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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Mar 30. 2024

농촌의 봄은 똥내와 함께 온다

거름이 두 무더기

퇴근길 집 앞을 밝혀주는 저 형광빛과 거무튀튀한 거름더미를 보라. 지난주 왔던가 지지난주 왔던가. 아 거름이 많기도 하다.


남들은 밭도 다 갈고 감자도 다 심던데 주말 농부는 마음만 바쁘고 발만 동동거린다. 저 거름을 푹 숙성을 시켜 내년에 뿌리면 좋겠다. 닭똥, 돼지똥, 소똥 똥이 반겨주는 퇴근길 묵직한 마음만 품고 쌩 지나갔다. 푹 자고 다음날 쌩 지나가며 출근이다. 나는 출근자니까.


농촌의 봄은 똥내와 함께 온다.
평화로운 겨울은 갔다.

 

올해는 감자를 한 고랑만 심자고 했는데 과연? 가게 옆 구둣방 사장님이 감자를 눈까지 다 따서 한 박스주셨다. 일복은 없으면 좋은데 일이 박스로 찾아오는 우리 부부. 한 고랑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냥 밭에 감자만 심으면 좋겠다. 규모의 경제 좋다. 일도 한 번에 하고 끝내면 좋겠다. 남편에게 그러자니 다 심어서 어쩔 것인가 한다. 강원도엔 감자가 매년 풍년이라 감자 수확철이 되면 너도 나도 박스 떼기로 나누어 먹는다. 언니도 농사를 짓고, 아버지도 농사를 짓고, 시댁도 농사짓는 친척집에서 박스로 가져다 먹으니 나누어 먹을 곳도 마땅찮다. 팔아야 하는데 초보 농부는 팔 줄을 모른다. 농사 지을 줄만 아는 바보 농부.


밭떼기 전문 농사꾼들은 봄부터 버스를 타고 와 일꾼들을 쫙 풀어놓는다. 하루는 감자를 심고 감자 수확철이 끝나면 또 버스를 타고 온 일꾼들이 무를 심는다. 규모의 경제에 밀리는 농사는 애초에 글러먹었다.  


300평 너른 밭 반을 나눠 반은 고추를 심고 반은 생강을 심는댔는데 감자도 심게 생겼다. 호박이 비싸니 호박도 심어야겠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오이도 심어야겠고, 파 모종이 눈에 띄니 파도 심을 테다. 지난해 하우스 파이프로 터널도 예쁘게 만들어 놨으니 참외도 몇 개 심어야지. 방울 토마토도 몇 개는 심어야 따먹지. 시금치도 씨만 뿌리면 솔솔 나오니 시금치도 심고, 텃밭에 쌈채소가 빠질 수 없으니 몇 가지 심어야지.여름에서 가을까지 간식으로 옥수수를 빼놓으면 섭하다. 겨울 대비 가을 무, 배추를 안 심을 수 없으니 그것도. 주말 농부의 먹는 욕심이란 끝이 없다. 일복이 많은 게 아니라 먹보 농부다.


남편은 한술 더 뜬다. 일요일에 사과 나무를 두 그루 얻으러 간단다. 작년에 받아온 사과나무는 가뭄에 말라 죽었다. 심는 걸 어지간히도 좋아하는 남편 농부는 감나무도 심고 싶다고 한다.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못말린다.



심으려면 거저 심나. 거름을 뿌려야지. 20kg 번쩍번쩍 들고 나르는 장정이 셋이니 어찌어찌 되겠지. (아빠보다 키 큰 아들들은 죄다 장정 취급이다.) 몇 년 농사 경력으로 외발 수레 끄는 일도 이제는 제법 요령이 늘었다.  힘든 일은 죄다 신랑 몫이고 겨우 모종을 심거나 씨 뿌리는 게 다인데 나도 마음만은 전문 농사꾼 못지 않다. 아! 일하는 계절 봄이다. 이래 봬도 나는 4년 차 주말에만 일하는 농사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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