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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Apr 16. 2024

검정 비닐을 제거하며


지난해 깨 모종이 남아 밭 옆의 빈 땅을 조금 빌렸다. 퇴비만 약간 하고 비닐을 씌우고 깻모를 심었다. 자리가 남아 옥수수도 몇 알갱이 더 뿌렸다. 가을 옥수수도 맛있다나?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데 심다 보면 하나 더, 하나만 더 하며 심는 작물의  종류와 수가 늘어난다. 밭이 늘면 어쩌자는 것인가. 사람의 노동력이란 한계가 있어서 경작지가 넓어지면 다 거두지 못한다. 주말 농부의 관리 부실이 뻔히 보이지만 봄철이면 꿈을 꾸듯 욕심을 부린다. 조금만 심어 알뜰히 수확하자 우리. 농부 아빠야, 일하다 늙는다.


가을을 거쳐 겨울을 지나 봄이 되도록 말라비틀어진 옥수숫대가 그대로 쓰러져 비닐과 한 몸이 되어 있었다.  깜장 비닐은 흙속에 파묻히고 마른 잡초와 농작물 뿌리까지 뒤엉켜 있다.  괭이, 삽, 호미를 들고 가 파헤쳐가며 검정 비닐을 제거했다. 봄바람에 날아가는 작은 비닐까지 주워가며 본래의 흙으로 되돌려 놓는다.


흙덩이가 비닐에서 떨어지며 흙먼지가 날린다. 저 흙 속에 몸에 좋은 미생물이 많이 들어 있으면 좋겠다. 건강에 좋으라고 쑥쑥 들이마시지만 미세먼지 먹는 듯 찜찜한 기분이다. 흩날리는 뿌연 먼지를 피해 가며 거대한 옥수수 뿌리와 비닐을 분리시키려 괭이로 멀찌감치 서서 때린다. 올해 옥수수를 심을 땐 비닐을 씌우지 말자고 해야겠다.  


짧은 작업 시간을 들여 한 해 밭으로 쓰던 자그마한 땅을 자연의 모습으로 돌려놓았다. 올해에는 농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메마른 땅에서 들풀이 무성하게 자랄 테다. 이 너른 들에 먹을거리가 사람의 수고로움 없이도  쑥쑥 자라면 좋을 텐데.




영농 폐기물 검정 비닐이 세 봉지 나왔다. 영농 부산물, 폐기물은 태우면 안 된다. 요즘은 논두렁 밭두렁에 불 놓으면 큰일 난다. 세찬 봄바람에 불씨가 날아갈 수 있다. 봄철 큰 불이 자주 나니 산 중 우리 집 앞에도 산불 감시 차량이 수시로 다닌다.


시골에 오면 불멍을 매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밖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을 놓고 매일 고기를 구워 먹을 줄 알았건만. 감시자의 눈길을 피할 길이 없는 우리는 전기 불판을 마당에 꺼내놓고 우아하게 고기를 구워 먹는다.  상상했던 시골 살이와 현실 사이에는 많은 간극이 존재한다.


비닐만 해도 그렇다. 본래는 유기농, 무농약으로, 환경도 생각해 비닐 없이 농사를 지으려고 했다. 한 해가 지나 제초 매트를 깔았고, 한 해가 지나 비닐을 씌웠다. 유기농, 무농약 농산물로 인증과 판매를 생각해 봤으나 생산성과 품질관리 차원에서 될지는 미지수다. 힘이 드니 한 가지씩 쉬움에 양보하게 된다.


작년 가을 농부 아빠는 깜깜한 밤 배추밭을 자주 기습했다. 느림보 먹보 달팽이를 많이도 잡았다. 낮이면 나비 애벌레도 보이는 족족 잡았다. 나비는 잠자리채를 들고 다니며 잡아야 할까 생각도 했다. 파는 또 어떠한가. 미끌거리는 파 안쪽 벽에 기어 다니며 사는 파벌레는 정말이지 징그럽다. 밭에 파를 놔두고 마트에서 가끔 농약파를 사 먹기도 하는 농부 아낙이다. 무농약 집 파는 밭에서 정리를 해 오면 파랑 잎이 거의 남아나지 않는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올해 또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우리 동네 영농 폐비닐 수거장은 지난해부터 문을 닫았다. 면사무소에 문의하니 당분간 비닐을 수거하지 않는다고 한다.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란다. 우리야 양이 적어 그런다지만 산같이 쌓이는 전업농민들의 비닐은 어쩐다. 쓰레기는 농촌에서도 큰 골칫거리다. 안 쓸 수도 없고, 쓰자니 쓰레기 처리가 곤란하다. 모두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일이다.


사과나무가 자리를 잘 잡고 있나 보다. 바로 잎이 달리고 꽃망울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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