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 경운기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 “ㅇ수야!” 아빠였다. 대문 안으로 비툴거리며 반쯤 감긴 눈으로 엄마를 불렀다. 부엌에서부터 들고 있던 바가지를 팽개치고 언짢은 표정과 발걸음으로 아빠를 부축했다. 아빠는 건넌방으로 들어가 이불 위에 눕혔다. 술 냄새가 진동했다. 동생과 나는 서둘러 그리고 은밀히 안방으로 건너갔다. 티라노사우르스가 잠에서 깨어나 먹잇감을 찾으러 다니면 초식공룡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아침이 올 때까지 우리는 숨죽여야 했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결국 잠들었던 아빠가 일어나면 다툼이 되었다.
술 먹지 않는 아빠는 한없이 자상했다. 활짝 웃으면 작은 눈이 눈꺼풀에 덮여 선한 인상이었고 입가에 주름 세 겹과 하얀 이가 가지런했다. 그 이로 칡뿌리도 갈라주고 알밤도 까주었다. 아빠 손톱을 보여주며 ‘우렁 손톱이 손재주가 좋다’고 했다. 나는 그런 아빠 손톱을 닮고 싶었다.
어느 여름날에는 어린 애호박을 따서 된장찌개를 바글바글 끓이고 호박잎을 쪄서 강된장과 함께 저녁을 차려주었다. 아빠 손바닥 위에 호박잎을 펼쳐놓고 밥과 강된장을 올려 먹는 모습에 나도 따라 했다. 호박잎의 거칠한 느낌과 강된장, 호박잎에서 나오는 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초겨울에는 윷가락을 만들어 놀게 한다고 잘생긴 밤나무줄기를 잘라 낫으로 몇 번 툭툭 쳐낸다. 네 가락으로 쪼개진 나뭇가지 하나하나 아빠 무릎에 올려지면 매끄럽게 다듬어 윷가락으로 완성이 되었다. “이렇게 던지는 거야”하며 요령을 알려주고 내 손에 건네주었다. 밤나무 향과 죽지 않은 나무의 촉촉함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여러 날을 사용하면 나무는 잘 건조되어 부딪히는 소리가 맑았다. 어디에도 없는 우렁 손톱 아빠표 장난감으로 길고 긴 겨울밤 즐거운 놀잇감이 되었다.
아빠는 엄마에게도 자상했다. 엄마가 큰언니를 임신했을 때 대가족이 살아서 먹고 싶은 것도 쉽게 먹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엄마가 말한 것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식구들 몰래 숨겨놓고 모두가 잠든 밤에 엄마만 먹였다고 했다. 또 한 번은 족발을 먹고 싶어 하는 엄마 말에 추운 겨울 경운기를 타고 시내까지 나가서 족발을 사다 주기도 했지만.
아빠는 사람을 좋아했고 술을 좋아했다. 사람을 만나면 술을 마셨고 일이 힘들다고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엄마를 괴롭혔다. 싸움의 끝은 아빠가 지쳐서 잠이 들거나 엄마가 동네 할머니 집으로 피하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술 마신 아빠가 징글징글하다 했다.
아빠 음주가 잦아지면서 엄마의 생활력은 점점 강해졌고 아빠의 몸은 약해지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아빠는 돌아가셨다. 머리에 꽂은 흰 핀과 우리 곁을 떠난 아빠가 사무치게 미웠다.
징글징글하다고 했던 엄마도, 아빠를 외면하고 싶어 일찍 출가 한 큰언니도 모두 슬펐다. 집에서 삼일장을 치러졌다. 상주로 홀로 서 있는 오빠 어깨가 한없이 쓸쓸해 보였다. 엄마와 오빠는 평소에도 내가 남동생이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이야기를 가끔 했다. 정말 그랬다면 나도 오빠 옆에 서서 힘을 보태주었을 텐데.
상여가 나가는 날이었다. 다른 마을에서 상여가 나가는 것을 우연히 봤을 때는 그렇게 무서워했는데 우리 집 마당 한가운데 꽃상여가 놓여 있었다. 아빠도 그 안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모두 꽃상여 앞에 앉아 곡을 했다. 퉁퉁 부은 눈을 간신히 떠 고개를 드니 5월의 아침 햇살 아래 꽃상여가 눈부셨다. 아빠가 우리를 내려다보며 좋은 날 갈 수 있어서 덜 미안하다고 미소 짓는 것 같았다.
마을 하나를 지나 가족 장지에서 꽃상여와 아빠의 옷가지를 태우는 동안 관을 땅에 묻는다. 아빠가 평소 좋아했던 초록색 소주 한 병을 같이 묻어주었다. 아빠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49제까지 머리에 흰 리본을 하고 다녔다. 토요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아빠 산소를 찾았다. 자리를 덜 잡은 잔디를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주고 작은 풀 한 포기라도 일부러 찾아내 뽑았다. 무덤을 등지고 앉아 있으면 탁 트인 들판과 저 멀리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왔다. 평온했다.
어린 시절 나의 밝음 속에는 아빠가 술을 마시는 날에 대한 긴장과 불안이 컸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점점 사라졌다. 대신 그리움이 자리했다. 몇 해 동안은 매년 5월 개구리가 울면 가족들은 같이 울었다.
추석명절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끝낸 엄마 곁에 가족들이 모였다. 사위들은 한 팀이라도 된 듯 소파에 앉아 있고 딸들은 각자 편한 자리에 등을 기대거나 엄마 옆에 앉았다. 아이들은 안방을 오가며 총싸움이 한창이다.
“엄마 생각나?”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빠 이야기보따리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 네 자매는 이야기에 맞장구도 치고 각자 생각나는 에피소드를 꺼내기 바빴다. 그러다 갑자기 엄마 눈시울이 붉어지면 하나둘 눈물을 훔쳐내고 그런 모습에 또 마주 보고 웃는다. 우리는 울다 웃다를 반복했다. 우리들 이야기에 오빠는 지그시 눈을 감고 듣고 있었다. 우리는 아빠를 추억한다. 술 취한 아빠와 선한 미소의 아빠.
식구들은 약속이 있다 해서 오랜만에 나 홀로 집이다. 불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가에 앉아 있으니 바람이 시원하다. 젖은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니 기분이 상쾌하다. 아파트단지 밖 저 멀리 논에서부터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가 아주 또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