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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사라진 신부

2장. 불법 이민자 되어

by 천상작가 해원 Jan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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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무 씨, 우리 결혼해요.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들어 드릴게요. 꿈에 그리던 영주권도 따고 당당하게 미국의 상류사회로 진출하자고요. 당신만 저를 받아준다면 저는 당신을 위해 지옥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수 있어요. 영무 씨, 사랑해요!”     


은칠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영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난번 생일파티를 함께 한 이후로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영무는 은칠의 능력을 믿고 사업확장을 계속해 나갔고, 채 6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워싱턴주 3개의 편의점을 추가로 인수했다. 그동안 은칠은 갖가지 이벤트를 마련해 영무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워싱턴주 2호점을 인수한 날도 은칠은 영무를 초대했다. 파티가 끝나자 영무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여느 때처럼 은칠에게 다가가 가볍게 포옹으로 인사했다. 하지만 은칠의 눈빛은 영무를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영무가 인사를 마치고 돌아선 순간, 은칠이 등 뒤에서 영무를 껴안았다. 흠칫 놀란 영무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 은칠의 깍지 낀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잠시의 고요가 흐른 뒤 흥분된 은칠의 숨소리가 영무의 귀에 야트막하게 들렸다. 은칠은 떨리는 목소리로 영무의 귀에 속삭였다.     


“영무 씨, 오늘 집에 안 가면 안 돼요? 저 너무 외로워요. 오늘밤만 제 곁에 있어 주세요. 네?”     


예기치 못한 도발에 영무가 주춤거리는 사이, 은칠은 깍지 낀 손을 풀어 영무를 마주했다. 새초롬한 표정의 은칠이 입술을 앙다문 채 간절한 눈빛으로 영무의 신호를 기다렸다. 영무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경계의 눈빛이 사라졌다. 영무도 맞장구치듯 은칠을 바라봤다. 그 순간, 은칠의 입술이 영무의 입술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다. 은칠의 외로움, 그건 영무에게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은칠의 외로움에 비하면 영무의 외로움은 사무치는 외로움이었다.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두 남녀에게 외로움은 마치 극이 다른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겼다. 이윽고 외로움은 거센 불길이 되어 이국땅의 긴 여름밤을 사르고 또 살랐다.     


그 후로 다섯 달이 지나고 은칠이 갑작스레 영무에게 결혼을 제안해 온 것이다. 영무가 지난 생각에서 깨어나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은칠에게 말했다.     


“은칠 씨, 잠깐만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전 그냥….”     


은칠이 영무의 입을 검지손가락으로 막으며 말을 이었다.


“쉿! 대답은 천천히 해도 돼요. 저도 제가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알아요. 두 아이까지 딸린 이혼녀 주제에 이런 제안한다는 거 어이없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전 한시라도 빨리 영무 씨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고 싶어요. 영무 씨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전 영무 씨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영주권만 받으면 한국에 있는 그리운 부모님도 찾아뵐 수 있고 또 저 국경 너머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다닐 수도 있잖아요. 저와 결혼이 정 내키지 않는다면 그냥 혼인 신고만 해도 전 괜찮아요. 그렇게 해서 영무 씨가 영주권과 자유를 얻는다면 전 그걸로 만족해요. 진심이에요 영무 씨!”     


간절한 은칠의 진심에 영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영무의 마음도 어느새 은칠을 향해 기울어 가고 있었다.     




“결혼식은 7월 7일로 하자. 자기랑 나랑 생일이 결혼기념일이 되는 거지. 너무 근사하고 의미 있지 않아? 자기 생각은 어때?”     


스스로 기특하다는 듯 영무가 싱글거리며 말하자 화답하듯 벙글거리며 은칠이 대답했다.     


“너무 멋진 생각이다. 역시 자기는 천재야. 어디에서 이런 보물이 굴러들어 왔을까. 나 아무래도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거 같아. 사실 난 지금 당장 결혼하고 싶지만 자기 뜻에 따를게. 그때까지 꾹 참아야지 뭐, 하하. 사랑해. 자기야!”     


결혼식 날짜가 정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은칠은 영무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자기야, 아니 사장님, 우리도 이제 온라인 판매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 아이템 중에 가격 경쟁력 있고 인기 많은 상품만 골라서 시작해 보자. 내가 전부터 온라인 쇼핑몰에 관심이 많아서 틈틈이 공부한 게 있거든. 그리고 나 요즘 느낌이 너무 좋아. 왠지 대박이 날 거 같단 말이야. 자기도 여자의 직감 알지? 날 한 번 믿어 봐!”      


은칠의 제안에 흥미를 느낀 영무는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기로 했다. 오프라인만으로는 사업확장에 한계가 있다는 걸 영무도 절감하고 있었다. 영무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 나오는 은칠의 재능에 감탄했다. 모든 일이 순풍에 돛을 단 듯 순조로웠다. 지나온 미국에서의 10년을 돌이켜보며 영무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민 생활 10년, 그중 불법 이민자로 6년, 이 고독하고 힘든 세월이 나의 죄를 모두 씻어주었나 보다. 은칠이처럼 저렇게 예쁘고 똑똑한 여자가 사랑스러운 아이 둘을 데리고 내 앞에 나타나다니, 은칠의 아이들을 영주와 내가 지운 그 아이라 생각하고 내 아이처럼 최선을 다해 키울 거야. 그리고 은칠이 눈에서 눈물 나지 않게 최선을 다할 거야. 그게 나의 여죄를 씻는 길이야. 그리고 다시는 어리석은 죄로 인해 고통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해.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가진 이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죽는 날까지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은칠과 함께 그려 갈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영무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의 희미한 미소를 본 은칠이 영무에게 말했다.      


“자기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아 참, 그리고 우리 함께 살 집 말이야. 나는 지금 사는 집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 아이들이랑 이 집에 정도 많이 들었고. 제일 좋은 건 학군이야. 이 도시에서 이만한 학군 찾기 힘들거든. 그래서 말인데, 이 집을 샀으면 좋겠어. 집주인한테 물어봤더니 팔 용의가 있대. 내가 산다면 시세보다 좀 더 싸게 팔겠다고, 80만 불이면 될 거 같아. 마침 월세 만기도 되어가고 말이야. 우리 결혼식 날짜랑 만기도 비슷해. 참 신기하지 않아?”     


“그래? 사실 나도 그 집 너무나 마음에 들어. 교통 좋고, 조용하고, 이웃들도 친절하고. 그렇지 않아도 나 집 사려고 알아보는 중이었어. 그동안 돈도 다 마련해 놨고. 나도 이제 이 좁아터진 스튜디오 생활 진절머리가 나. 정원에 나무며 꽃이며 가꾸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 그럼 집 계약하는 문제는 자기가 다 알아서 처리해 줘. 내가 사업하랴, 결혼 준비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야.”     




7월 7일,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푸르렀으며 햇살은 그 어떤 보석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영롱하게 빛났다. 눈부시게 하얀 턱시도를 차려입은 영무의 환한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영무의 한껏 부푼 설렘을 거울마저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화려하게 장식한 웨딩카를 몰고 영무는 결혼식이 열릴 교회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거리와 아름다운 풍경이 그를 더욱 들뜨게 했다. 교회에 도착한 영무는 주머니 속에 든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식장으로 들어갔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들어선 식장에는 축하의 흥분이 아닌 불길한 웅성거림이 들렸다. 잠시 후 긴장 가득한 얼굴로 여자 한 명이 다가왔다. 두 손을 모아 영무의 귀에 대고 그녀가 말했다.     


“신부가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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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것으로 2장을 모두 마칩니다. 다음 화부터는 3장 <다시 고향으로>를 연재하겠습니다. 

졸필인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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