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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도은칠(七)과 7달러

3장. 다시 고향으로

by 천상작가 해원 Jan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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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요? 신부가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결혼식장을 두리번거리는 영무에게 한 여인이 덧붙여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부는 사라진 게 아니라 식장에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대기실에 나타나야 할 시간이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다고요. 혹 다른 연락 못 받으셨어요?”     


영무가 황급하게 전화기를 꺼내 은칠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은칠이 아니라 안내 음성이었다.      


“This number is not in service. Please check the number and try your call again. 이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확인 후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몇 번을 확인하고 다시 걸어도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영무의 뒷덜미를 강하게 후려쳤다. 무슨 피치 못할 사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전화번호가 없어졌을 리는 없지 않은가. 뭐가 잘 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음을 영무는 직감했다. 꽃과 리본, 각종 장식물로 화려하게 장식된 웨딩카를 몰고 영무는 은칠의 집을 향해 세차게 페달을 밟았다. 차가 떠난 자리에는 매달려 있던 빈 깡통 소리만 남아 요란한 소음을 만들고 있었다.      


“까강까강~깡까그랑~~~”    




‘하·늘·이·무·너·져·내·린·다!’     


아버지의 공장이 잿더미가 된 날도, 그 공장의 화재보험이 이미 만료되어 그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날도, 대궐 같은 집을 떠나 허름한 셋방으로 이사한 날도, 영주 엄마에게 뺨을 맞았던 날도, 영주에게 임신 사실을 들었던 날도, 억울한 누명으로 정비소에서 잘려 불법 이민자가 된 날도, 한 가닥 희망이었던 씨에떼의 불륜을 목격한 날도, 사랑하는 세븐의 주검을 마주한 날도 이보다 더하진 않았다. 영무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오직 ‘죽음’이라는 단어 하나였다. 영무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분노에 차 소리쳤다.     


“지금 내 집에서 뭐 하는 거야?”     


놀란 눈빛으로 이삿짐을 내려놓으며 얼굴이 하얀 백인이 더 하얘진 얼굴로 대답했다.     


“당신 집이라고요? 이 집은 지난 40년간 단 한 번도 내 집이 아닌 적이 없어요. 전 여기서 태어나 자랐는걸요. 제가 잠깐 캘리포니아에서 근무하는 동안 한국인에게 집을 임대하긴 했지만, 이 집이 당신 집이라니, 무슨 심각한 오해가 있는 거 같습니다.”     


“내가 이 집을 산 사람이라고. 계약서도 있어 여기. 그러니까 그 한국 여자 어디 있어? 이건 내 집이라고.”     


영무가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영문을 알지 못하는 백인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러시면 911에 신고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한국 여자라니요? 저는 한국 남자분과 계약했습니다. 정말 멋쟁이 신사분이었어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자기 아내와 아이들이 머무를 방이 필요하다면서 이 집을 꼭 쓰고 싶다고 했어요. 자기 집처럼 잘 관리하겠다고 신신당부를 하길래 제가 임대료도 깎아줬어요. 혹 그 한국 여자분이 그분의 아내를 말하는 건가요? 정말 깔끔하고 똑똑한 분이었어요. 참, 그리고 그 여자분 제가 아는 회계 법인에서 서류 보조 업무를 한다고 들었어요. 필요하시다면 그 회계 법인 전화번호 알려드릴게요. 찾아가 보세요.”     


회계라는 말을 듣자 영무의 눈빛에 새로운 불안이 감돌았다. 영무는 온라인 사업을 위해 은칠에게 모든 금융거래를 일임하고 있었다. 전화번호를 적고 있는 백인을 뒤로한 채 영무는 급히 차로 뛰어가 휴대전화의 앱을 열었다. 모든 앱을 열어본 영무는 순간 깨달았다.     


‘집을 잃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이 인간이 내 모든 걸 빼앗아 달아난 게 분명해. 모질게 살면서도 잊지 않고 간직해 온 나의 희망과 꿈, 그 모든 걸 가지고 사라졌어. 어쩌면 이렇게 철저히 당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야. 모든 게 순조로울 땐 항상 최악을 생각하라는 아버지의 말이 틀리지 않았어. 그 누구도 믿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흑흑!’     


영무가 열어본 모든 은행 계좌의 잔고는 7달러였다. 도은칠, 그녀가 남긴 마지막 양심은 7달러였다. 영무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오직 두 개였다. “살인”, “자살”, 그녀를 죽이거나 자신이 죽거나 죽음이 아니면 이 일은 도무지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과거를 떠올리며 영무는 생각했다.     


‘잃어버린다는 것, 상실, 삶은 도대체 얼마나 잃어야 끝나는 게임인가. 돈, 마음, 사랑, 부모를 잃고 결국 나 자신까지도 모조리 잃어버려야 끝나는 게 삶이라면 왜 삶은 나에게 존재하는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걸. 도대체 왜? 생명이 그렇게 소중한 거라면, 사랑이 그렇게 소중한 거라면 왜 돈 때문에 나는 괴로워하는가? 그동안 모든 걸 잃어봤으면서도 왜 유독 은칠의 도주에 내 마음은 죽음을 향하고 있는가? 다른 모든 상실에도 나는 줄곧 삶을 노래했건만, 돈과 사랑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꿈과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지금 더는 견딜 힘이 없다. 어차피 죽어야 끝나는 괴로움이라면 나 기꺼이 죽으리라!’     


모든 걸 포기했다는 듯 영무가 돌아섰다. 영무의 하늘이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목숨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라는 듯 여러 번의 자살 시도에도 영무는 죽지 못했다. 영무에게 남은 건 결제되지 않은 물건 대금뿐이었다. 대금결제를 하지 못하는 영무의 모든 편의점엔 물건이 공급될 리 없었다. 믿었던 직원들마저 모두 등을 돌렸다. 영무에게 남은 건 단 하나, 불법 이민자라는 딱지뿐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 술에 잔뜩 취한 노숙자 영무가 덕지덕지 더러운 음식물을 묻힌 옷을 입고 병원에 들어섰다. 영무는 술과 마리화나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병원 응급실에 들어선 영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Help me, Help me, sir! Please, save me sir! Give ma a kidney. I have money here, please, sir!”                


까무잡잡한 얼굴에 인도인으로 보이는 의사의 가운을 움켜쥐며 영무가 소리쳤다. 이미 눈은 초점을 잃어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엄마, 나 여기서 죽기 싫어! 미안해 엄마, 내가 잘못했어. 나 좀 데려가 줘, 응. 잘못했어요, 엄마. 나 신장 좀 줘, 신장 한쪽만 떼주라고. 이러다 나 진짜 죽어요!” (1화 프롤로그 장면)     




“영주야, 미안해. 날 용서해 줘. 내가 너에게 죽을죄를 지었어. 이게 다 너와 그 아이를 지키지 못한 벌인 줄 나도 알아. 하지만 영주야. 신장 하나만, 제발 신장 하나만 떼어 줘. 나 여기서 이대로 죽긴 싫어. 이대론 죽어도 죽는 게 아니라고. 나 죽더라도 한국으로 돌아가서 죽을래. 영주권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여긴 너무 춥고 외로워, 말도 잘 안 통한다고. 제발 날 용서해 줘, 제발 나 좀 살려 달라고. 영주야!”     


꿈이었다. 영무는 점점 희미해져 가는 영주를 붙잡으며 온몸에 링거 주사 바늘을 뜯어냈다. 저승의 강에서 이승으로 돌아오는 듯 숨을 헐떡이며 영무가 흐느꼈다.     


“미안해, 영주야!”     




도은칠이 영무의 모든 재산을 훔쳐 달아나고 얼마 가지 않아 영무는 파산했다. 다시 일당 노동자가 되어 식당을 전전하던 영무는 결국 상실의 커다란 아픔을 견디지 못했다. 잦은 술과 흡연은 그의 몸을 망가뜨렸다. 급성 황달로 시작된 영무의 신장에 문제가 생기자 투석 없이는 채 몇 달도 살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모든 걸 잃은 그는 결국 거리의 부랑자가 되었다. 머무를 곳이 없다는 것, 밥 한 끼 구할 돈이 없다는 것이 어떤 건지, 영무는 차라리 죽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고 있었다. 영무의 손에 들려 있는 푯말이 그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었다.     

“I wanna go home. To my mother, Please!”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의 신호등 아래, 작은 깡통과 푯말을 든 영무가 구걸하고 있었다. 신호에 걸린 차들이 간간이 문을 열어 지폐와 동전을 적선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하는 영무의 눈에는 서러운 눈물이 한가득 맺혔다. 영무는 생각했다.     


‘신호등에 선 모든 차 속 사람들은 초록을 기다린다. 하지만, 노숙자인 나는 빨강을 기다린다. 초록에는 차들이 지나쳐 갈 뿐 돈을 주지 않는다. 왜 나만은 초록이 아닌 빨강을 기다리는가? 아 기구한 운명이여!’     


그 순간, 초록을 기다리는 차 안에서 한 여인이 영무를 가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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