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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논리적이지 못한 단어, 사랑

사랑에 빠지면 멍청해진다.

by 한찬희

나이가 점점 먹어가서일까, 요즘은 연애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참 많이 듣는다.

'남자친구가 마음에 안 들어... 헤어질 때가 됐나 봐.'
'전여친한테 연락이 오는데 어쩌지? 만나볼까?'
'결혼을 하고 싶은데 하고 싶지 않아.'
등등...
대부분 현 애인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다.

나라는 사람은 이들의 감정에 공감해 주는 역할은 아니다. 하라면 그리할 수도 있겠다만...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기에 현실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편인데, 첫 마디는 아주 간단하다.

"헤어져."
뭐 별 수 있나. 맘에 안 들면 헤어져야지.

어떤 대답을 할지는 안 들어봐도 안다.
"그건 싫어."


헤어지는 게 정답인 건 그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사랑하니까.

젠장. 이토록 어리석을 수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걸 합리화시키고 있다.

분명히 화가 나고, 밉고, 지금 당장이라도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하면서 헤어질 수 없단다.

이야기를 들어본다. 무슨 일이 있었고, 어느 부분에서 화가 났고, 뭐가 문제인지.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으로 신기하게도 공통적인 부분이 한 가지 있는데,

언제나 상대방이 잘못을 했다는 점.

진실인지 아닌지를 따지지는 않는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상대방이 분명히 잘못을 했는데 그런 사람을 왜 계속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다.


최근에 들은 고민 중 하나를 얘기해 보자면,

"남자친구가 나랑 헤어지고 내 욕을 그렇게 하고 다녔대. 그래놓고 나랑 다시 만나자고 하길래 받아줬어. 분명히 내 욕을 한 사람인데 나는 왜 아직도 그가 좋은 걸까...?"

"헤어진 상대를 안 좋게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과연 좋은 사람일까? 그런 사람을 네가 꼭 만나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

"나도 알지...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잘못된 사람인 걸 알아도 좋단다.
어찌 이리 멍청한 소리를 할 수 있는 거지.

이해가 가지 않는 나는, 질문을 던진다.
"그럼에도 그 사람이 좋은 이유는 뭐야?"

이 또한 어떤 대답을 할지 안 들어봐도 안다.

"지금은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의 좋은 모습으로 돌아올 것 같아."

좋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이해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애써 부정하려 하는 그 마음이 참 바보 같다.

좋았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아주 작은 희망이 있다면, 붙잡고 싶은 게 사람이니까. 그 희망은 본인의 바램에서 탄생한 헛된 희망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말이다.

아니, 애써 부정하려 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바보 같은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결론은,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만으로 본인이 잘못된 선택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사랑을 하면 원래의 내가 아니게 된다는 것.
다른 표현으로는, 진짜로 멍청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어딘가에 놀러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맛있는 걸 먹고 싶어 하는 사람도 아니고, 별 의욕 없는... 어찌 보면 참 재미없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연애를 시작하면 사람이 바뀐다. 수많은 곳을 놀러 다니고, 맛있는 것을 찾아다닌다.

어떻게 한순간에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본 결과, 논리적이지 않지만 이렇게밖에 결론을 못 내린다.

사랑하니까.

그녀를 위해서, 그녀가 더 좋아하기를 바라기에 나 자신이 변화한다.

상대방의 압박으로 인한 변화도 아니다. 진정으로 나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바뀐다는 것.

나뿐만 아니라 누구든 그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는 연애가 길어질 때 발생한다.
한 사람과 길게 연애한다는 뜻도 있지만,
쉬지 않고 연애를 한다는 뜻도 되겠다.

상대방과 의견을 맞춰가며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게 연애이지 않은가. 쉴 틈 없이 상대방과 맞추다 보면, 원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게 된다.

'내가 이걸 좋아했었나..?'
'나의 원래 성격은 뭐였지..?'
'혼자였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그렇기에 요즘 연애에 관한 고민을 들어줄 때는, 혼자 오래 지내보라는 답을 준다.

"혼자는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당연히 외롭겠지.
사람은 언제나 외롭기에 서로 안아줘야 하는 존재니까.

하지만 잠깐만 멈춰보자.

연애를 쉬지 않으면 본인을 돌아볼 시간이 없으니,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명확하게 알고 나서 다시 시작해 보자.

언제까지 멍청하게 사랑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모든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나 또한 멍청해져 본 적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

사랑이라는 말 하나로 '그럴 수 있지' 하며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며 살던 때가 있기 때문.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스스로 멍청한 선택을 한 나 자신이 바보 같고, 그때의 나 자신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 이 모든 건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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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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