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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봄이 와도 설레지 않겠다고 다짐했잖아."

by 수 윤

나는 로이킴 가수의 노래를 참 좋아한다.

'그때 헤어지면 돼', '내게 사랑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잘 지내자 우리', '우리 그만하자' 등등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실제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음 그것보다는 이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내가 이 사람을 짝사랑하면서

가장 많이 위로를 받은 노래는

바로 '봄이 와도'이다.


'봄이 와도' 노래 가사에는

'봄이 와도 설레지 않을 것이고'라는 가사가 있다.

2024년 2학기 종강을 하고

겨울이 찾아온 나에게

다음 해에 찾아올

'봄'이라는 단어는

기적보다는 체념,

가능성보다는 상처,

현실을 받아들이는 계절에 가까웠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다짐하기 시작했다.

.

.

"봄이 와도 설레지 말자."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다.

내가 썸(?)인가 하며 헷갈려할 때

(한창 매일 통화를 할 때 말이다.)

한 가지 약속을 했었다.

.

.

.

"여수 놀러 갈 건데, 같이 놀래?"

"그래! 좋아!"

.

.

.

종강을 했지만

나는 여의도 '더 현대'로

주 6일 8-10시간씩 출근하는

거의 직장인이었고

쉬는 날은 일주일에 하루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일본으로 3박 4일 여행도 가고,

대학교에서 2주 간의 미국 연수도 다녀왔기

때문에 2월은 나흘 정도를 제외하고

매일 출근했던 것 같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그 나흘 중 하루의 이야기이다.)


여수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나는 전 날 KTX를 타고

자취방인 전주로 가서

친구에게 내일 뭐 입고 갈지

조언을 구했다.

.

.

"야 나 내일 진짜 뭐 입지? 진짜 제발 응?"

"바지는 이거 입고, 위에는 이렇게 입으셈."

.

.

물론 그때는 연락이 잘 안 되던 시기가 맞다.

그렇기에 이번 만남이 기대가 됐었고,

둘이서 만나는 시간은

내겐 흔하지 않았던 정말 큰 기회였다.

.

.

.

그렇게 카페에서 너를 기다리다

네가 계단으로 올라왔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했다.

.

..

...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나보다 훨씬 가깝게 사는 네가

만나는 시간도 늦고,

헤어지는 시간도 이르고,

기차 시간에 늦을 뻔한 사실을 들으며,

져지를 입고 나온 모습을 봤을 때


너의 모든 것을 이해한

꾸민 나의 모습이 많이 초라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일까

이전에 한 약속이 아니었다면

너는 안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

.

'어젯밤에 나 혼자 생쇼를 했구나.'

.

.

여수에서 처음 너를 마주한 순간

그때 확신이 들었다.

'아 00 이는 날 안 좋아하는구나."

다시 한번 더 말하는데,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다.


물론 여수 데이트는

꽤나 순조로웠다.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케이블카도 타고, 사진도 찍고.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은

정말 정말 행복했다.

이건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목이 마르다는 말을 하고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물을 사서 건네준 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어색하지만 않았던.

겉으로 말을 하진 않았지만

어쩌면 속으로 둘 다 알고 있었던.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과

네가 날 밀어낸다는 것.

.

.

종강 후 1월 초부터 2월 말까지

혼자 끙끙대며 매일을 힘들어했다.


하지만.

정말 하지만..이라는 혼잣말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기대', '가능성', '희망'

이딴 단어들이 도대체 뭐라고.


하지만 여수를 다녀오고

나의 모든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아 난 뭘 기대했던 걸까.'

그리고 나는 얼마 가지 않고

금방 무너질 한 다짐을 했다.

.

.

.

따뜻한 계절인

봄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설레지 않을 거라고.

.

.

"봄이 와도

나 너한테 안 설렐 거야."




'금토일월화수금토일월수목금'


빠진 요일이 보이는가.

첫 번째 목요일은 2월 20일.

00 이가 서울로 놀러 와

친구들과 함께

롯데월드를 간 날이고,


화요일은 2월 25일.

그렇다.

00 이와 여수에서 만난 날이다.


내 오프인 날은 온통 너였고.

사실 출근하는 날도 온통 너 생각뿐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 매일 출근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 보러

쉬는 날마저 당일치기로 여수까지

왕복 10만 원 이상 쓰고 다녀왔다는 게

내 이야기지만

너를 참 바보같이 좋아했나 보다 싶다.


근데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면

그렇게 되더라.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랑을 했을 것이다.


이번 화는 내가 정말 많이 아팠던

25년 1-2월의 이야기이다.

엄청나게 압축한

가장 슬픈 이야기.



그렇게 다시 개강을 하게 되었지만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

.

나도 너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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