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이 시리다. 손 끝이 시리다. 찬 기운이 차량 내부에 가득하다. 간밤에 촉촉하게 내린 빗방울이 창문에 붙어있다. 사이드 미러에 붙은 물방울을 닦아내고 창문에 달라붙은 빗방울을 지워냈다. 불투명한 물자욱이 앞을 잠시 가렸다. 안 없어진다. 와이퍼도 바꿔야 하나 보다. 아직은 얼지 않으니 다행이다. 이제는 가을비가 아니라 겨울비라 불러야겠다. 좌석 열선을 틀고 핸들 열선도 틀었다.
뒷자리에 앉은 복실이가 잔기침을 한다. 곰돌이 모자를 둘러쓰고 목까지 가렸는데도 콜록 거린다. 경량보다 더욱 두툼한 패딩을 꺼내 입고 기모 바지를 입고 긴 양말을 신었다. 훤히 드러난 얼굴 하나가 찬 바람을 그냥 맞고 있다. 내 코가 시리고 볼이 찬 것처럼 복실이도 코가 시리고 볼이 차가울 테다. 마스크를 챙겨야겠다. 입과 코와 볼까지 가려줄 방한용 마스크가 필요하다. 아기 때 아이들이 쓰던 면 마스크는 참 포근했는데, 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간 휴유증 때문에 겨울에도 부드러운 면마스크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다. 80이든 90이든 덴탈이든 뭐가 되었든 찬 바람을 막아줄 마스크를 씌워줘야겠다. 자신이 뱉어내는 따뜻한 숨이 부직포 마스크 안에서 잠시 머물며 찬기를 막아줄 테다.
차에 타자마자 복실이에게 담요를 덮으라고 하였다.
“엄마 담요가 너무 차가워. ”
‘덮고 조금만 있으면 따뜻해질 거야. ’
라고 말해주려고 했다. 엄마의 따뜻한 말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달복이가 끼어들었다.
“그럼 오빠 줘. ”
달복이가 쌩하니 담요를 채갔다. 그러곤 담요를 얼굴에 푹 뒤집어썼다. 그러곤 창문에 머리를 박고 잠을 청했다. 달리며 덜덜거리는 창문을 베개 삼아 잘도 잔다.
세상 물정 모르는 복실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곧 따뜻해질 담요를 순순히 오빠에게 넘겨주었다. 그 값어치를 몰라서 그랬다. 당장 차가운 것을 덮고 있기 싫어서 그랬을 테다. 달복이는 담요가 곧 따뜻해질 것을 알아서 달라고 했는지 그저 얼굴에 뒤집어쓰고 햇볕을 가릴 가림막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물건의 쓸모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니 둘 다일 지도 모른다. 달복이가 담요의 따뜻한 쓸모를 몰랐다고 해도 나중에는 알아챘을 테다.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에 죽고 사는 정글과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되겠지만 알고도 코 베어가는 세상에 모르면 얼마나 손해를 보고 살 것인가 순진한 아이를 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사의 빠듯한 이치가 아이들의 작은 행동에도 들어있었다. 누군가가 세상 참 빡빡하게 만들어 놓으셨군. 담요를 몇 개 더 차에 실어놔야겠다.
겨울의 차는 금방 찬 기운을 몰아내지 못한다. 7번 국도로 올라서서 한참을 달려 해가 따뜻하게 쬐며 눈이 부시다 싶으면 항상 따뜻함을 넘어 더움을 감지하게 된다. 출발하고 10분은 되었을 무렵이다. 차량용 히터는 엔진이 따뜻해져야 열을 내준다고 한다. 그래서 한겨울에는 미리 차 시동을 켜놓곤 한다. 차량 내부를 데워 놓아 아이들이 탔을 때 기온 차가 크지 않게 배려한다. 그건 보통 남편이 해 주는 일이다. 아빠의 따뜻한 배려가 필요해지는 겨울이다.
겨울비를 맞은 들판은 을씨년스럽다. 무 수확이 한창인 들판에 무청이 어지러이 널려있다. 쓸모없는 하얀 무가 점점이 굴러 다닌다. 무청을 가득 담은 거대한 자루가 듬성듬성 존재감을 뿜으며 서 있다. 무청 자루는 논바닥의 마시멜로보다 더 크다. 멀쩡한 무는 겨울비가 내리기 전 커다란 트럭에 모두 실려갔다. 단무지도 만들고 김치도 만들겠지. 쓸모 있는 무청은 언제든 싣고 가려고 커다란 바구니에 담아놨다. 쓸모없는 무와 쓸모없는 이파리만 빈 밭에 굴러다닌다. 봄이 되면 흙과 섞여 퇴비가 될 테지만 당장 버려지는 것이 아쉽다.
쓸모 있는 것, 쓸모 있게 만드는 것, 쓸모를 아는 것 , 쓸모를 취하는 것, 생존 경쟁의 장에서 쓸모는 중요하다. 아이들이 쓸모를 잘 알면 좋겠다. 아이들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쓸모를 잘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쓸모 있는 것의 귀함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자신이 귀한 존재임을 알면 좋겠다. 귀한 것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귀한 것을 나누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 천천히 알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