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꽃

by 눈항아리

5분, 10분 출발 시간이 지연되어 등교시간이 아슬아슬해지면 모두의 신경이 곤두선다. 오늘은 일찍 출발해 누구도 군소리가 없다. 오늘 아침은 순조롭다.


출발한다. 바로 주행모드로 바꾸고 액셀을 밟는다. 출발은 서두르는 척해야 한다. 시험 기간인 아이를 위한 마음의 기술을 선보이는 운전자. 그러면서 자연스레 대화를 시도해 본다. 출발하자마자 조수의 도움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요즘은 보통 아이폰의 목소리 도우미 시리를 부르는데 옆자리에 오랜만에 큰아들이 탔으니 메모 전송을 부탁한다.


“문자 보내줘. “


”얼음꽃”


출발하면서 바로 왼쪽으로 펼쳐진 들깨밭. 우리 집 들깨는 조금, 옆집 깨밭은 엄청 넓다. 들깨 꽃이 눈부시다. 그 하얀 꽃이 눈부실 리가. 들깨 꽃에 달라붙은 이슬이 태양빛을 머금어 똑 떨구기 전 내 눈에 들어왔다. 초록 깻잎 위로 방울방울 솜털같이 매달린 하얗고도 빛나는 꽃이 너른 깨밭에 무수히 피어 있었다. 쌀쌀한 가을 아침 얼음꽃을 만났다. 일교차가 크기는 큰가 보다. 차를 타고 쌩 금방 지나가서 아쉽다.

천천히 걸었으면 시 한 수 멋들어지게 읊었을 텐데.


출근길 차는 빠르다. 마음에 들어온 장면은 빠르게 캡처해야 한다. 가끔 상황을 앞에 두고 글을 쓰는데 그건 크로키와 같다면 출근길 뇌리에 박힌 장면은 두고두고 꺼내보는 사진첩과 같다. 완성되지 않은 시집을 하나 주머니 속에 챙겨 다니는 느낌이다. 이렇게 글로 저장을 해 두면 보관이 더 용이하다.


이슬을 머금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하얀 들깨 얼음꽃을 만나고 싶다면 들깨꽃이 후드득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어디로? 들깨밭으로! 들깨밭이 주위에 없다고 슬퍼말라. 들에 수두룩한 강아지풀이 비슷한 느낌을 준다. 철새의 군무를 보겠다고 밤새 숨죽이며 철야 촬영을 준비하는 것처럼 거창하면 또 곤란하다. 가을날 얼음꽃을 보겠다면 한 자리에서 가만 지키고 서면 안 된다. 굳이 그러고 싶다면야 새벽부터 두툼한 겨울 옷을 입고 나가 오들오들 떨며 고생해도 괜찮다. 그러나 얼음꽃의 묘미, 가을날 들깨 꽃의 화려한 변신은 순간의 찰나 이슬이 아침 태양을 만난 순간 발현된다. 들깨꽃이 아니라도 초록 잎사귀 반짝이는 이슬 방울이 토옥 바닥으로 추락하기 전 그 순간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진은 고이 마음속에 저장한다. 날을 잡아 봐야겠다 마음먹는 게 아니라 늘 담을 수 있도록 빈 사진첩을 열어 두어라. 눼눼.


마음에 고이 끼워둔 사진을 열어 매일 새로운 시를 짓는다.


얼음꽃

...

....

오늘은 생각나지 않으니 내일 다시.

시를 잘 지을 줄 모르니...

잘 지을 때까지 영구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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