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맞아야 할 바람이다

삶에서 폭풍이 내 얼굴을 칠 때

by 안전기지민

어렸을 때부터 나는 도망을 참 잘했다. 초등학생 때였다. 교실 청소 시간에 청소가 하기 싫어서 화장실 한 칸에 숨어 있다가 담임 선생님께 들켜서 혼이 났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지만 하기 싫어서 피한다면 결국엔 나중의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 배웠다. 사람마다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다. 직장인이라면 회사 일을, 고등학생이라면 입시를, 결혼을 곧 하는 커플이라면 부부가 될 준비를, 아이를 가졌다면 부모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 원치 않는 일이 인생에 생겼을 때 그것을 감당하는 것도 내가 할 일이다. 사랑을 했다면 이별을 하기도 하는데 사랑한 만큼 감당할 시간은 지난할지도 모른다. 많이 누렸던 만큼 홀로 서는 일은 힘들 수 있다.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한 가지는 결국에는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피하고 도망치더라도 그날은 결국에 온다. 내가 감당해야만 지나는 그날이 온다. 내게 수능이 그랬고 출산이 그랬다. 고 3의 마지막 날에 나는 수능을 치지 않고 그냥 11월 15일이 그저 사라지기만을 바랐으나 나는 수능장에 가야 했고 자리에 앉아서 원치 않는 시험을 쳐야 했다. 그리고 나는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통과하는 걸음을 걸었다. 잘못된 애착 관계를 끊어내는 일도 그랬다. 매일 연락하던 사람과 연락을 하지 않는 일은 내게 어색하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1시간을 참아내고 하루를 참아내고 한 달을 참아냈다. 나는 세상의 풍파를 피하려고 사람에게 기대서 잠시 고통을 잊는 방법을 이용했지만 언젠가는 내가 맞아야 할 바람이었다. 나는 타인이 아닌 내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더 이상 누군가의 인정 없이도 내 하루를 가꾸고 살아낼 수 있었다. 하루는 실패하기도 하고 먼지 구덩이에 뒹굴기도 했으나 이만하면 괜찮은 날이 하루씩 늘어갔다. 아무도 내 하루에 관심이 없어도 내가 나 자신을 돌보는 날이 늘어났다. 내가 가장 나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인생에서 나쁜 일, 원치 않는 일, 기분 나쁜 일, 피하고 싶은 일은 꼭 일어난다. 나는 아들이 한 명 있는데 너무 작은 생명체라 모든 풍파를 막아주고 있지만 그 아이가 스스로 맞아야 할 바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리 병균에서 멀어지도록 주변을 소독해 주어도 예방 접종은 본인의 몸에 맞아야 하고 면역 체계가 생기며 앓는 열병은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내가 대신해준다면 그 몸에 면역체계는 생겨날 수 없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 학습을 하는 일, 작은 두 발로 땅을 디디는 일 등. 그 모든 게 스스로 이겨내야 할 일이다. 그것을 잠시 피할 수는 없겠지만 나중의 내가 결국엔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까 삶에 닥치는 그 어떤 문제라도 발을 빼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 연습은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며 몸에 베여 내 것이 될 것이다.


출산을 하고 2박 3일을 병원에서 지내고 14일을 조리원에서 보냈다. 집에 와서도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3주간이나 받았다. 그러나 육아는 결국에는 내가 스스로 겪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남편은 늘 내 옆에서 육아를 도울 수 없었고 친정이나 시댁 식구의 도움도 잠시일 뿐,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했다. 이유 없이 우는 아이를 곁에서 달래는 것, 내가 피곤해도 자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는 것, 약해진 손목으로 늘어가는 몸무게를 들어 올리는 것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예방 접종을 하고 온 날에 아이의 몸에 열이 올라도 지켜만 봐야 하는 일도 그러했다. 더 이상 모유가 나오지 않아 빈젖을 물리며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일도 그러했다. 육아가 힘든 이유는 누가 알아주지 않고 해도 해도 티가 안나며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더 나은 결과값이 보장되지 않으며 수치로 내 수고가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꽃에 매일 물을 주듯 알게 모르게 아이는 자라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고 나면 훌쩍 커버려 아주 작을 때가 그리워진다.

부모가 된 이후로 나는 새로운 생활에 나를 적응시켜야 했다. 밤낮 구분이 되지 않는 아기를 2시간마다 수유하고 트림을 시키기 위해 등을 두드렸다. 아니, 아기가 원할 때까지 소화를 시켰다. 잠든 아이를 조용히 침대에 내려놓으면 다시 말똥말똥해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너무 피로했지만 이 시간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평생 감당해야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란 걸 안다. 아기는 스스로 먹을 수도, 잠에 들 수도, 이동할 수도 없는 작은 존재다. 그런 존재를 지켜내고 사랑하는 일은 그 세상 어떤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이다. 잠을 잘 권리, 사람을 만날 권리, 자기를 계발할 권리까지 다 내어 놓고 오직 이 한 사람을 키워내고 모든 요구에 응답하는 일은 나 자신을 뛰어넘는 일이다. 이 일을 끝에는 부모로 성장한 나를 볼 것이고 무탈하게 자라 준 아들이 있을 것이다.


내 아들은 아직 2개월이 되지 않았지만 세상을 감당해야 할 예시 중 하나가 되어준다. 기저귀를 갈이기 위해 잠시 기저귀 갈이대에 내려놓는 순간에 아이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이 울음을 터뜨린다. 자다가 입에서 쪽쪽이가 떨어진 순간에도 자신에게 당연히 있어야 할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공허감에 휩싸인다. 그 잠시를 참지 못해 분통을 터뜨린다. 나중에 크고 나면 마트 계산대에 잠시 장난감을 내려놓아야 다시 손에 돌아온다는 사실을 배울 것이다. 잠시를 참아야 하는 건 우리 모두에게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원하지 않는 일을 겪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경험이 있어야 비슷한 고통에도 버티는 힘이 생긴다. 이 연단의 끝에는 분명 성장한 내가 있을 것임을 믿어야 한다.


그 외에도 감정을 빨리 털어버리고 싶은 욕구는 대인관계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더 크게 느낀다. 산더미 같이 쌓인 업무처럼 일을 해결하고 발을 뻗고 눕고 싶은 욕구도 그러하다. 누구나 마음 불편한 일을 겪으면 견디는 힘이 부족함을 느낀다. 고통감내력과 회복탄력성은 있어도 있어도 더 필요하다. 우리는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을 통과하는 시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터널은 끝이 있으며 그것은 내가 언젠가는 꼭 걸어야만 하는 길이고 그 끝에는 변화된 내가 서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터널이 끝나면 새로운 터널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터널이 끝나고 잠시 창을 내리고 마시는 공기가 너무 달콤해서 다음 터널이 두렵지 않다. 결국에는 내가 맞아야 할 바람이다. 누구도 대신 막아줄 수 없으며 지금 누군가 막아준다면 나중의 내가 더 힘들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을 감당할 주인은 오직 나 하나뿐이다.

keyword
이전 01화예민한 내가 살아남는 법