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짝사랑 끝에 연애에 골인했지만
설렘은 잠시 뒤로한 채
시험이 5일밖에 남지 않은 우리는
중간고사 준비에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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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중간고사 끝나고 고백했어야지!!!"
"그래도 받아줬을 거야?"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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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에 성공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선
설렘이라는 감정이 낯설었다.
설렘의 이면에는
멀리서 지켜만 보고 혼자 아파하는 것이 숨겨져 있다.
적어도 나에게 설렘이란 그런 개념이었다.
원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좋아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인생의 진리라고 여겼던 자연의 법칙이 깨져 버렸다.
내가 정말 연애를 하는 것이 맞는지 적응하기까지
꽤나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너와 손을 맞잡고 걸을 때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나인 것만 같았고
네가 내 어깨에 기대어 앉아 작은 숨소리를 내쉴 때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서로 웃고 떠들며 낭비하는 시간들이
정말이지 행복했다.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순간의 순간을 만들어나갔다.
데이트라곤 너의 집 앞 벤치에 앉아
서로의 어깨에 기대 말을 주고받으며
하루를 돌아보는 일밖엔 없었을지라도
그 일은 바쁘고 힘든 세상 속
자연스레 내 워라밸이 되었다.
"00 이는 좋겠네. 맨날 남친이 데려다줄 거 아냐."
"응!"
"아 짜증 나. 괜히 말했어."
위의 말은 내 여자친구인 00 이의 친구분이 00 이에게 했던 말이다.
왜 적었느냐고?
그냥, 글을 적다가 정말 문득 생각이 났다면 믿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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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에 몇 번 했어?"
"1, 3, 5번은 안 했어."
"오 맞아. 정답 2번과 4번 중에 있어."
"정말?? 나 2번 했는데."
"맞아! 정답 2번이야!!"
"진짜!? 오 예~~"
너는 내 손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캠퍼스 내라서 약간 당황을 한 나였지만
나도 같이 방방 뛰었다.
중간고사 보고 난 직후 서로 답을 맞혀봤는데
오빠와 답이 같다며 부모님께 기쁜 마음으로
통화하며 자랑하던 너의 모습이
세상 그 누구보다 예뻐 보였다.
웃을 때만큼은 스물한 살 대학생이 아니라
마치 어린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
행복한 표정을 짓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어린아이의 표정보다 더 순수했을 너였다.
서울에 사는 친구가 여자친구와 함께
내가 사는 곳으로 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수윤. 오늘 00 씨도 오시는 거지?"
"아니, 오늘 동아리 MT 다녀오는 날이라 피곤해서 못 올 듯."
"아아,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막걸리를 한 병 반 정도 넘게 마신
친구를 숙소로 보내고
혹여 냄새가 날까 봐 편의점에 들러 페브리즈를 샀다.
(친구와 헤어진 후에 만나기로 했었다.)
페브리즈를 사자마자 열심히 뿌려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냄새가 났었나 보다.
"으~ 술 냄새."
"아 술 냄새 나? 미안미안.. 페브리즈도 뿌렸는데."
"아 근데 많이는 안 나. 괜찮아."
(이때까지만 해도 냄새가 정말 많이 안 나는 줄 알았다.)
"그래도 00이 MT 다녀와서 피곤할 텐데 나왔네!?"
"응! 이젠 피곤한 거 다 괜찮아졌어~"
"그래~ 나와줘서 고마워!"
사실 위의 사건은 빌드업이다.
소설 전개를 잘 못 하는 나로선
어떻게 단편 소설을 써 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사실 이 브런치북이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이젠 의문이 들 정도다.)
종강을 하기 전에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종강총회일 것이다.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나에게 종강총회란
남자가 군대를 가는 것과 같다.
간호학과는 과제가 폭탄처럼 쏟아지는 기간이 존재한다.
그 기간이 끝나고 나서의 종강총회는
마치 종강을 한 듯이
모두가 행복감으로 젖어든 축제였다.
축제를 무사히 마친 나는
늘 그랬듯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00아, 뭐 해? 혹시 나올래?"
"아! 나 부모님이랑 통화 중~"
"헉, 그러면 나 끊어야 되는 거 아냐?"
"아냐! 바로 나갈게 잠시만!"
"어.. 어어..! 천천히 나와도 돼!"
통화를 끊은 지 2분도 채 안 됐지만
넌 허겁지겁 나오자마자 손인사를 건넸다.
"천천히 나와도 되는데.."
"아냐~"
"부모님께서 뭐라셔?"
"누구한테 전화 왔는지 알겠다는데~?"
"헉 정말? 근데 이렇게 나와도 괜찮아?"
"밖으로 나온 건 모를걸? 통화하러 간 줄 알아~"
"뭔가 좋으면서도 죄송한데..."
"혹시 술 냄새 나!?"
내가 물었다.
"응. 나는데?"
그녀가 대답했다.
"어쩔~ 이젠 어쩔 수 없어."
"음? 그럼 왜 물어보는 거야..?"
"좋아해."
"갑자기?"
"뭐가 갑자기야. 맨날 그랬는데."
"근데 있잖아. 나도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아."
"정말? 근데 갑자기? 왜?"
"저번에 술 냄새 많이 났거든.
근데 지금도 저번처럼 많이 나는데 그냥 좋아."
.
.
"나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
잠시 정적이 흘렀을까.
그녀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그것은 안도의 감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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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ㅁㅏ..."
"응?"
"고..ㅁ워"
"뭐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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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중간고사 본 지가 엊그제 같은데
기말고사를 열흘을 앞둔 즈음
우리의 시간도 어느덧 50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줄 거 있어."
"뭔데?"
"우리 내일 50일인 거 알아?"
"최근에 배사에서 날짜 본 것 같기도?
벌써 그렇게 됐나?"
"그니까 벌써 50일이야.
근데 내일 00 이도 00가고, 나도 서울 가니까..
그래서 별 건 아니고... 음 줘도 돼?"
"응?"
"50일을 맞아서 내가 손 편지를 썼어."
"헉 정말..? 아 근데 난 준비한 게 없는데..."
"괜찮아! 내가 쓰고 싶어서 쓴 거라서. 진짜 괜찮아."
"읽어줘도 돼?"
"응."
.
.
.
(그녀에게 편지를 읽어주었다.)
.
.
"사실, 맨날 편지만 쓰면 00 이가 읽길래,
이번에도 내 앞에서 읽을 걸 알아서
이번엔 내가 읽어주고 싶어서 그거에 맞게 썼어."
"아~ 나를 너무 잘 아네."
"그럼~"
"근데 이런 분위기에 할 말은 아닌 것 같긴 한데.."
"뭔데?"
"...."
"아냐 정말 말해줘도 괜찮아."
"음..."
"혹시 안 좋은 거야?"
"아니 아니, 안 좋은 건 아닌데.."
"편하게 말해줘도 정말 괜찮아."
덤덤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떨렸던 나였다.
"오빠를 좋아하는 건 맞거든?
근데,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가 다른 것 같아.
오빠는 날 너무 좋아해 주는 게 느껴지고,
사랑한다는 말도 해주는데
나는 아직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하겠어.."
너는 말을 하고 나선 고개를 푹 숙였다.
나도 고개를 푹 숙였지만
이내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 웃음은 아마도 안도의 웃음이었으리라
"00아."
"응..?"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고마워."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말을 해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솔직하게 말을 해준 거잖아. 정말 고마워."
나는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00 이가 어떻게 보면 내가 첫 연애잖아.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게 어려운 게 당연한 거야.
너무나 당연한 감정이라서 그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줘서 나는 그게 정말 고마워."
"미안해."
"아냐, 뭐가 미안해. 전혀 미안할 게 아니야.
대신 하나만 약속해 줘."
"뭔데?"
그제야 너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가로등에 비친 눈이 초롱초롱했다.
눈물이 날 것만도 같았지만 넌 울지 않았다.
"00 이가 나를 안 좋아해서 헤어지는 건 오케이야.
물론, 엄청 힘들어하겠지 나는.
근데 마음의 크기가 달라서 헤어지는 건 아닌 것 같아.
마음의 크기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이라
내가 00 이를 좋아하는 만큼 00 이도 충분히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닐까?"
"혹여 나에 대한 마음이 식거나, 소위 말해 권태기가 온다면
그때 꼭 나에게 말해줘. 우리 둘이서 함께 얘기해 가면서
천천히 극복해 보자. 이거 하나만 약속해 줘."
"그래줄 수 있지?"
"응."
"그래. 그럼 됐어. 정말 고마워."
"아냐, 내가 더 고마워."
"이제 슬슬 일어날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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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안아줘."
안아 달라고 하면 조용히 와서
포근히 안기는 네가
그렇게 귀여울 수 없다.
"좋아해.."
그녀가 말했다.
"나도."
내가 답했다.
"이제 사랑한다는 말도 아껴 써야겠다."
"그래."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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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