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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코너: 동경 여행

2024년 2월

by 정인성교수 Feb 20. 2024

지난번 인도 결혼식에 이어 두 번째 쉬어가는 코너로, 2월 초 설 연휴 즈음 한 동경 여행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관광 목적의 마음 가벼운 여행은 아니었고, 지난 19여 년 정도를 근무했던 국제기독교대학의 한 심포지엄에서 발표가 포함되어 있는 여행이었다. 다행히 심포지엄은 하루, 나머지 3일은 동료들과 옛 학생들도 만나고 새로 지은 동경 시내 건물도 감상할 시간이 있었다. 떠난 지 2년 만의 동경 여행이라 설렘을 가지고 떠났다.


내가 십수 년을 살았던 곳은 동경이기는 하지만 동경 시내는 아니었다. 신주쿠에서 JR라인을 타고 20여분 정도 서쪽으로 가면 나오는 무사시사카이 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들어가는 미타카시에 위치한 국제기독교대학 (International Christian University, ICU) 캠퍼스였다. 짐작할 수 있듯이 동경 시내와는 달리 큰 변화가 눈에 뜨는 그런 지역은 아니었다. 이번 여행이 대학에서 초청한 것이라 캠퍼스 내 널찍한 숙소에 머물 수 있었다. 도착 이틀 전에 대설이 왔다고 캠퍼스 여기저기 눈이 녹지 않고 있었다. 내가 묵은 방은 멀리 눈 덮인 후지산 정상이 보이는 전망이었다. 아쉽게도 나뭇가지에 가려 사진으로 나오진 않았다. 겨울의 끝자락이고 오래된 나무들을 베어버려 그런지 초록으로 덮였던 아름답고 풍성한 캠퍼스의 이미지는 보지 못하였다. 그래도 본관 앞에 핀 매화꽃나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내가 떠날 때 짓고 있었던 새 강의실 건물은 멋지게 완성되어 있었고, 내가 살던 타운하우스도 새로 내부 수리를 마쳤다고 했다. 그래도 미래의 꿈을 생각하며 현재를 힘차게 살아가는 내 성격상 때문인지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여기 동경 여행 중 ICU 캠퍼스에서 찍은 사진 몇 장 올린다.

눈 속에 매화가 핀 ICU 캠퍼스 - 멀리보이는 건물이 내 오피스가 있던 연구동눈 속에 매화가 핀 ICU 캠퍼스 - 멀리보이는 건물이 내 오피스가 있던 연구동
본관 앞 Bakayama 라고 불리는 동산과 매화 나무들본관 앞 Bakayama 라고 불리는 동산과 매화 나무들
새로 지은 강의동 건물새로 지은 강의동 건물

대학 주변이나 무사시사까이역 주변에는 코비드 시절 문 닫은 몇몇 가게들이 새로운 가게들로 바뀐 것 외에는 크게 변화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예전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편안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그런데 크게 눈에 띄었던 것은 전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거리의 전봇대들. 동경 시내에는 전선이 거의 다 땅 밑으로 들어갔으나, 주택가에는 여전히 도로 위에 있었다. 한국의 아파트단지에서 땅 밑으로 들어간 전선으로 깨끗해진 환경에 익숙해지다가 보니 예전에 살 때에는 별로 눈에 안 띄었던 모습이 이번 동경 여행 중에는 보인 것이리라. 

대학 주변 주택가의 전선 풍경대학 주변 주택가의 전선 풍경

또 하나 눈에 뜨인 것은 맥도널드에 들어선 자동주문기. 앗, 동경 시내가 아닌 이 후미진 주택가에도 자동주문기가 들어오다니! 하는 놀라움이었다. 방문한 모든 식당의 주문은 패드로 받았다. 그것도 놀람. 당연한 것에 놀라네 하는 분들도 계실 듯 하나, 동경의 주거 도시에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이런 변화는 큰 것이다.

대학 주변 주택가에 있는 맥도날드의 자동 주문기대학 주변 주택가에 있는 맥도날드의 자동 주문기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했는 데 안 바뀐 것은 자물쇠와 열쇠를 사용하는 잠금 시스템. 새로 수리한 타운하우스는 물론 거의 모든 오피스들도 여전히 열쇠로 자물쇠를 열게 되어 있었다. 한국의 거의 10년이 된 아파트도 번호를 누르거나, 지문 및 동공인식, 앱 인식 등으로 쉽게 들어오는데…. 리모델링한 건물이라면 더 발전한 잠금시스템을 쓸 것 같은데. 일본은 아마도 개인의 안전과 프라이버시 등에 대한 염려로, 일반인들의 거주 문화에서 자동화된 디지털 잠금장치는 천천히 도입될 듯하다.


동경을 떠난 지 2년이 되어서인지 이번 동경 여행 중 궁금한 것 중의 하나는 시내 모습의 변화였다. 시간이 없었던 관계로 한-두 군데 만을 보기로 하고, 자주 가던 신주쿠와 작년 여름쯤 한국 신문에서 크게 소개된 롯폰기의 아자부다이힐즈를 갔다. 신주쿠는 주말이 아닌데도 무척 붐볐다. 여기저기서 한국말, 중국말, 영어 등등 여러 나라 언어가 들려왔다. 일본 엔 가치가 하락하면서 생긴 오버투어리즘 (overtourism)의 한 현상이리라. 옛 지도 학생들이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한 곳은 좋은 호텔 40층의 일본식당. 신주쿠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멋진 식당이었다. 튀김 소바 정식에 디저트까지… 배도 적당히 부르고 아주 맛있었다. 5성급 호텔이라 비싸지 않을까 염려하였는데, 세금 포함 5,500엔 (4만 8천 원 정도)라고 해서 깜짝 놀람. 한국의 5성급 호텔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가격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야기하다 보니 늦은 오후가 되어 전철로 갈아타면서 롯폰기까지 가면 피곤할 듯하여 택시를 탔는데, 도로는 막힘없이 빨랐다. 택시비도 생각보다 저렴해서 3,300엔.  

신주쿠 한 호텔의 점심 - 튀김 소바 정식신주쿠 한 호텔의 점심 - 튀김 소바 정식
점심 - 디저트점심 - 디저트

드디어 아자부다이 힐즈 (https://www.azabudai-hills.com/ko/index.html). 오모테산도 힐즈와 롯폰기 힐즈에 이어 모리빌딩회사가 만든, 34년에 걸친 현대식 도시 프로젝트라고 들었다. 대규모 건축이라 건설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했지만, 주변 도라이몬과 아자부다이 근처의 주민들과 함께 만들기 위하여 설득하고 협상하고 의견을 맞추어 나가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고 한다. 아쉽게도 길거리에서 아자부다이 힐즈 전체를 다 볼 수 없었지만, 일단 보이는 부분만으로도 멋지게 디자인된 건물들로 연결된 커뮤니티로 보였다. 아직 가게들이 다 들어서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디자이너 숍들과 레스토랑, 학교, 병원 등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서면 멋진 관광지 겸 주거지가 될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몽블랑 케이크가 맛있다는 카페에서 만난 친구가 하는 말… 롯폰기 힐즈의 아파트는 외국인에게도 분양되었던 반면, 이곳 아자부다이 힐즈 아파트는 엔저로 인해 일본인보다 더 많은 외국인에게 분양될 것 같은 걱정 때문인지 일본인에게만 분양되었다고. 원래 멋진 건축물이 많았던 동경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새로운 개념의 복합 도시 건축물이 더 해진 느낌이다. 동경 갈 기회가 되시면 롯폰기 힐즈, 오모테산도 힐즈, 아자부다이 힐즈 세 곳을 방문하여 힐즈 각각의 공동체적 건축물의 특징 등을 느껴보시길. 단, 복잡하고 피곤해지기 쉬운 오후는 피하길 권한다. 특히 오후엔 맛있는 카페는 항상 북적여서 앉아서 쉬려면 많이 기다려야 한다. ㅎ

아자부다이 힐즈의 한 부분아자부다이 힐즈의 한 부분
아자부다이 힐즈 내의 식당의 야외아자부다이 힐즈 내의 식당의 야외
아자부다이 힐즈에서 보이는 동경타워 모습아자부다이 힐즈에서 보이는 동경타워 모습
아자부다이 힐즈 내 카페 (이름은 생각나지 않으나 몽블랑케익이 유명하다고)의 디저트셋트 아자부다이 힐즈 내 카페 (이름은 생각나지 않으나 몽블랑케익이 유명하다고)의 디저트셋트 

2024년 설날인 2월 10일에는 내가 살던 옆집의 한국계 미국인 선생님 부부의 초대로 그 댁에 가서 브런치로 맛있는 설음식과 떡국을 먹게 되었다. 한국에 있어도 이렇게 먹기는 어려울 진수성찬. 대학에 새로 부임한 젊은 교수 2분과 오래된 친구 1분도 초청되어 이들과 함께 만두도 빚고. 내가 처음 부임할 2000년도 초에는 3분이었던 한국인 교수가 지금은 10명이 넘는 듯. 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대개 여러 외국에서 공부하고 거기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오는 경우가 많다. 최근 들어 연구 실적이 우수하고 다양한 국제 경험을 가진 기독교인 한국인 교수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다른 일본 대학들에서도 한국 교수들의 진출과 활동을 힘차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보면서 왠지 자랑스러운 부모의 심정이 되었다.

음력설에 일본에서 먹은 설 음식. 여기에 떡국까지!음력설에 일본에서 먹은 설 음식. 여기에 떡국까지!

동경 여행의 마지막 저녁은 가장 친했던, 지금도 가깝게 라인 하는, 일본인 친구 부부와 캐나다 친구와 함께 키치죠지 (吉祥寺, Kichijoji - https://www.japan-guide.com/e/e3080.html)라는 대학에서 가까운 트렌디한 지역에 가서 저녁을 했다. 우메노하나 (Umenohana)라는 두부 전문점이었다. 나는 와규 두 점이 포함된 코스요리를 주문하였는데, 눈으로도 즐기고 맛으로도 즐긴 그런 시간이었다. 정신없이 그동안 못했던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담화까지 하다 니 어느새 헤어질 시간. 다음에는 내가 사는 곳에서 보자고 약속하며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역시 친구는 문화를 초월할 수 있고 한참 안 보아도 친구로 남는 존재임을 확인.

키치죠지의 우메노하나에서 저녁으로 먹은 정식의 에피타이저키치죠지의 우메노하나에서 저녁으로 먹은 정식의 에피타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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