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별을 보며 아빠를 추억합니다
엄마의 부뚜막 설거지가 끝나니 해도 없는 늦은 저녁시간이었다. 학교 갔다 오면 저녁 먹기 전 할아버지가 군불을 때고 들어 오실 때까지만 만화('베르사이유의 장미', '스머프', '빨간머리앤')를 볼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을 때나 먹고 난 후에는 할아버지가 보는 재미없는 뉴스를 뜨거운 아랫목을 피해서 말이다.
엄마 또한 하루의 유일한 낙으로 연속극을 보고 싶을 때면 건넌방에 누워있는 아빠에게 밤마실을 가자고 했다. 엄마가 같이 가자고 하는 걸 보면 아빠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고 아빠가 같이 갈 수 있다는 것은 동생과 나도 따라갈 수 있다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대문을 나와 변소 옆 염소우리를 지나면 현우 할머니네 밤나무 아래 고추장 담과 커다란 굴뚝을 지난다. 열 걸음쯤 되는 내리막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우리 동네에서 제일 부자인 윤희 할머니네 집이 나온다.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으로 들어서면 부엌과 안방 그리고 대청마루가 한눈에 보였다. 동네 사람들은 이곳을 ‘ㅇ수네 은행’이라고 할 만큼 돈을 꾸러 엄마가 자주 오는 곳이기도 했다. 첫차를 타러 나가는 정신없는 시간에 꼭 작은 언니는 “엄마 문제집 사야 해 만원만”하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이늠에 지지배야 미리미리 얘기해야지 아침부터 돈이 어디 있어”하며 설거지를 하다 말고 젖은 손을 바지에 대충 닦으며 윤희 할머니네 집으로 곧장 가서 돈을 빌려 언니에게 주곤 했었다.
하지만 그날은 마실이었다. 연속극이 끝나도록 엄마와 아빠는 집에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어른들 말소리 텔레비전 소리가 섞여 공중에 뜬 소리가 들릴 때 동생과 나는 병든 닭 마냥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ㅇ수 아빠 가자 애들 자네”하며 엄마는 동생을 안고 아빠는 나를 업었다.
아빠 등에 업힌 나는 아빠가 걸을 때마다 방아깨비 방아를 찧듯 머리가 끄덕거렸고 그 움직임에 잠이 깨고 잠에서 깨기 싫어 눈을 감으면 아빠 등에서 작은 진동이 느껴졌었다. 아빠는 노래를 하는 것 같았다. 그 흥얼거림이 내 귓속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 다 보았다. 바람은 잔잔했고 아빠의 등은 술 냄새가 나지 않는 포근함이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빠 목을 더 조르듯 잡으면 아빠는 나를 들썩 올려 다시 제대로 업었다.
귀뚜라미가 울고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밤하늘의 별이 유난히 반짝인다. 저 먼 곳 닿을 수 없는 별처럼 아빠라고 불러도 닿을 수 없는 아련함으로 나는 그날의 내가 되어 아빠 등에 업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