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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근영 Dec 05. 2024

시큰거린다

일과 자녀 사이

유자가 왔다. 여섯 박스가 왔다. 분명 10킬로 박스를 두 박스씩 시켰다. 이삼일에 한 번씩 세 번에 걸쳐 시켰다. 그런데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같은 날 도착했다. 왜 유자 여섯 박스가 한꺼번에 도착한 것일까. 설마설마 한날에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다행인 점은 못난이 유자도 멀쩡한 대과도 모두 상태가 최상이다. 멀쩡한 대과가 못난이 유자에 비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지난해에 비하면 최상급이다.


10킬로그램 박스를 태산과 같이 쌓아두고 마음이 무겁다. 마음이 바쁘다. 마음이 시큰거린다. 거칠해진 손을 끌고 퇴근하는 길 부르트고 퉁퉁 불은 손보다 아픈 건  아이들의 늦은 잠 시간이다. 늦게 잠이 든 아이들은 늦게 일어나 비몽사몽 상태에서 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한다. 9시가 넘어 교문에 도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달복이는 다음 날 복실이를 쪼았다. 복실이는 울었고 준비는 더 늦어졌다. 악순환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빨리 자야 빨리 일어난다.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난다.


엄마가 바쁘면 왜 아이들은 아플까. 질병은 귀신같이 바쁜 때를 찾아오더라. 그것도 연타로 찾아온다. 늘 그랬다. 그래서 놀라지 않고 받아들였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 잠도 줄이고, 식사에 들어가는 사랑도 줄여서 그런가. 마음 한 구석이 콕콕 찔린다. 뭐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 유자 여섯 박스가 와서 그런 것인데, 일 때문에 그런 것인데, 아이들이 아픈 것은 나 때문이 아닌데.


복이는 중이염이고 복동이는 힘이 없다. 엄마의 늦어지는 퇴근시간 때문에 아이들이 아픈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유자 박스로 마음이 가득 차 있었다.  하루 일과 중에도 틈이라고는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아프니 병원 갈 시간이 났다. 저녁밥 차려줄 시간도 알아서 생겼다. 일을 이기는 게 있었다. 아이들에 대한 근심 걱정은 바쁜 일과를 뚫고 직진으로 나에게 날아들었다.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하더니 다 거짓말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깜깜한 차 안에서 옆자리에 탄 복이에게 당부의 말씀을 늘어놓았다.

“거봐 엄마가 스피커 귀에 대고 듣지 말라고 했지. ”

중학생이나 되어서 중이염에 걸린 아이의 귀가 아플까 봐 1절 씩만 했다.

“귀 건들지 말고, 해드폰이랑 이어폰 당분간 금지야. 자전거 탈 때 귀도 가리고 다녀야 해. 귀가 추우면  안 된다. 그리고 일찍 자. 알았지? 잠이 보약이다......”

이런 당부의 말씀은 언제쯤 줄어들 수 있을까.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아이의 귀가 아픈 건 아닐까. 벌게진 귓속이 더 열이 나겠다.


유자 여섯 박스 중 이제 세 박스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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