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파를 뿌리째 뽑아 흙을 털 새도 없이 비닐에 담아 차에 실었다. 작은 공간에 파향이 퍼진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 그윽한 향을 싣고 다채로운 들판을 달린다. 넘어진 들깨는 허리를 세우려 하고, 초록 들판 가득 메운 무는 파릇파릇 넓적한 잎사귀를 키우고 있다. 추수 마친 논은 휑하고 논두렁 가로지른 경계를 따라 초록, 노랑, 누렁 벼들은 제각각이다. 가을은 벌써부터 알록달록 계절이다.
4차선 도로를 올라탄 차는 속도를 높인다. 높여야 하는데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린이 보호구역입니다. 제한속도 30킬로미터입니다. 신호와 과속에 주의하십시오.”
제한속도 30이라는데? 속도를 줄여? 며칠 전 바꾼 블랙박스가 열심히 일은 한다. 그러나 그녀 제한속도 30킬로미터 도로와 그 위를 제한속도 70킬로미터로 달리는 고가도로를 구분하지 못한다. 퇴근길에도 그러더니 출근길에도 그런다. 속도를 서서히 늦추자 복동이의 얼굴이 구겨진다. 25분이나 당겨 출발했는데도 시험을 앞둔 아이의 마음은 그걸 받아줄 여유가 없다. 장난기 가득했던 운전자는 바로 속도를 올린다. 아이의 시험 날이니 심기를 건들면 안 된다. 불편하지 않게 잘 모셔야 한다.
그러나 놀림수는 뒤쪽에서도 날아온다. 연속으로 날아온다.
“형아 내일 피방 가자. “
자유학기제라 시험이 없는 복이. 형 덕분에 일찍 끝나니 널널한 시간 피시방에서 소비할 모양이다.
“형아 같이 가자~~”
졸라 보지만 복동이 꿋꿋하다.
“안가. “
”한 시간 머리도 식힐 겸 다녀와. “
엄마도 거들어 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금요일날 시험 끝나면 갈 거야. “
그렇구나. 일찍 가서 하루 종일 살려고 그러는구나.
바로 연속으로 몰아치는 복이.
“형아 오늘은 밀려 쓰지 마. ”
복동이는 평소와 다르게 찍기의 번호를 말하지도 않고 다른 대꾸도 없다. 이번에는 마음을 굳게 먹고 밤중에 얼음도 씹어먹으며 공부했다.
그러나 복동이에게는 시험 공포증과도 같은 증상이 있다. 줄줄이 밀려 쓰는 건 예삿일이다. 지금은 자신이 인지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병원 진단을 받지는 않았으나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있다며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먹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시험과 같은 공개적인 평가에 극도로 민감해지는 아이는 즐거운 시험 에피소드 생성기다. 오엠알 카드를 다섯 번 바꿔썼다고도 하니 말해 무엇할까. 시험 보는 중간중간 과민한 대장으로 인해 화장실도 들락날락해야 하니 그 고생이 얼마일지 상상도 안 된다. 아빠도 엄마도 그것을 아니 시험 전날 공부보다 잠을 푹 자고 컨디션 조절에 힘쓰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아이의 어제 중간고사 과목은 겨우 두 개. 국어와 역사. 3일 통틀어 보는 과목은 7개뿐이다. 중간, 기말 매 시험마다 음악, 미술, 체육까지 더해 전 과목 시험을 봐야 했던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생각하면 요즘 아이들은 양반 노릇인데? 생각해 보면 지나간 학창 시절이 억울하다. 늬들은 좋은 세상에 사는 거다. ‘라떼는 말이야~~’ 말하면 끝이 없으니 여기까지.
아이야 맘껏 즐겨라. 잘하고 와라. 줄줄이 밀려 써도 괜찮다. 엄마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다. 그건 너의 성적이고 엄마가 대신해 줄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 (정말이다.) 그건 너 혼자 감당하고 넘어야 할 산이다. 그 산을 넘고 이길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백점은 바라지 않는다 아이야. 아침 고기에는 100점 조미료를 한 스푼 첨가하기는 했다만.
알록달록 가을날을 달린다. 그윽한 파향을 싣고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