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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Apr 06. 2024

김매기 실전 편

잡초야 올해도 부탁해!

대파밭에 대파 보다 키 큰 풀들이 자랍니다. 파밭인지 이름 모를 풀밭인 모를 밭. 큰아이 둘과 풀밭을 맵니다. 한 골씩 맡아 앞으로 갑니다.


복이는 호미를 버리고 풀을 두 손으로 당기더니 땅과 힘겨루기에 금세 지쳐 나가떨어집니다. 풀 머리만 다 뜯어놓습니다. 급기야 맨땅에 호미질을 하며 놀고 있습니다.


‘그래 흙놀이라도 해라. 흙 만지며 노는 게 건강에 좋단다.’


복동이의 투털거림은 듣는 재미가 있습니다.


“풀이 왜 이렇게 큰 거야. 이건 파야? 파인 지 풀인지 모르겠어. 씨도 안 뿌렸는데 왜 이렇게 많이 자라는 거야.”


아이는 푸념을 섞어 말하면서도 곧잘 풀을 뿌리까지 뽑아내며 따라옵니다. 엄마보다 벌레를 더 질색하는 복동이는 벌레를 쫓으려 풀을 이리저리 흔든 다음 뽑습니다. 그 벌레가 다 엄마한테 날아옵니다. 호미질이 익숙하지 않아 땅과 줄다리기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진도가 안 나가. 반도 못 온 것 같아.”


뒤를 돌아보며 앞을 보며 한숨을 쉽니다.


빗낱이 떨어지자 비가 온다며 얼굴이 피어납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들어가라는 말에 신나서 뛰어 들어가다 아빠에게 딱 걸렸습니다. 비설거지를 합니다. 연장들을 정리해서 창고에 넣고, 널어놓은 고추를 넣고, 마당 비질을 하는데 비가 그칩니다. 궁시렁거리며 다시 원상 복귀합니다. 옷이 젖지도 않는 가랑비에 아이들 울상입니다.


“비가 소심해.”


하천으로 가까이 갈수록 더 거세어지는 풀들은 제 기세를 숨기지 않습니다. 자연과 힘겨루기에 진 농부들 호미질을 끝냅니다. 낫으로 풀을 베기로 합니다. 아빠는 밭 주변 풀을 기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파 한 줄을 살리려고 그 많은 풀을 다 잡습니다. 밭 한 뙈기에 절절매는 우스운 농부들. 풀매기는 풀베기로 바뀝니다. 낫질은 호미질 보다 수월합니다. 금세 또 키가 자랄 풀을 생각하면 좀 더 힘겨루기를 해 볼걸 하고 후회도 됩니다.





얘들아!


흙을 밟는 오늘을 기억해. 흙내음, 풀내음이 푸념과 한숨과 따사로운 태양빛과 함께 생각날 거야. 어린 시절 맡아본 볏짚 향은 엄마만 기억하는 특별한 추억이야. 며칠 전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 추수해 밑동만 남은 벼를 보기 전에 지푸라기 향이 먼저 창문으로 날아들었어. 벼를 베면서 남은 짚 향이 논을 한가득 메우고도 바람을 타고 추억을 실어와. 너희들이 맡는 향기는 그런 추억이야. 바다에 살면 바다내음이 그리운 것처럼 시골생활을 하며 맡은 흙내음과 풀향을 기억하면 좋겠어.


오늘 일하며 땀 흘리며 얻은 흙내음과 풀향이 어느새 마음에 들어와 있을 거야. ‘육체노동은 못하고 살겠네.’하며 스스로 공부를 한다면 좋은 일이고, 노동의 참맛을 알아 땀방울 흘리며 일한다면 그것대로 의미 있을 것 같아.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의 고마움, 땀방울의 고마움을 알았으면 해. 몸을 움직이면 힘들지. 앞길은 잡초에 우거져 안 보이고, 뒤돌아봐도 발버둥 친 흔적도 보이지 않을지 몰라. 그래도 언젠가 살면서 이런 날이 올 거야. 그땐 풀을 매던 오늘을 생각해. 묵묵히 그 자리에서 줄다리기를 해보는 거야. 머리채라도 잡아 보는 거야. 그러다 보면 어느새 끝이 보일 거야. 제초제를 뿌리면 안 되냐고? 왜 안 되겠어. 몸에 안 좋을 뿐이야.  대신 밭에 뿌리는 약이 우리 몸에 들어간다는 것만 기억해. 농약파를 사 먹어도 상관없어. 엄마도 가끔 그러는 걸.


자연은 우리에게 잠깐 땅을 빌려주는 거야. 원래 자연은 풀밭이야. 풀밭 사이에 싹을 틔운 나무가 커져 풀보다 키가 자라면 나무가 해를 가려. 그러면 풀이 더 이상 크게 못 자라고 나무가 가득한 숲이 되는 거야. 사람은 숲이 될 풀밭을 매년 갈아엎어 씨를 뿌리지. 원래 풀이 주인이고 나무가 주인인 그곳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거야. 그러곤 푸념을 하지. 풀에게 잡초라며 뭉개고 하찮게 여겨. 순리를 역행하는 건 사람인데 말이야. 최소한 자연에게 고마워하고 빌린 이 땅을 잘 사용하고 돌려줘야 해. 농약, 비료 등은 땅에게 주는 약이 아니야. 무거운 농기계로 꽉꽉 누르면 땅도 식물도 숨을 쉴 수가 없어. 그래서 최대한 사람 손과 발로 움직이자는 게 아빠의 농사론이야. 아빠는 일독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연과 깊은 사이인지도 모르겠어. 엄마도 아빠의 농사 생각이 멋지다고 생각해.



풀냄새, 흙냄새 맡고

새소리, 벌레 소리, 바람 소리 들으며

땀방울 씻어주는 시원한 바람 느끼면서

내 몸과 마음과 자연과 벗하며

뿌린 대로 거두고

때로는 자연과 줄다리기도 하고

자연에게 밑지기도 하며

때로는 따뜻한 햇살과 비와 바람의 수고로움으로 더 큰 결실을 얻기도 하는

진짜 농사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

농사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자연이 주는 농사의 기쁨을 알면 좋겠어.


아들!

모기한테도 많이 뜯기고 풀밭에서 힘들었지?

오늘 농사일 도와줘서 고마워.

그래도 엄만

너희들의 궁시렁거림이 즐거웠어.  

사랑해.

다음 주도?!


* 주의 : 우리 가족은 시골살이 3년 차 주말농부임을 밝힙니다. 전업 농부가 아니므로 전업농을 계획 중이라면 그냥 귓등으로 흘려들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2023년 9월 4일 책보나의 네이버 블로그 발행 글입니다.

김매기는 실전이다. 아픈 허리를 위해 농부 아낙 전용 긴 호미와, 긴 낫을 주문했다. 장비를 내 돈 주고 주문하기는 처음이다. 이제 농부 아낙도 풀에게 진심이 되어가나 보다. 승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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