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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마중 Nov 08. 2024

솔잎과 온수

해 질 녘 경운기 소리와 군불이 그립습니다

해는 점점 짧아지고 학교 끝나기 무섭게 동생과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나무를 하러 뒷산에 갔다. 부엌에 마른 솔잎이 가득 일 때는 지게를 지고 나무만 하러 가고 솔잎이 거의 바닥이 날 때는 경운기로 이동한다. 그날은 솔잎을 많이 모아야 해서 동생과 나는 갈퀴를 챙겨 들고 경운기 탔다. 할아버지가 끄는 경운기는 아주 여유롭다. 천천히 달려 동네 뒷산.    

 

소나무 사이사이를 지나 산 중간정도 들어가 바닥에 마른 솔잎을 갈퀴로 모은다. 여기저기 긁은 솔잎이 수북하다. 한 손엔 갈퀴, 다른 한 손으로 솔잎을 한가득 끌어안고 경운기에 담는다. 붉은 볕 줄기가 나무 사이를 비집고 내 얼굴에 닿고 경운기에 솔잎이 산처럼 쌓였다. 할아버지는 솔잎이 떨어지지 않도록 밧줄로 듬성듬성 묶고 시동을 켠다. 벌써 해는 산 넘어 들어가는 중이다. 할아버지 경운기를 따라 동생과 나는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탈탈탈” 바람이 점점 차지고 코끝이 시리다.

 

대문 앞에 경운기가 도착하고 솔잎을 부엌으로 옮겨야 한다. 마당이며 토방에 솔잎이 조금씩 떨어진 것은  수수비로 쓸어야 한다. 건조한 날씨 탓에 먼지가 지붕 위까지 피어오른다. 바가지에 물을 담아 바닥에 툭툭 뿌려 쓸면 먼지가 조금은 사그라든다.      


마당에 널어 논 빨래를 탁탁 털어 대청마루에 대충 던져 놓고 할아버지 군불 때는 것을 도와준다. 아궁이 속 아침에 태우고 남은 재를 삼태기 담아주면 나는 밭에 가져다 뿌리거나 퇴비장에 버린다. 텅 빈 아궁이 속에 솔잎을 넣고 성냥개비를 무심한 듯 슬며시 ‘탁’ 치면 성냥 타는 냄새가 입속으로 확 들어온다. 노란 성냥 불씨를 솔잎 아래에 살포시 넣고 입김으로 “호호” 불면 불씨가 살아난다. 활활 타는 솔잎 위에 마른 장작을 얼기설기 넣고 불이 잘 붙도록 한동안 지켜본다. 젖은 나무를 태울 때는 매운 연기가 코와 입으로 들어가 컥컥거리기 일쑤였지만 건조한 날씨에 잘 마른 장작은 ‘타타타’ 맑은 소리를 내며 잘도 탄다.      


할아버지는 빨간 양동이에 물을 담아 솥 안에 가득 채운다. 솥뚜껑 문이 닫히는 소리와 장작 타는 소리가 가볍다. 부뚜막에 쌓인 먼지를 행주로 닦아주면 김이 모락락 피어오르고 솥과 솥뚜껑사이 김이 피죽 새어 나오기 시작하면 엄마가 돌아왔다. 그제야 부엌은 분주하고 활기가 넘친다.     

    

토방을 지나 마당 한쪽에 수돗물이 나오는 샘이 있다. 추운 겨울이나 여름에는 이곳에서 씻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바가지를 들고 나와 찬물이 담긴 세수 대야에 섞는다. 뜨거운 물을 조금 남겨 두고 손가락 하나를 세수 대야에 넣고 물의 온도를 체크한다. 미지근하면 기분 좋게 세수할 수 있다. 세수한 물은 버리지 않고 발까지 씻고 나면 세수 대야 주변에 땟물이 남는다. 손으로 대충 닦아내며 남은 뜨거운 물과 찬물을 다시 섞어서 발등에 뿌린다. 개운하다.  


지금처럼 저녁노을이 아름답고 아침볕에 가을낙엽들이 살랑거리며 떨어지는 모습에 그날의 추위 속 저녁풍경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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