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다시 고향으로
차 안에서 영무를 바라보는 여인은 영주였다. 노숙자 행색에 초췌할 대로 초췌해진 영무였지만 큰 키에 슬픈 눈을 가진 그를 영주는 똑똑히 알아봤다. 당장 차에서 내려 자초지종을 캐묻고 싶었지만, 영주는 차마 창문조차 열지 못했다. 17년 전, 아이의 초음파 사진이 들어있던 보랏빛 봉투와 함께 차가운 은행잎 위로 내동댕이쳐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끄러미 영무를 바라보던 영주는 영무가 들고 있는 푯말에 적힌 문장을 보며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I wanna go home. To my mother, Please!”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글자 아래, 작은 글씨로 쓰인 문장이 영무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Patient on kidney dialysis. Need kidney transplant. 저는 신장 투석을 받는 환자입니다. 신장이식이 필요합니다.”
창문을 내려 1달러 지폐 한 장을 건네는 운전자를 향해 영무는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어느새 신호는 초록으로 바뀌고 영주는 영무를 떠나갔다. 영무가 영주를 버리고 떠나던 그날처럼 차가운 바람이 거리를 할퀴었다.
노숙자들이 모여있는 텐트촌, 그중에서도 유독 초라해 보이는 작은 텐트 안에 영무가 누워있었다. 우기가 한창인 포틀랜드의 겨울은 내내 우중충한 비를 머금었고, 간간이 불어오는 거센 바람은 영무의 초라한 텐트를 공중으로 뽑아낼 듯 휘몰아쳤다. 우기의 차가운 습기는 영무의 피부 모든 세포를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텐트 안에는 희망 하나 없는 차가운 죽음의 공기만이 무겁게 영무를 지키고 있었다. 모든 걸 포기한 듯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영무는 생각했다.
‘죽어서 구천을 떠돈다 해도 고향 땅의 귀신이 되고 싶다. 아지랑이 피는 따뜻한 봄날 고향 땅에 피는 진달래를 바라볼 수 있다면 나 죽어도 슬프지 않으리. 영혼으로나마 가까이 부모님을 찾아뵙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볼 수 있다면 죽어도 행복할 수 있으리. 나는 무슨 죄로 인하여, 도대체 어찌하여 이 낯설고 차가운 땅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가. 이대로 이국땅의 서러운 귀신이 된다면 나는 죽어도 죽지 못하리. 살아서도 산 게 아니었고, 죽어도 편히 죽지 못하는 원통한 나의 신세여. 어딘가 신이 계신다면 부디 나의 이 기도를 들어 단 한 번의 기회를 주소서.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저에게 허락하소서!’
죽음인 듯 잠인 듯 모를 깊은 심연으로 빠져드는 영무를 깨우는 한 통의 메시지 알람이 도착했다. 유일하게 영무에게 남은 건 텐트와 더러운 옷가지들 그리고 혹시 모를 연락을 위해 유지해 온 휴대전화였다. 그에게 새로운 삶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은 병원이었다. 불법 이민자에게도 순서에 의해 신장이식의 기회를 주는 오리건주의 무상 의료혜택은 그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를 지금까지 버티게 했던 마지막 힘이기도 했다. 하지만 3년이 넘도록 순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순서를 거슬러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영무는 죽음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다.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영무의 눈에 생기가 차올랐다. 멀쩡한 사람처럼 상체를 일으킨 영무가 자그맣게 소리 내어 문자를 읽었다.
“A donor has come forward to give you a kidney. The biopsy showed that all the conditions were met. Please come to the hospital as soon as possible. 당신에게 신장을 이식해 줄 기증자가 나타났습니다. 조직 검사 결과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즉시 병원으로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기의 구름 떼를 비집고 나온 영롱한 햇살 한 줄기가 생명처럼 영무의 병실에 가 닿았다. 시커멓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영무의 얼굴은 오간 데 없었고, 어느새 영무의 얼굴엔 화색마저 감돌았다. 병상에 누워있는 영무를 향해 인도인 의사가 다가와 말했다.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기증하신 여자분의 신장이 마치 영무 씨의 신장인 것처럼 모든 게 잘 맞았어요. 덕분에 수술도 잘 끝났고 회복도 매우 빠른 편입니다. 보통 3주 정도 입원해서 경과를 살펴봐야 하지만 영무 씨는 2주 정도면 모두 회복될 걸로 보입니다. 이제 새로운 삶을 준비하셔야죠? 축하합니다. 영무 씨!”
“네, 기증자가 여자분이라고요? 제가 그분을 좀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저에게 새 생명을 주신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넬 기회는 주셔야죠. 그분을 꼭 좀 만나게 해 주세요. 선생님!”
인도인 의사는 실수라도 한 듯 놀라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떼며 서둘러 말했다.
“오 이런, 제가 방금 여자분이라고 말했나요? 기증자는 본인의 정보공개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여자라는 것도 말하면 안 되는데 너무 이례적인 일이라, 보통 환자보다 체구가 작은 여성의 신장을 남성에게 이식하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아무튼 그분을 만나실 수 없습니다. 여자분이라는 사실도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환자분은 이제 재활에 신경 쓰시면서 어서 퇴원할 생각만 하세요. 그럼 전 이만!”
사라지는 의사를 보며 영무는 의아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신장이식 순서까지는 1년이 넘게 걸릴 거라던 예상과 달리 갑자기 기증자가 나타난 것도 모자라 기증자가 여자라는 사실에 영무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동양인인 자신에게 천사처럼 나타나 신장을 기증하고 익명을 요구한 여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영무는 생기가 도는 자신의 몸을 만지며 그 여인의 영혼이 자신에게 깃들어있음을 느꼈다. 영무는 의사의 예상보다 더 빨리 회복했고 퇴원 절차를 밟고 있었다. 마지막 주의사항을 전달하던 인도인 의사가 봉투 하나를 영무에게 내밀며 말했다.
“영무 씨, 이건 기증자가 당신에게 남긴 돈입니다. 당신이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어서 빨리 돌아가길 바란다면서 이 수표를 당신에게 전해 달라고 했어요. 무슨 사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신은 분명 천사를 만났다는 거예요. 퇴원 축하합니다. 영무 씨. 저도 당신의 행운을 빌게요. Mr’ Lucky!”
악수를 마친 영무가 돌아서며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모든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불운과 아픔의 연속이었던 삶이 일순간 행운이 연이어지는 삶으로 바뀌어있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모든 건 분명 현실이었다. 거센 파도가 지난 바다는 그 어느 때보다 잔잔했다. 병원을 나온 영무는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걸었다. 겨울비도 이처럼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영무는 처음 깨달았다.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어 기쁘게 비를 맞으며 영무는 질문했다.
‘도대체 누가 나에게 이 아름다운 순간을 주었는가?’
영무의 몸에 흐르는 맑고 뜨거운 피가 심장을 관통하며 영무에게 속삭였다.
“오빠, 나야. 권영주!”
1년 후 2024년, 지난 2009년, 28세의 나이로 한국을 떠난 영무는 43세의 중년이 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15년 전, 영주를 찾아 미국으로 떠난 영무는 15년 후 다시 영주의 행방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새롭게 얻은 삶에도 늘 고통은 따랐지만 이제 두려움은 없었다. 한국에 들어와 몸을 추스른 영무는 제일 먼저 영주의 집으로 향했다. 서슬 퍼렇던 영주의 부모님도 세월을 비켜 가진 못한 양 늙고 쓸쓸해 보였다. 영무는 모든 예를 갖춰 영주의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엎드린 채 말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철이 없어 그땐 몰랐습니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영주와 아이를 지켰어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보낸 15년의 세월이 저를 깨닫게 했습니다. 이제라도 모든 용서를 빌고 참회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다 죽어가는 저에게 영주는 오히려 용서와 함께 새 삶을 선물했습니다. 영주가 있는 곳을 알려 주십시오. 단 한 번만이라도 꼭 만나서 사죄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미 한 번 죽은 몸입니다. 제 남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영주에게 용서를 빌겠습니다. 제 삶이 다하는 날까지 빌고 또 빌겠습니다.”
영무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 엎드려 우는 영무의 눈물이 카펫을 물들였다. 가만히 바라보던 영주 아버지가 무릎을 꿇어 영무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에게 모질게 했던 나의 잘못도 크네. 자네, 영주 찾아 미국 건너가서 고생한 거 나도 다 아네. 어서 일어나게. 영주도 자네를 기다리고 있어. 우리랑 같이 영주한테 가세.”
영무가 깜짝 놀라 영주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영주가 저를 기다리고 있다고요? 그럼 영주가 한국에 있다는 말입니까?”
“응, 그래. 일단 같이 가세. 영주한테 가서 내 모든 얘기를 해 줌세.”
영주의 부모님과 영무가 향한 곳은 깊은 산속에 있는 작은 절이었다. 언덕 위에 있는 절에 오르자 아랫녘 사람들의 세상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겨울바람이 “쐐”하고 휘몰아칠 때마다 풍경소리가 산사에 울려 퍼졌다.
“댕그랑, 댕그랑, 댕댕댕~~~”
영무의 출현을 경계하듯 바람이 점점 거세게 불어 풍경은 더욱 요란한 소리를 냈다. 풍경소리와 함께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영무의 달팽이관을 자극했다. 영무가 휘청거렸다. 이끌리듯 들어선 절 입구의 법당엔 지장전(地藏殿)이라는 현판이 영무를 노려보고 있었다. 향냄새가 훅하고 들어와 영무의 정신을 깨웠다. 인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법당 안을 서성이던 영주 엄마가 어느 한 곳을 향해 다가갔다.
“영주야, 영무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