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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나도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아."

by 수 윤

오랜 짝사랑 끝에 연애에 골인했지만

설렘은 잠시 뒤로한 채

시험이 5일밖에 남지 않은 우리는

중간고사 준비에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

.

"아 중간고사 끝나고 고백했어야지!!!"

"그래도 받아줬을 거야?"

"당연하지!"

.

.

짝사랑에 성공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선

설렘이라는 감정이 낯설었다.

설렘의 이면에는

멀리서 지켜만 보고 혼자 아파하는 것이 숨겨져 있다.

적어도 나에게 설렘이란 그런 개념이었다.


원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좋아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인생의 진리라고 여겼던 자연의 법칙이 깨져 버렸다.

내가 정말 연애를 하는 것이 맞는지 적응하기까지

꽤나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너와 손을 맞잡고 걸을 때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나인 것만 같았고

네가 내 어깨에 기대어 앉아 작은 숨소리를 내쉴 때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서로 웃고 떠들며 낭비하는 시간들이

정말이지 행복했다.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순간의 순간을 만들어나갔다.


데이트라곤 너의 집 앞 벤치에 앉아

서로의 어깨에 기대 말을 주고받으며

하루를 돌아보는 일밖엔 없었을지라도

그 일은 바쁘고 힘든 세상 속

자연스레 내 워라밸이 되었다.



"00 이는 좋겠네. 맨날 남친이 데려다줄 거 아냐."

"응!"

"아 짜증 나. 괜히 말했어."


위의 말은 내 여자친구인 00 이의 친구분이 00 이에게 했던 말이다.

왜 적었느냐고?

그냥, 글을 적다가 정말 문득 생각이 났다면 믿겠는가.

.

.

"1번에 몇 번 했어?"

"1, 3, 5번은 안 했어."

"오 맞아. 정답 2번과 4번 중에 있어."

"정말?? 나 2번 했는데."

"맞아! 정답 2번이야!!"

"진짜!? 오 예~~"


너는 내 손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캠퍼스 내라서 약간 당황을 한 나였지만

나도 같이 방방 뛰었다.


중간고사 보고 난 직후 서로 답을 맞혀봤는데

오빠와 답이 같다며 부모님께 기쁜 마음으로

통화하며 자랑하던 너의 모습이

세상 그 누구보다 예뻐 보였다.

웃을 때만큼은 스물한 살 대학생이 아니라

마치 어린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

행복한 표정을 짓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어린아이의 표정보다 더 순수했을 너였다.




서울에 사는 친구가 여자친구와 함께

내가 사는 곳으로 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수윤. 오늘 00 씨도 오시는 거지?"

"아니, 오늘 동아리 MT 다녀오는 날이라 피곤해서 못 올 듯."

"아아,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막걸리를 한 병 반 정도 넘게 마신

친구를 숙소로 보내고

혹여 냄새가 날까 봐 편의점에 들러 페브리즈를 샀다.

(친구와 헤어진 후에 만나기로 했었다.)

페브리즈를 사자마자 열심히 뿌려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냄새가 났었나 보다.


"으~ 술 냄새."

"아 술 냄새 나? 미안미안.. 페브리즈도 뿌렸는데."

"아 근데 많이는 안 나. 괜찮아."

(이때까지만 해도 냄새가 정말 많이 안 나는 줄 알았다.)

"그래도 00이 MT 다녀와서 피곤할 텐데 나왔네!?"

"응! 이젠 피곤한 거 다 괜찮아졌어~"

"그래~ 나와줘서 고마워!"



사실 위의 사건은 빌드업이다.

소설 전개를 잘 못 하는 나로선

어떻게 단편 소설을 써 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사실 이 브런치북이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이젠 의문이 들 정도다.)


종강을 하기 전에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종강총회일 것이다.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나에게 종강총회란

남자가 군대를 가는 것과 같다.


간호학과는 과제가 폭탄처럼 쏟아지는 기간이 존재한다.

그 기간이 끝나고 나서의 종강총회는

마치 종강을 한 듯이

모두가 행복감으로 젖어든 축제였다.

축제를 무사히 마친 나는

늘 그랬듯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00아, 뭐 해? 혹시 나올래?"

"아! 나 부모님이랑 통화 중~"

"헉, 그러면 나 끊어야 되는 거 아냐?"

"아냐! 바로 나갈게 잠시만!"

"어.. 어어..! 천천히 나와도 돼!"


통화를 끊은 지 2분도 채 안 됐지만

넌 허겁지겁 나오자마자 손인사를 건넸다.


"천천히 나와도 되는데.."

"아냐~"

"부모님께서 뭐라셔?"

"누구한테 전화 왔는지 알겠다는데~?"

"헉 정말? 근데 이렇게 나와도 괜찮아?"

"밖으로 나온 건 모를걸? 통화하러 간 줄 알아~"

"뭔가 좋으면서도 죄송한데..."


"혹시 술 냄새 나!?"

내가 물었다.

"응. 나는데?"

그녀가 대답했다.

"어쩔~ 이젠 어쩔 수 없어."

"음? 그럼 왜 물어보는 거야..?"

"좋아해."

"갑자기?"

"뭐가 갑자기야. 맨날 그랬는데."

"근데 있잖아. 나도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아."

"정말? 근데 갑자기? 왜?"


"저번에 술 냄새 많이 났거든.

근데 지금도 저번처럼 많이 나는데 그냥 좋아."

.

.

"나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


잠시 정적이 흘렀을까.

그녀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그것은 안도의 감사였을 것이다.

.

.

"ㄱ..ㅁㅏ..."

"응?"

"고..ㅁ워"

"뭐라고?"

.

.

.

.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중간고사 본 지가 엊그제 같은데

기말고사를 열흘을 앞둔 즈음

우리의 시간도 어느덧 50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줄 거 있어."

"뭔데?"

"우리 내일 50일인 거 알아?"

"최근에 배사에서 날짜 본 것 같기도?

벌써 그렇게 됐나?"

"그니까 벌써 50일이야.

근데 내일 00 이도 00가고, 나도 서울 가니까..

그래서 별 건 아니고... 음 줘도 돼?"

"응?"


"50일을 맞아서 내가 손 편지를 썼어."

"헉 정말..? 아 근데 난 준비한 게 없는데..."

"괜찮아! 내가 쓰고 싶어서 쓴 거라서. 진짜 괜찮아."

"읽어줘도 돼?"

"응."

.

.

.

(그녀에게 편지를 읽어주었다.)

.

.

"사실, 맨날 편지만 쓰면 00 이가 읽길래,

이번에도 내 앞에서 읽을 걸 알아서

이번엔 내가 읽어주고 싶어서 그거에 맞게 썼어."

"아~ 나를 너무 잘 아네."

"그럼~"


"근데 이런 분위기에 할 말은 아닌 것 같긴 한데.."

"뭔데?"

"...."

"아냐 정말 말해줘도 괜찮아."

"음..."

"혹시 안 좋은 거야?"

"아니 아니, 안 좋은 건 아닌데.."

"편하게 말해줘도 정말 괜찮아."


덤덤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떨렸던 나였다.


"오빠를 좋아하는 건 맞거든?

근데,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가 다른 것 같아.

오빠는 날 너무 좋아해 주는 게 느껴지고,

사랑한다는 말도 해주는데

나는 아직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하겠어.."


너는 말을 하고 나선 고개를 푹 숙였다.

나도 고개를 푹 숙였지만

이내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 웃음은 아마도 안도의 웃음이었으리라


"00아."

"응..?"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고마워."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말을 해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솔직하게 말을 해준 거잖아. 정말 고마워."


나는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00 이가 어떻게 보면 내가 첫 연애잖아.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게 어려운 게 당연한 거야.


너무나 당연한 감정이라서 그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줘서 나는 그게 정말 고마워."


"미안해."

"아냐, 뭐가 미안해. 전혀 미안할 게 아니야.

대신 하나만 약속해 줘."

"뭔데?"

그제야 너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가로등에 비친 눈이 초롱초롱했다.

눈물이 날 것만도 같았지만 넌 울지 않았다.


"00 이가 나를 안 좋아해서 헤어지는 건 오케이야.

물론, 엄청 힘들어하겠지 나는.


근데 마음의 크기가 달라서 헤어지는 건 아닌 것 같아.

마음의 크기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이라

내가 00 이를 좋아하는 만큼 00 이도 충분히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닐까?"


"혹여 나에 대한 마음이 식거나, 소위 말해 권태기가 온다면

그때 꼭 나에게 말해줘. 우리 둘이서 함께 얘기해 가면서

천천히 극복해 보자. 이거 하나만 약속해 줘."


"그래줄 수 있지?"

"응."

"그래. 그럼 됐어. 정말 고마워."

"아냐, 내가 더 고마워."

"이제 슬슬 일어날까?"

"응!"

.

.

.

"나 안아줘."

안아 달라고 하면 조용히 와서

포근히 안기는 네가

그렇게 귀여울 수 없다.


"좋아해.."

그녀가 말했다.

"나도."

내가 답했다.


"이제 사랑한다는 말도 아껴 써야겠다."

"그래."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써야지."

.

.

.

.

.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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