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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Nov 25. 2024

통 큰 엄마의 유난

달복이의 주말 숙제는 김치 일기 쓰기다. 준비물은 김치통이다. 김치 일기에 걸맞은 준비물이다.


김치 4분의 1 포기를 담을 수 있는 통을 가져오세요.

 4분의 1 포기 담을 통이 필요하면 진즉에 말을 했어야지. 바닥에 굴러다니는 주간학습계획안 종이 쪼가리를 주워 읽고 달복이가 아닌 엄마가 발견한 준비물이었다. 일요일 다 늦게 김치통을 찾았다. 집에는 통이 없었다. 통이란 통은 모두 가게에 가 있다. 김치 냉장고에 들어가는 커다랗고 빨간 김치통을 들고 갈 수는 없다. 그것보다 작은 유리통을 찾았다. 살아있는 배추 4분의 1 포기가 들어갈 것 같은 크기였다. 유리가 두꺼워 조금 무거운 게 흠이었다. 연약한  달복이가 들 수 있을까? 둘러엎거나 손잡이를 들고 달랑거리다 메어치지는 않을까. 아이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봐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달복아 아니면 아침에 가게 들러서 작은 플라스틱 통 가지고 갈까?


일찍 일어나 8시에 출발하면 가게에 들르기로 했다. 출발은 평소보다 느린 8시 25분이었다. 그냥 유리통을 들고 가야 했다.


달복이가 학교에 유리 김치통을 들고 간다. 과연 안전하게 잘 다녀올 수 있을까? 제 얼굴보다 더 큰 김치통이다. 플라스틱이면 엎어뜨리고 메어쳐도 깨질 걱정이 없으니 근심을 덜겠는데 엄마는 불안함에 출근길 차 안에서 자꾸 아이를 들볶는다.


“달복아 지난번 학교에서 막장 만들어 올 때는 통을 줬잖아. 김치도 통을 주지 않을까?  ”

“아니. ”

“유리인데 무겁지 않을까? ”

“괜찮아. ”

“들고 갈 때 막 휘두르면 안 된다. 알았지? ”

“안 휘둘러 가방에 넣을게. ”

‘가방에 세로로 넣으면 안 되는데...... ‘

어릴 적 도시락 가방에 김치 국물이 쏟아졌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왜 허구한 날 김치 국물은 쏟아졌을까. 뜨끈한 밥과 김치의 쿰쿰한 냄새가 뒤섞여 도시락 가방을 가득 메우고 가방 밑창까지 뻘건  물이 들어 얼마나 난감했던가.

”달복아 김치 넣고선 김치통 절대 가방에 넣으면 안 돼! 국물 새면 가방이 난리가 나. “

“네. ”

“사물함 위에 올려놨다가 방과 후 다 끝나고 들고 나와. 마구 들고 다니지 말고. “


김치통이 휘휘 휘두르다 땅바닥에 떨어져 깨진다. 달복이 반은 4층이니 올라가는 계단에서 또 와장창 깨진다. 교실에 도착하여 아이들과 장난하다 퍽! 사물함에 올려두라고 해야 하나? 사물함이 너무 높아서 쿵 떨어진다. 사물함 안에 넣어 두라고 할까? 그럼 학원 갈 때까지 사물함 안에 넣으면 되겠다. 그런데 너무 좁지 않을까? 냄새가 다 배면 어쩌지? 김치 통의 동선을 따라 미래 일어날 일을 시뮬레이션해보며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을 쌓아갔다. 이런 일 저런 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불상사에 초점이 맞춰져 아이가 잘 들고 갔다 잘 들고 올 것이라는 건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달복이를 못 믿는 것이 아니라 혹시 다치지는 않을까 아이의 건강을 염려하는 것이라는 얄팍한 핑계를 대며 엄마는 계속  일어나지도 않은 상상 속 사고 현장을 돌았다.


출근길 엄마는 근심 걱정과 함께 생각이 많아졌다. 곧 말도 많아졌다. 줄줄이 사탕과 같은 당부의 말씀이 이어졌다.

“달복아! 아니다 학원까지만 잘 들고 가면 엄마가 데리러 갈게. 몇 시에 끝나지? 끝나면 엄마한테 전화해. 엄마가 데리러 갈게. “

“...... ”

아이의 말소리가 작아지더니 급기야 아이의 대답이 뚝 끊겼다. 엄마의 말씀을 안 듣는 것이 아니라 못 듣는 상태가 되었다. 차에 타기만 하면 잠을 자는 아이는 이미 담요를 머리에 둘러쓰고 있었다. 해를 피하기 위해서라지만 엄마가 던지는 당부의 말씀을 피하기 위한 방편인지도 몰랐다. 결국 달복이는 깊은 잠이 들었다. 조용한 가운데 차는 학교에 도착했다.


“달복아 늦어서 뛰어야 하니까 가방에 빨리 넣어.”

등산 배낭과 같이 불룩해진 가방을 메고 아이는 열심히 뛰어갔다. 오늘 김장을 잘해올 수 있을까? 끝나고 전화를 할 것인가.

“학원 끝나면 전화해! ”

뛰어가는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통이 문제가 아니라 김장을 하는데 앞치마는 안 필요한가? 아이를 교문에 들여보내고 나서 생각이 들었다.


학원이 끝난 달복이가 전화를 했다. 아들을 데리러 갔다. 달복아 그런데 친구들은 어떤 김치통 가지고 왔어? 너 보다 큰 통 가지고 온 사람 있었어? 유리로 된 통 가져온 사람 있었어? 준비물 안 가지고 온 사람은 있었어? 김치 몇 개씩 가져갔어? 4분의 1 포기 가져가는 거 아니었어?


달복이 보다 큰 통을 가져온 사람도 몇몇 있었다. 유리통을 가져온 사람은 없었다. 김치통을 안 가져온 사람은 비닐에 담아 갔다고 했다. 김치통이 큰 사람은 김치 3개도 가지고 갔다고 했다. 달복이는 김치 두 덩이에 양념을 묻혀서 가지고 왔다. 겉옷 소매에도 김치 국물을 잔뜩 묻혀 왔다. 김장을 하고 신난 아이를 차에 태워 데리고 왔다. 가방은 멀쩡했다.


나보다 통 큰 엄마들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초등학교 김장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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