다.
이게 문제였다. 안 그래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무리를 한 탓에 감기 기운이 확 올라왔다. 실시간으로 컨디션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침에 마트에서 사 온 닭으로, 챙겨 온 불닭 소스를 넣고 닭볶음탕을 만들었다. 의외로(?) 효일이 닭 손질을 무서워해서, 또 의외로(?) 제일 비위가 약하고 겁 많은 효둘이가 닭을 썰었다. 유럽에서, 불닭소스로, 닭볶음탕이 될까, 싶었는데 결과물은 환상이었다. 너무나 맛있어서 세 명 모두 깜짝 놀랐다. 국물은 남겨 놨다 다음날 밥 볶아 먹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이게 한식의 힘인 걸까? 배도 차고 마음도 풍족해졌다. 저번에 따와서 조금 쓰고 남은 레몬으로 뱅쇼도 만들어 마셨다. 몸이 노곤노곤 풀어졌다.
자고 일어나면 개운하게 컨디션을 회복할 줄 알았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다음 날 아침 효일이는 냄새를 잃어버렸다. 효둘이도 코를 찔찔 흘렸다. 효삼이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지만 감기가 올 것 같다고 했다. 난리도 아니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무리하게 일정을 짜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우리 숙소가 있는 동네는 주로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작은 동네여서 딱히 할 게 없었다. 대체로 우리는 산책을 했다. 살갗에 닿는 은은한 바람을 즐기며 마당에 누워 식물들과 곤충들을 구경했고, 끼니마다 밥을 만들어 먹는 데에 하루를 다 썼다. 정해진 스케줄이 없었기 때문에 약속이 없는 한국에서의 주말처럼 졸리면 낮잠을 자고, 함께 한국 예능 보며 시간을 보냈다. 걱정 근심 없이 평온하고 고요한 날들이었다.
효삼이는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낮잠에 들었고 효일과 효둘은 주변을 걸어 다니며 산책을 했다. 효일이는 콧구멍에 향수를 꽂아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낄낄거렸다. 즐거웠다. 냄새를 맡을 수는 없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고, 동네의 다양한 소리를 듣고, 느낄 수 있었기에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잠에서 깬 효삼이도 합류해 동네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숙소로 돌아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아름다운 동네였다.
집으로 돌아와 '안 아프려면 잘 먹어야 된다'는 생각에 고기를 구워서 또 한껏 먹었다. 숙소에 구비되어있는 홍차로 밀크티까지 야무지게 끓여 마셨다.
다음날은 정말 드물게, '일정이 있는 날'이기 때문에 일찍 침대에 누웠다. 크르카 폭포 투어 예약을 해놨기 때문이다. 단체 투어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아침 일찍, 늦지 않고 집결 장소로 모여야 했다. 크르카 국립공원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 1001 곳'에 들어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라 우리는 소풍 가기 전날의 어린이들처럼 설렘과 긴장을 안고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