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아침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더 잘까, 아니면 움직일까?
이날 우리는 포근한 침대의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일어났다. 두브로브니크의 푸르른 바다에서 수영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토스트를 구워 먹고 빠르게 짐을 챙겨 밖을 나섰다.
스플리트에 있을 땐 쌀쌀하기도 했는데, 두브로브니크는 해가 쨍쨍하니 날이 좋았다. 스플리트와 달리 두브로브니크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해변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찬란한 태양볕 아래 개성 넘치는 돗자리들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누워 선텐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노래를 틀어 놓고 따라 부르며 각자의 방식으로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수온이 낮아서 수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오직 수영 생각뿐이었다. 심지어 효일은 수영으로 반대편 해변까지 다녀왔는데,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중간 지점에는 바다 생물들이 훨씬 더 많고 선명하게 보였다고 했다. 물속에서 빛나는 물고기들과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만든 바닷속 생태는 고요했고, 풍요로웠으며 아름다웠다. 우리는 바다가 건네는 평온한 위로를 받으며 한참 물놀이를 즐겼다.
집으로 돌아와선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유럽 사람들은 삼겹살을 잘 안 먹는다고 하길래 숙소 근처 마트 안 정육점에서 삼겹살(Pork Belly)을 따로 요청해서 사 왔다. 정말 저렴했다. 삼겹살과 함께 마늘, 버섯을 구워 먹었는데 두브로브니크 양평시 같았다. (ㅋㅋㅋ) 우리는 서로의 접시에 잘 구워진 삼겹살 조각을 얹어주며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다. 유럽에서 한식을 만들어 먹으면 유독 더 맛있게 느껴지곤 하는데, 삼겹살은 특히 그랬다.
설거지까지 마친 뒤, 니콜라가 강력 추천한 ‘올드 타운’에 갔다. 성벽에 올라가려면 인당 5만 원 정도를 내야 했다.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그 돈이면 삼겹살이 몇 인분이야?” 효삼의 농담에 효일과 효둘은 수긍했다. 우린 쿨하게 성벽 관람을 포기했다. 내부는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 카페들이 빼곡히 자리 잡은 전형적인 관광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골목과 돌길에 시간이 쌓여 있는 느낌이라 흥미로웠다.
그 후, 마라샹궈 소스를 사기 위해 아시안마켓에 들렀다. 작은 가게라 우리가 찾는 것은 없었지만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우리가 탄 택시의 기사는 젊은 남자였는데 어떠한 인사도, 말도 없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중간에 아무 말도 없이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한참 뒤, 남자가 편의점 간식을 쩝쩝 주워 먹으며 다시 택시에 올라탔다. 역시 우리에겐 어떤 말도 없었다.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우리는 작은 복수로 기사에게 별점을 짜게 주었다. (ㅎㅎㅎ)
집으로 돌아와 저녁으로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구워 먹었다. 수영과 삼겹살과 올드 타운 관광까지... 성공적인 하루였다며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다.
믿었던 유레일에 발등이 찍혀버린 것이다. 그리스를 가려고 했는데 교통편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유레일 횟수권을 끊은 상황이었기에 추가적으로 비용이 들지 않기 위해선 최대한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야 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머리를 맞대고 새벽 3시가 넘도록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그리스를 가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세르비아와 불가리아를 들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린 난감하고 황당한 상황에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서로 심각해하는 모습을 보며 또 웃었다. 여행이 예측 불허의 연속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마주하는 여행의 묘미를 다시금 상기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