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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근영 Nov 28. 2024

양말 좀 찾아줘.

“달복아 복실이 양말 좀! ”


“달복아 엄마 양말도 찾아줘! “


달복이는 가방까지 메고 현관 앞에 대기 중이다. 출발 준비를 먼저 마친 달복이에게 양말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바로 양말을 찾아 현관 앞에 툭 던져놓는다. 바로 신고 출발하면 된다. 달복아 고맙다만 이건 여름 양말이다. 발목이 훤히 드러나는 목이 없는 양말이다. 오늘은 추워서 절대 신고 싶지 않았다. 양말 바구니를 뒤적여 색깔이 비슷한 짝짝이 양말을 골랐다. 에라잇! 그냥 신었다.


짝짝이 양말을 신었다. 교묘하게 색깔이 다른 양말이다. 교묘하게 색깔이 비슷한 양말이다. 평소라면 절대 신지 않을 짝짝이 양말을 신고 나서는 이유야 뻔하다. 늦은 출발시간, 출발시간 3분이 경과하고 있었다. 양말 때문에 더 지체했다간 아이들 지각 확정이다.


매일 맨발에 신발을 꺾어 신고 양말을 손에 쥐고 출발하는 녀석도 있으니 짝짝이 양말은 양호한 편이다. 누가 신경이나 쓸까. 내 발목만 쳐다보는 사람은 없다. 발목만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해도 두 발의 현란한 움직임 때문에 아마도 색깔이 다른지 알아차리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릴 테다. 결국 내 발목을 쳐다보던 인물도 색깔 구분을 포기하고야 말 테다. 누가 내 발목을 쳐다본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결론은 평소에도 짝짝이 양말을 신고 가도 되었다는 말인가? 나는 왜 매일 색깔이 같은 양말을 신고 가는 것인지. 쯧쯧.  설사 빨강과 노랑 양말을 신고 나간다고 해도 내 발목을 가지고 누가 무어라 할 것인가. 남의 눈이 무섭다. 그래서 그렇다. 짝짝이 양말을 신는 데 합리화의 작업을 마친 나는 당당하게 현관문을 열고 출발한다. 볼 테면 보라지, 나는 짝짝이다!


호기롭게 나섰으나 나를 쳐다보는 이 하나 없는 세상 속으로 나왔다. 양말은 신발 속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고 그나마 긴 바지가 발 뒤꿈치도 다 가려주어 아침에 잠시 신을 신기 전 그 순간의 나만이 양말 짝짝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짝짝이를 보아주오! 아무리 외쳐도 아무도 모르는 걸.


아이들을 내려주었다. 교문까지 손을 잡고 걸었다. 복실이는 곰돌이 모자를 썼다. 정전기가 난다며 요새 잘 안 쓰려고 하는데 추위에 어쩔 수 없이 둘러 쓰고 귀여움을 뿜뿜 뿜어내고 있다. 달복이는 마구 달려간다. 삐죽 솟은 머리를 잠시라도 가라앉으라고 패딩에 달린 모자를 쓰고 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뒤도 안 돌아보고 모자를 쓰고선 달린다. 보안관실 앞에 서서 학교로 들어가는 복실이와 달복이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본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모자까지 썼으나, 발목 없는 여름 양말을 신었다. 이런, 엄마인 내가 아이들 양말을 미리 좀 찾아 챙겨줘야 했다. 내 양말 찾아내라고 아이에게 심부름이나 시키고 참으로 뻔뻔한 엄마다. 기껏 찾아준 양말이 여름용이라고 타박을 하다니, 제 자식 여름 양말 신은 줄은 모르고. 추운데, 찬 바람이 부는데. 달복이 복실이 춥겠다. 여름 양말을 싹 모아서 어디 안 보이는 데 치워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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