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전문은 영문 요약 뒤에 따라옵니다.
It only takes about 15 minutes by car to reach Tongyeong from my house. It is so close, it almost feels like part of Geoje, like a friendly next-door neighbor. There is not even a single traffic light on the main road from my house to Tongyeong, so the drive is smooth and quick. Interestingly, although Geoje has over 230,000 residents, Tongyeong has less than 120,000. It’s a smaller and quieter city, and its population is declining faster. But maybe that is part of what makes it feel more intimate and charming. Tongyeong is full of narrow, winding alleys, low houses, blooming flowers behind stone walls, and ocean views from almost anywhere in town. Compared to the wide and straight roads of Geoje, Tongyeong feels more nostalgic, more soulful to me. Historically, Tongyeong was a naval base during the Joseon Dynasty, protected by Admiral Sun-sin Lee. Today, it’s known as a city of art and emotion, home to famous artists, musicians, and writers. Their spirits live on in the city’s galleries, alleyways, and concert halls. To me, Tongyeong is not just a place to visit. It is a place that slowly seeps into you. Today I’d like to share the story of this special city: Tongyeong, my warm and artistic neighbor.
통영은 예전부터 내가 좋아하는 동네, '최애' 지역 중 하나이다.
내가 사는 거제면에서 통영으로 들어가는 길, 신 거제대교까지는 차로 15분 정도. 이 정도면 거의 옆집 수준 아닌가. 우리 집에서 통영 가는 메인 도로에는 신호등이 하나도 없다. 집에서 차를 타고 나오면 쉬익— 하고 달려 금세 통영에 닿는다. 어찌 보면 행정구역상은 거제지만, 부산 쪽에 더 가까운 장목면이나 하청면, 연초면 같은 곳보다도 통영 쪽이 훨씬 가깝고, 마음으로도 가까운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자주 통영에 간다. 마음이 심심할 때, 편하게 영화 보고 싶을 때, 바람 쐬고 싶을 때,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러, 그냥 그 골목길이 그리울 때. 오늘 이야기는 그런 통영, 거제의 다정한 이웃이자 예술과 정서가 흐르는 도시, 통영에 관한 것이다.
통영에 대해 내가 처음 놀랐던 사실이 있다. 바로 거제 인구는 23만 명이 넘는데, 통영은 12만 명도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훨씬 작은 도시였다. 인구도 거제보다 더 빨리 줄어드는 중이라고 하니, 조금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정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통영은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이상하게 낯익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낮은 집들과 담장 너머 피어나는 꽃들, 그리고 어디에서든 가까이 보이는 바다. 거제의 넓고 반듯한 도로와 멀리 보이는 바다 풍경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통영의 옛 정취와 바로 앞에서 부는 바다 냄새 섞인 바람이 더욱 따뜻하게 다가올 것이다.
통영은 원래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하던 군사도시였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지키던 통영의 바다는 조선 수군의 요새였는데, 그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은 예술과 정서가 살아 있는 도시로 바뀌었다. ‘동양의 나폴리’라는 별명도 있지만, 통영은 그보다 더 조용하면서 더 진한 역사적 결을 지닌 곳이라고 생각된다.
화가, 작곡가, 시인, 소설가. 이 작은 도시에서 유난히 많은 예술가들이 태어나고 자랐다. 전혁림, 윤이상, 김춘수, 유치환, 박경리… 그들의 숨결은 지금도 통영 곳곳에서 느껴진다. 오래된 갤러리와 공방, 벽화마을과 골목길, 골목길에 숨어 있는 색다른 가게들, 그리고 음악당. 모든 공간이 작품이고, 그 자체가 무대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통영 여행을 하면서 통영을 사랑하게 되신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에게 통영은 그저 '구경하는 도시'나 ‘살기 편한 도시’라기보다는 '스며드는 도시'다.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문득 마주치는, 무심한 듯한 멋스러운 풍경, 낡은 흰 담장에 심긴 빨간 덩굴장미들이 어린 시절로 나를 데려가는 듯한 기분, 무심코 들어간 식당에서 마주하는 따뜻한 밥 냄새와 동네 사람들의 소박한 목소리들이, 이 도시를 특별하게 만든다.
이제 내가 자주 찾고 즐겨 머무는, 통영의 정다운 장소들을 몇 군데 간단히 소개해보려 한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 통영에 대한 글이 소개되었으니 함께 보시기 바란다.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5/03/22/OPD3NKPCC5GA3LDKKZJHFU4MVE/
동피랑과 서피랑은 통영 시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두 언덕 마을이다.
동피랑은 원래 철거 위기에 놓였던 달동네였으나, 벽화로 다시 살아난 곳이다. 골목마다 색색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동포루 전망대에 오르면서 보이는 앞의 강구안항의 바다는 정겹다. 아마 관광객에게 가장 알려진 곳이 아닐까 싶다.
서피랑은 조금 더 조용하고 사색적인 공간이다. 서피랑 99 계단을 따라 오르며 만나는 담백한 벽화들과 박경리의 어록, 고요한 마을 분위기, 그리고 서피랑 문학 벽 거리에서 김춘수시인의 시들. 동피랑에 비하여 덜 붐비고 쉬어갈 곳도 많지 않지만 서피랑에서는 왠지 통영의 과거에 좀 더 깊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서포루까지 가는 길은 하루 운동량을 채울 만큼 숨이 차지만 올라가서 시원하게 통영을 내려다보면 그 운동이 헛되지 않았음이 알게 된다.
동피랑과 서피랑을 오르다 보면, 예술과 역사가 스며 있는 통영의 일상 공간이 어느새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통영의 재래시장은 활기 그 자체다. 중앙시장과 서호시장에는 해산물은 물론이고, 통영식 충무김밥, 횟집 및 다찌 안주거리, 꿀빵, 생선구이 백반집들이 즐비하다. 정겨운 상인들의 말투와 바다 향 가득한 냄새가 시장에 가득하고 지나가면서 보이는 생선 가게들에선 살아 있는 생선들이 펄쩍 펄쩍 뛰고 있다.
시장 골목 안쪽에는 소박하지만 깊은 맛을 내는 식당들이 많다. 각종 TV 프로그램에 나왔다고 자랑하는 광고판도 여기저기 보인다. 생선구이 정식, 물메기탕, 멍게 성게 비빔밥 같은 메뉴는 지역 주민들이 단골로 찾는 집에서 맛보면 더욱 특별할 것이다. 이런 맛집은 대개 사람들이 많아서 내 경우는 한가한 식당에 들어가는 편이다. 그래도 맛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배가 고프면 그냥 시장 내 비교적 깨끗하면서 자리 있는 집에 가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동피랑에 오르면서는 강구안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중앙시장에서 간단히 시장을 본다. 거제분들의 말씀이 통영의 생선과 해산물이 더 싱싱하고 종류도 많고 저렴하다고 해서 통영 중앙시장에서 살아있는 생선이나 전복, 조개 등을 조금씩 산다. 매달 2일과 7일에는 중앙시장 근처에 통영오일장이 서는데 그때는 통영의 야채를 듬뿍 사 오기도 한다. 조금 피곤해지긴 하지만 정말 재미있다.
서피랑에 갈 때는 서호시장에서 장을 조금 보고 그 근처에서 식사를 한다. 우리는 대체로 서호시장 근처에 시락국이나 해산물로 만드는 요리가 맛있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는 편이나, 진짜 맛을 아시는 분들은 서호시장에 아침 일찍 가야 먹을 수 있는 시락국집이나 뚝배기집을 찾아가신다고 하니 한번 시도해 보시길....
## 그동안 시장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아쉽게도 찾지를 못했다. 추후 찾으면 올리기로 하고 지금은 글로만 읽어주시면 감사.
거제이야기 13 - 거제의 문화생활 (https://brunch.co.kr/@insungjung/62) 에서 이야기했듯이 통영국제음악당은 우리가 즐겨가는 곳이다.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멋진 음악당이다.
현대음악 작곡가인 통영 출신 윤이상을 기리는 이 통영국제음악당은 바다를 향해 열린 콘서트홀로, 매년 봄에는 '통영국제음악제'와 11월에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가 열린다. 통영국제음악제는 현대음악과 클래식을 아우르며, 세계 유수의 연주자들이 찾아오는 세계적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등용문이 되어, 음악도시 통영의 위상을 더욱 빛내고 있다.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임윤찬이나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첼리스트 한재민도 이 윤이상 콩쿠르에서 일등을 하였다.
음악당 자체도 마치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다. 통영 바다를 배경으로 한 유려한 곡선의 건물, 매표소 앞을 장식한 전혁림 화가의 만달라, 콘서트홀 내부의 천장과 음향 구조에는 정교한 음악적 배려가 스며 있다.
음악당을 둘러싼 해안 산책로와 자전거길도 인상적이다. 음악 감상 전에 조용히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바다와 섬, 공연장을 함께 바라보기 바란다. 아마 이 경험은 통영이 왜 '예술과 정서의 도시'라 불리는지를 증명해 줄 것이다.
전혁림은 통영 출신의 대표적인 서양화가다. 전혁림 미술관은 그의 작업실이었던 공간을 개조해 만든 곳으로, 그의 회화 작품뿐 아니라 통영의 색과 감성을 그대로 담아낸 공간이다. 국제음악당에 7시 프로그램에 가는 날이면 조금 일찍 집을 나서 전혁림 미술관을 들른다. 내가 좋아하는 코발트 색을 원 없이 넣고 그린 화려한 색상의 그림들은 마음까지 밝게 해 준다.
전혁림 미술관 옆에는 ‘봄날의 책방’이라는 귀엽고 아름다운 책방이 있다. 사진을 잘 안 찍는 분들도 이곳에서는 여기저기서 사진 찍고 싶어진다고 한다. 책방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도 가끔 모델이 되어 준다.
통영에는 이 외에도 갤러리 미작 등 작은 갤러리와 공방들이 많다. 인평동의 아트스페이스는 유명한 갤러리 카페로 멋진 장소에서 다양한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외 도자기, 나전칠기, 수공예품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매년 하는 것 같지는 않으나 통영 아트페어를 하는 해가 있으니 (최근 2024년에 했으나 2025년에는 아직 공고가 없다) 이곳 여행 계획이 있다면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특히 봉수골에서는 길을 걷다 보면 뜻밖의 골목 갤러리와 마주치기도 한다. 봉수골은 예술의 거리이자 봄에는 벚꽃이 터널처럼 이어져 산책길로 안성맞춤인 골목이다.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 ‘봉수골 벚꽃축제’가 열리면 지역 예술가들의 공연과 벚꽃길 야간 조명으로 한층 더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술을 잘 즐기지 못하는 편이라, 통영만의 독특한 주점 문화인 ‘다찌’를 깊이 있게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예전에는 술값만 내면 각종 해산물 안주가 코스처럼 푸짐하게 나왔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 규모가 조금 줄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다찌 식당에 갔을 때는 정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다리 회무침, 멍게 무침, 해물탕, 생선조림, 전까지… 생각할 수 있는 해산물 요리는 다 나오는 것 같았다. 맛도 하나같이 훌륭했다.
다찌 식당의 상차림은 화려하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소박하다. 몇 명이 함께 가야 그 정취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며 안주도 함께 나누고, 원한다면 옆 테이블과 인사를 주고받는 정겨운 분위기까지 느낄 수 있다. 요즘은 다찌 문화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곳은 단순히 음식을 많이 주는 식당이 아니라, 통영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과 삶의 방식, 그리고 느긋한 철학이 담긴 공간으로 남아있다. 혼자 여행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통영에 오면 한 번쯤 다찌를 경험해 보시길 권한다. 음식 그 이상의 정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통영다운 예술적인 밥상 문화이다.
통영 앞바다에는 수많은 섬들이 흩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욕지도와 한산도는 유람선을 타고 다녀오기 좋은 대표적인 섬 여행지다.
먼저 욕지도는 남쪽 한려수도에 자리한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이다. 해안선이 길고, 천왕봉이라는 산까지 있어 섬 자체가 하나의 작은 종합 풍경화 같다고 한다. 해안도로는 천천히 굽이치며 이어지고, 그 옆으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맑게 한다고. 욕지도까지는 배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며, 차를 싣고 들어갈 수도 있다. 섬에 도착하면 전기 자전거를 빌려 섬을 천천히 한 바퀴 도는 것도 좋다니 차 없이 같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 듯. 24km에 달하는 해안 일주도로를 달리며 욕지도의 산과 바다를 마음껏 누릴 수 있고, 출렁다리가 세 개나 있는 산책길도 멋진 풍경을 더해 준다고. 나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올가을에는 꼭 욕지도를 다녀오려 한다. 해녀들이 직접 잡은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는 즐거움도 기대된다.
한산도는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섬이다.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을 벌였던 바로 그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다. 올해 봄, 친구 부부와 함께 유람선을 타고 다녀왔는데, 장군의 전략과 정신을 되새기며 그 물길을 따라가는 느낌은 정말 특별했다. 우리는 차를 배에 싣고 들어가 섬을 한 바퀴 돌았고, 한산도에서 다리로 연결된 추봉도까지 이어진 길을 따라 봉암몽돌해수욕장에도 들렀다. 파도가 몽돌을 굴리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하고 평안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제승당까지 둘러보며, 자연과 역사가 함께 살아 있는 감동의 공간을 온전히 즐겼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통영항여객선터미널(거제에 계신 분들은 둔덕면 어구항에서도 승선 가능)에서 유람선을 타고 욕지도나 한산도에 다녀오길 추천한다.
통영은 크고 화려한 도시가 아니다. 하지만 오래 볼수록 깊이가 느껴지고, 걸을수록 정이 드는 도시다. 바다와 예술이 어우러지고, 역사와 일상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곳. 그 길 위에 서 있으면, 문득 나도 시 한 편을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 인다.
거제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자란 시인 유치환. 그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향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20여 년 동안 5천 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의 사랑을 담은 편지를 보냈던 통영중앙우체국 앞에는 그의 시 '행복'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그 시를 떠올리며, 이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련한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