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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Apr 02. 2024

사과나무 옆 들풀 구경

봄날 농촌의 색깔은 초록이 아니다. 봄날 농촌의 색깔은 황톳빛 흙색이다. 거름에 따라, 갈아 엎은 깊이에 따라 땅의 색깔은 제각각이다. 출근길 바라본 밭풍경은 정신 사납다. 나뉘어진 밭 경계선마다 다른 색깔의 흙빛이 제 땅의 지력을 뽐내는 듯 하다. 우리는 서로 뽐내기 경작지와 동떨어져 있어 마음 편히 나름의 농사를 짓는다. 주말 농부의 밭은 그래서 조금 느리고 남보다 천천히 심고 때로는 건너 뛰기도 한다. 감자를 심어야 하는데 박스째로 무져 두었다. 이번 주에는 아침부터 사과 나무를 얻으러 다녀왔다.

봄을 맞아 새 식구가 된 사과나무. 작년에 아이들과 심은 사과나무는 가뭄에 죽어버렸다. 이번에는 사과나무 주인님께 심는 방법을 전수받아 왔다는 남편. 장비를 챙긴다. 평소의 클래스 대로 포클레인으로 땅을 팔 줄 알았건만 삽 하나, 호미 하나, 물뿌리개가  전부다. 뿌리가 쬐끄만한  나무 깊이 심어야 할 것 같은데, 골바람이 거세어 뽑혀 나갈 것 같은데. 작은 뿌리로 땅을 붙잡고 버틸 수 있을는지 걱정이 된다. 삽으로 몇 번 땅을 파더니 묻어 버린다. 중간중간 물을 뿌려준다. 뿌리를 너무 깊게 심으면 안 된단다. 제초 매트에 구멍을 커다랗게 뚫어 잡초 걱정도 많이 줄었다. 부디 잘 자라서 금사과를 따먹으면 좋겠다. 내년이면 먹을 수 있으려나? 심는데 공은 안 들이면서 먹을 생각만 하는 먹보 농부의 못난 심보가 또 나온다.


사과나무를 잠시 잡아준 게 어딘가? 나도 사과나무가 뿌리를 내리는데 일조했으니 금사과 몇 개는 따먹으리라. 금사과야 금사과야 주렁주렁 열려라.


우리가 심은 것이 절대 아닌 스스로 움튼 생명

사과나무 옆쪽 조그만 제초 매트 구멍으로 초록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온통 까만 하늘 중에 해가 보이는 구멍을 용케도 찾아 고개를 내밀었다. 이웃 주민 고라니가 먹는 건 줄 알고 한입 상큼하게 뜯어먹고 갔다. 영리한 건지, 바보인지, 이 풀도 맛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번 먹어볼까? 고라니가 인정한 풀 맛이란? 궁금하지만 참아야 한다. 아무거나 먹고 탈 날라. 초록의 세계는 그 풀이 그 풀이라 구분이 안된다. 너도 이름이 있을 터인데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이것은 아는 풀이다

봄 시금치가 맛있다며 뿌려둔 씨앗. 가을을 지나 겨울을 지나 봄이 되어 올라온 시금치는 추운 날씨에도 올라왔다. 명품 간식 터라고 소문이 났나 보다. 이웃 주민 고라니가 또 한입 드시고 가셨다.  나누어 먹는 게 일상인 농촌의 봄은 참 따뜻하다. 고라니는 퇴근길 자주 만나는 이웃이다. 옆집 주민보다 더 자주 만나는 이웃사촌은 밤길에 뛰어다니는 걸 좋아한다. 가끔 뒷산을 어슬렁거리며 산책도 한다.

이름 모를 풀이라고 누가 그랬나. 잡초라고 누가 그러던가. 홀로 깜깜하고 차가운 겨울을 보내고 봄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던 너는 가장 먼저 흙투성이 휑한 밭에 초록을 점점이 뿌려주었다. 하나만 보아도 이쁘다. 하나라서 더 이쁘다. 더불어 힘을 내는 잡초인 줄 알았더니 홀로 아름다움을 뽐낼 줄 아는 풀 중 풀이다.


손바닥 보다도 작고 귀여운 녀석의 연둣빛 고운 자태를 보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빛낼 줄 아는 너는 봄날의 자유를 황홀하게도 맛보고 있었지. 앙증맞은 노랑빛 꽃다발을 나에게도 전해 주는 거냐. 고맙다. 고맙고 미안하다. 너를 계속 지켜주지 못할 것 같다.


밭을 갈고 거름을 뿌리고 고랑을 만들기까지는 농부 아낙이 할 일이란 크게 없다. 밭에 들에 나는 봄나물을 안다면 좀 캐 먹으려나. 나물을 눈에 두고도 구분할 줄 모르니 그저 지금은 따뜻한 기운을 몰고 하나둘 올라오는 초록을 보는 게 좋을 뿐이다.


농부 아빠는  이것저것 기계를 손보고 필요한 농기구를 산다. 봄이면 어김없이 새로운 기계가 들어온다. 며칠 전 당근에서 또 기계를 저렴한 가격에 업어왔다. 비닐 씌우는 기계다. 고랑을 만들면서 비닐을 씌우는 기계가 있는데, 이건 뭔가 다른 건가? 비슷해 보이는데 열심히 물어봤지만 이해불가다. 이번 기계는 비닐만 씌우는데 쓸 거란다. 싸게 잘 샀다며 기분이 좋다. 농부 아낙은 모자를 주문했다. 강한 햇볕으로부터 곱고 하얀 피부를 지켜줄 창이 넓은 모자를 세 개나 샀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밭으로 나갈 준비 끝! 감자는? 다음 주로 넘겼다.


경운기로 밭을 싹 갈고 골을 만들고난 뒤 비닐을 씌우면 고랑의 풀들은 걱정이 없다. 이랑에 올라오는 풀들만 한 번씩 긁어주면 된다. 밭을 갈아엎을 때까지 우리 초록이들이 봄날의 너른 들판에서 따스한 바람을 마음껏 즐기면 좋겠다.


 필요한 풀과 쓸데없는 풀이 어디 있을까. 모두 귀한 생명인걸. 이 봄날에는 말이다. 너와 나, 바로 내일 치열한 사투를 벌이더라도 오늘 나는 홀로 우아한 너를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


고운 풀들아 무럭무럭 자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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