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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한국문화를 보는 시각의 변화 20년

by 정인성교수 Mar 17. 2024

시간이 정말 빠르다, 벌써 2024년의 봄이 우리 곁에 왔다. 2003년, 내가 일본의 대학에서 첫 강의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넘어섰다. 이 긴 시간 동안, 일본에서 한국인, 한국 문화,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내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을 통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위의 사진은 httpspixabay.comphotoschangdeokgung-palace-4595786의 무료이미지이다.)


2003년 겨울연가와 함께 시작된 한류

2003년, 한류가 발을 딛기 시작한 시절이라, 일본에 도착한 나는 꽤나 시기적절한 선택을 한 셈이 되었다. 신입 교수 환영회에서 처음 만난 동료들이 가장 먼저 꺼낸 화제가 '겨울연가'였다니, 그 시절의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정말 감동적이었어, 많이 울었어요", "한국에서는 어땠어요?", "주인공들 정말 멋지고 예뻤어요" 같은 반응들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얼마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그리고 가수 보아에 대한 언급까지, 모든 게 그 시절 한류의 열기를 말해주는 듯하였다. 한국에서 2002년에 방영된 후 일본에서도 방송되기 시작하면서, 배용준과 최지우 같은 매력적인 배우들,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과 감성적인 음악이 일본 전역에 퍼져나갔다. 그 결과, '욘사마'라는 별명까지 생기며 겨울연가 촬영지 관광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그 당시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겨울연가 포스터 (https://www.flickr.com/photos/alanchan/2477500722)

내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겨울연가와 한일 관계의 변화를 분석해보라고 했을 때, 학생들의 반응이 엄청났다. 이미 본 학생들뿐만 아니라 처음 접하는 학생들까지 모두 이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됐다고 하였다. 그들이 조사해 온 신문이나 방송 자료들을 보면, 당시 겨울연가와 보아의 노래가 한류를 넘어 일본 사회에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실제로 그 예측이 현실이 됐다는 걸 지금 돌이켜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한류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 양국의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양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니.... 대단한 일이었다.

 

으쓱해진 한국인의 어깨

지금도 그렇고, 언제나 그렇듯, 한일 관계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역사적인 그림자, 특히 일제강점기의 아픈 기억은 여전히 두 나라 사이에 미묘한 긴장을 조성한다. 하지만, 2002년의 한일 월드컵과 2003년 겨울연가를 통한 한류의 도래는, 이 복잡한 관계에 조금이나마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 시기의 변화는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나 역시 그 흐름을 타고 일본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행운아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본 사회가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완전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대학이라는 비교적 개방적인 공간에서는 인정받고 환영받았을지 몰라도, 일상의 사우나나 체육관 같은 곳에서는 아직도 한국인에 대한 편견을 듣는 일이 적지 않았다. 나 스스로를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사람의 편견을 버리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2005년 이후 대장금을 통한 한류 영역의 확대

그야말로 한류의 바람이 일본을 강타한 순간은, 2005-2006년 대장금의 열풍이었다. 겨울연가가 특히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대장금은 성별을 뛰어넘어 일본 남성들 사이에서도 열광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내 주변 일본 남성 동료들과 친구들사이에서도 매주 대장금 시청이 일종의 의식이 되어버렸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용감하고 지혜로운 장금이에 매료된 것뿐만 아니라, 한국 음식에 대한 궁금증과 흥미도 함께 커져갔다.

한국 궁중 음식 구절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6022)

대장금을 통해 한류는 단순한 드라마의 영역을 넘어 전통 의상과 음식까지 아우르는 문화적 확장을 이루었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 한류는 K-팝, K-영화에 이어 한국 음식과 언어까지 일본 내에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일본 사회에서는 물론 대학들에서도 한국어 학습자가 늘어나고, 한국 문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퍼지면서, 한국인에 대한 태도와 시각도 더 좋아졌다.


특히, 나를 놀라게 한 건 동네 백화점 식품 코너의 변화였다. 고추장, 김, 라면, 김치 등 한국 식품을 파는 구역이 눈에 띄게 확장된 걸 보며, 한류의 파급력을 몸소 체감했다. 심지어 동료 교수들이 내게 직접 한국 김치를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는지, 저렴하면서도 효능이 좋은 홍삼 제품은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곤 했다. 온라인 시장에선 한국 제품들을 점점 더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의 동네 마켓에서 흔히 보이는 한국 제품들 (사진의 왼쪽 편) (https://www.flickr.com/photos/avlxyz/32324276417)

그리고 친구들과 대학원생들의 열정적인 요청에 힘입어, 나는 오이 김치와 부침개(일본에서는 지지미라고 부름)를 뚝딱 만들어내는 요리 클래스를 열었다. 요리 전문가들이 보면 엉터리라고 혀를 차시겠지만. 아주 기초적이면서도 재미난 요리 시간이었다. 커다란 한류의 흐름 속에서 가능해진 이런 소소하지만 특별한 순간들이 한일 간 문화 교류에 소중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2010년대 혐한의 압박과 혐한 반대의 힘

일본에서 한류가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그 열기가 한일 관계의 깊은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아니었다. 한류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한국 사이의 긴장은 정치적 이슈로 인해 여전히 높아지곤 했다. 기억하시겠지만 2006년에 시작된 아베 정권 동안 위안부 문제나 독도 영유권 분쟁 같은 역사적 이슈들이 불거질 때마다, 양국 간의 관계는 더욱 얼어붙었다.


2012년에 시작된 아베 정권의 두 번째 기간 동안 혐한 운동이 사회적으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는 크게 체감되지 않았지만, 동료들로부터 걱정하는 말을 듣거나, 신주쿠나 시부야 같은 번화가에서 혐한 시위가 열리거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심지어 한국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조언이나 신분증을 항상 지니고 다니라는 조언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경험하지 않았지만, 아는 한국인이 경찰 검문에서 불편한 상황을 겪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이 시기에는 NHK지상파나 Fuji TV, Asahi TV 같은 전국 네트워크 TV에서 극우파의 반대로 한국 드라마나 음악 방송을 전국 TV에서 방영하지 않고 위성 채널로 옮기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혐한 데모나 발언에 반대하고, 이러한 행동이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도록 막으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일부 심야 토론 방송에서는 아베 정권과 혐한 운동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대학들에서도 혐한 반대 청원을 하는 그룹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래도 우린 이런 의견을 개진했어’하는 명분론적인 행동으로 비쳐질 정도였다.


그래도 한류 열기는 계속, 소프트 파워의 힘

놀라운 것은,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교류는 계속되었다는 점이다. 한류의 열기가 잠시 수그러들었다 다시금 불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K-팝의 전 세계적 인기가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을 다시 뜨겁게 만들었다. '소녀시대'의 일본 음악 시장에서의 대성공은 혐한의 시기에도 불구하고,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 이전에는 여성 중년층에게 인기가 있던 한류가 남성층을 포함하고, 이제는 10대부터 20대 젊은 층으로 그 중심이 옮겨가며 관심층을 넓혀 갔다.

일본에 진출 당시 소녀시대 (from Flickr)

2011년 대지진 바로 전, NHK의 젊은 몇 몇 프로듀서들과의 점심 식사에서는 소녀시대의 음악, 멤버들의 외모와 댄스 실력은 물론이고 뛰어난 노래 실력과 안무에 대한 칭찬이 쏟아졌다. 소녀시대뿐만 아니라, 일본까지 진출한 한국의 도자기 공예까지 언급하며 한국인들의 예술성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논하면서, 정치적 장벽이 문화 교류를 막을 수 없음을 실감케 했다. 그야말로 한국 문화의 '소프트 파워'가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목격한 시점이었다.

 

국제화되는 한류 문화 수용과 넷플릭스의 역할

내가 아는 일본 사회는 세계 무대에서의 국제적 성취와 인정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일본 언론은, 한국 언론과 비교하여 볼 때, 국제적인 뉴스를 더 자주 더 크게 다룬다. 교육 분야에서도 국제 기구에서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거나 주요 연구 논문이 나오면 정부 기관이 앞장서서 신속히 일본어로 번역하여 관련 기관들이나 대학, 개인에게 제공할 정도이다. 문화계에서는 특히 미국이나 유럽의 기관이나 행사에서 상을 받거나 인정받은 작품, 배우, 감독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부터 BTS, Blackpink, EXO 등 한국 팝의 국제적 성공, 그리고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까지, 한국 문화는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아왔다. 일본 언론들이 이를 주요 뉴스에서 다루고 토크 프로그램 여기 저기서 이야기하던 것이 기억난다. 캠퍼스에 살던 동료교수들과 함께 집에서 ‘기생충’ 영화를 함께 보면서 한국 영화계의 발전을 얘기한 것도 기억난다.  세계 무대에서의 쾌거들은 한국의 전통과 현대 문화의 조화로운 소프트 파워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한류의 매력은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쳐, 한류는 마치 일본 문화의 일부처럼 자리 잡았다. 동네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잡지의 표지가 한국 스타들로 장식되고, 한국의 생활 방식, 음식, 패션, 뷰티 등이 일본 사회에 깊숙이 파고드는 것을 목격하였다. 여기 저기 둘러보아도 한국 문화의 다양한 모습과 그 영향이 보였다. NHK의 홍백가합전과 같은 전통적인 행사에도 한국 가수들이 참여하며, 일본에서 한국 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영화 기생충 프레스 컨퍼런스 (https://www.flickr.com/photos/koreanet/49555076648/)

코로나19 시기, 일본인들은 넷플릭스를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의 드라마에 더 많이 접하게 되었고, '사랑의 불시착', '동백꽃 필 무렵' 등 한국 드라마에 대한 열기는 더욱 높아졌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주변에서 한국 드라마나 영화 한 두개쯤 안 본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드라마, 웹툰, 게임, 패션 등에서 미국에 이어 한국이 선호되며, 예능과 뷰티 분야에서는 선두를 차지하는 등, 2022년 해외 한류 실태 조사 결과는 한국 문화의 일본 내 성취를 넘어 경제적, 사회적 성취까지 입증하고 있었다.


한국인에 대한 다양한 시각

한국의 세계적인 위상과 경제력 상승, 그리고 일본 내에서 한류 문화가 넓게 퍼짐에 따라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기대치가 크게 높아짐을 느꼈다. 대학 내에서도 한국인의 우수성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오르내렸고, 한국인 교수의 채용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일본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한 나의 경험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한국인 교수들이 연구 성과가 뛰어나고, 강의와 학교 운영에 있어 본분을 다하며,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우수하고, 대학 행정에 참여할 때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해 리더십을 인정받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외국인 교수라 해서 모두가 동일한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한국인 교수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인 편이다. 동경대나 국제기독교대학 등 연구 및 강의 업적에 엄격한 대학들에서도 세계 각국에서 온 지원자들을 제치고 한국인 교수들이 매년 몇 명씩 채용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공부한 한국인 교수들은 일본어 능력도 뛰어나 대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일본 내에서 한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일본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나, 긍정적인 시각도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면서 – 신한류 시대로

내가 2003년 일본으로 건너간 이래로, 한국에 대한 일본 내 시각은 많이 바뀌었다. 한류의 물결이 시작되면서, 정치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교류가 이어져 왔고, K-팝과 한국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일본에서도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커졌다. 하지만 내가 주로 접한 건 중노년층이었고, 젊은층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졌다.


최근엔 '신한류'라 불리는 새로운 현상이 일본에서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 이후의 한류는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특히 Z 세대 (10대 후반에서 20대 포함)가 중심이 되어 한국 문화를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20대 중 65%가 한국을 친밀하게 느낀다고 한다. 이는 전쟁 경험이 없는 세대라는 점에서 그들의 부모나 할머니 세대와는 다른 친밀감이 생긴 것이다.  예를 들어, 할머니 세대는 '겨울연가'에 빠졌고, 부모 세대는 소녀시대나 카라를 즐겼다. 그 결과, 일본의 Z 세대는 자연스럽게 '한류 네이티브 세대'로 성장했다.


이 Z 세대는 진짜 한국 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두 다 그렇지는 않자. 그들이 만드는 신한류 붐은 SNS를 통해 한국 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하며, 이전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국을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옛날 한국 식당에서 쓰던 멜라민 식기를 찾거나, 자신들의 시각으로 한국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다.  (5명의 히토쓰바시대학의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은 자신들의 시각에서 한국의 역사를 썼다. 제목은 『日韓』のモヤモヤと大学生のわたし – 한일관계의 모호함과 대학생인 나. 한국 음악과 한국 드라마 등을 좋아하는 일본의 젊은 한국 팬들을 대상으로 한일간의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라고 한다.) 이런 활동들이 일본 내에서 한국 문화를 단순한 유행이 아닌, 일상생활의 일부로 만들고 있는 느낌이다.

일본의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인 한국의 레트로 감성, 멜라민 식기
'한일관계의 모호함과 대학생인 나' 책 표지(https://booklive.jp/product/index/title_id/20035747/vol_no/001)

최근의 신한류는 단순한 문화 수용을 넘어서, 일본 사회문화 체제 내에서 한국 문화가 더 보편적이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가 한일 관계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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